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아이들, 10살 은호
"엄마, 십부터 열을 세봐요."
"열? 알았어.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영 땡!"
"역시. 엄마는 착한 사람이야."
"왜?"
"열을 세라고 했는데 열 둘을 세잖아.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착한 한국인이라고 불러."
"하하, 딱 열 만 세는 한국 사람도 있을 텐데!"
"그래도 왠지 영 땡! 이건 한국 사람들만 할 것 같아서 착한 한국인이라고 해."
"어. 미국 그림책 보면 우주선 발사할 때 ten to zero, blast 하는 게 비슷할 것 같기도 해."
"그러네, 그래도 열을 세라고 하면 열 둘을 세는 사람들은 착한 거 같아. 두 개나 더 시간을 주잖아. 엄마도 참 착해."
아이들은 과연 우리 엄마가 과연 열을 셀 것인가, 열 둘을 셀 것인가 궁금해하며 내 앞에 쪼르르 앉아 내 눈과 입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귀 속에 "일, 영, 땡!"이라는 말이 들렸을 때 "우리 엄마는 역시 착해!"라며 안심하던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계속 웃음이 난다. 요즘 은호가 놀이터에서 사람을 분류하는 한 가지 방법 중 하나로 열을 세는 방법을 찾았다고 했다. 놀이를 할 때 열을 세라고 하면 정확하게 열을 세고 시작하는 부류가 있고, 영과 땡을 넣어 열 둘을 세는 부류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보기엔 '영과 땡'을 넣는 사람은 시간을 더 주고 여유로운 모습이어서 참 좋아보인단다. 은호가 말한 '좋은 사람 발견법'이 그럴 듯 해보인다.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에게 대답할 시간, 생각할 시간, 반응할 시간을 조금 더 주는 여유가 있는 사람을 만날 때 더 편안하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 정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놀이를 하거나 마음을 나누는 대화에서는 늘 그런 잠깐의 시간을 허용하는 여유가 꼭 필요하다. 벽으로 몰아붙이듯 말하는 사람과는 숨이 막혀 이야기할 수 없지만, 살랑 살랑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사르르 춤을 추게 하는 대화는 계속 나를 이야기로 초대한다. 그 바람이 멈추고 나뭇잎이 바람의 순간들을 다시 기억하듯, 그 대화를 다시 보게 한다. 열을 세라 할 때 열 둘을 세는 그 시간의 허용, 그 것이 '착한 사람'의 기준이라 말하는 놀이터 어린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내 삶에 '그런 두 마디 정도의 여유'를 가져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에게도, 가족들에게도, 내가 만나는 이들에게 잠시 더 멈춰 바라볼 시간을 주면서 오늘을 살아야겠다.
여러분은, 어떻게 열을 세시나요?
* 비통한 사건이 있은 후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얼마나 망설여지던지요. 그래도 계속 반짝 거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들을 쓰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되었어요, 금쪽이들도 있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들의 일상적 이야기들도 분명히 나눠야 할 이야기라서요.
* 아이 키우기 힘든 세월이라고 하는데, 정말 동감해요. 하지만 자꾸 문제만 말하고, 갈등구조로 육아와 교육을 풀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어른들의 시선을 넘어 아이들은 자신의 시간을 부지런히 보내면서 살아가고 있거든요. 어린이들의 일상적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