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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대답하기 싫은 것 같아서 휠체어를 조용히 밀었어

11살 은호

by 동그래

4학년이 된 첫 날, 아이가 신나게 돌아와 "그 친구랑 같은 반 됐어. 무척 궁금했던 친구였는데! 이제 물어볼 수 있겠다"며 휠체어탄 친구에 대해 이야기했다. 1학년때부터 학교에 휠체어를 탄 아이가 있는데 왜 다리가 아픈 건지, 못 걷는 건지, 어떤 점이 불편한지, 나랑 다른 점은 무엇인지 등등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 같은 반이 되어서 좋다는 거였다. 그리고 두 달 정도 지났을 때쯤, 저녁 식사를 하는데 혜미(가명)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내가 혜미랑 진짜 친해졌어. 그래서 매일 점심 먹고 도서관에 같이 가거든. 그런데 오늘 1학년 아이가 혜미에게 와서 언니는 왜 다리가 아파? 이제 못 걸어? 휠체어는 어떻게 미는 거야? 등등의 질문을 엄청 했어. 나도 궁금했던 거라서 귀를 쫑긋하고 들으려고 가까이 갔었어. 그런데 혜미가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 가만히 표정을 보니까 슬퍼보였어. 대답하기 싫은 거 같길래 내가 교실에 가자고 조용히 휠체어를 밀었어. 사실 나도 궁금했던 거였는데.. 친구가 되니까 물을 수가 없더라고."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니 네가 물어보면 대답해주지 않을까?" "아니 난 절대로 먼저 묻지 않으려고, 혜미 표정이 정말 슬퍼보였어. 굳어버렸어. 아무리 친구라도, 아무리 궁금해도 친구가 슬퍼지는 건 묻지 않아야지. 친구가 되니까 그냥 그런 건 안 중요하기도 해. 그냥 같이 즐겁게 놀면 되는 거니까."



호기심이 많은 은호가 1학년 아이의 질문에 덧붙여서 나도 궁금했었는데! 라고 말하지 않고 가만히 혜미의 표정을 살피고 조용히 휠체어를 밀었다는 말에 내 마음이 잠잠해졌다. 친구가 되고 나니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친구의 마음을 읽고 알아주는 것이라는 걸 알아차린 아이가 대견했다. 한편으로는 나라면 이젠 말해도 되는 친한 사이니 나에게만 말해줘 라고 했을 것 같은데, 내 생각은 내 중심적인 우정인 것 같아 참 부끄러웠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건 그 사람의 과거를 안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현재 그 사람과 단단한 관계를 형성해가는 진행형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지금 여기에서 서로에게 신뢰를 주고 즐거움을 주는 관계, 그걸로 충분한 사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보면 우정이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에 가치를 두고 존중하며 대하는 태도를 통해 서로 감동을 받고 오래 두고 볼 친구가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알아야 친구가 되는 걸까? 친구가 되는데 꼭 모든 과거를 알아야 하는 걸까? 친구가 될 때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 친구 편에 기꺼이 서 주는 마음, 그게 우선되어야겠다. 아이에게 배우는 우정의 태도. 참 고맙다.





*휠체어탄 친구라는 말은 학기초 몇 번 했고, 이제는 이름을 부른다. 이름을 부른다는 건 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것이다. 외부의 행동이나 특징을 부르는 건 늘 조심하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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