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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Aug 21. 2023

나의 해고 일지 - 마지막 상담

기록을 남겨보려고요

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 일이 힘들거나, 또는 어떤 사람이 괴롭힌다던지 하는 식의 푸념, 불평, 불만 등을 쏟아 내고 싶을 때면 나를 찾아오곤 했다. 그럴 때면 공감도 해 줬다가, 직설적인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가 하며 사람들을 위로하기도 해고, 공감해주기도 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일은 나에게 꽤 큰 성취감을 안겨주곤 했다. 그런 나와 상대방의 스탠스가 잘 맞아서인지, 나는 ‘중재와 조율’을 내 캐릭터로 삼으며 사람들과 잘 지내왔다.


같이 일하는 후배 A는 종종 나에게, 자기보다 더 아랫사람에 대 험담을 하곤 했다. 일종의 ‘낙하산’이었던 그 친구가 일을 못하고, 일에 대한 센스가 없다며 푸념 아닌 푸념을 털어놨다. 나는 그런 후배 A에게 그 친구가 아직 처음이라 잘 몰라서 그러니, 조금 더 두고 보자고 했다. 어떤 날은 후배 A로부터 스태프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했다며 전화가 왔다. 30분이 넘도록 스태프 욕을 하던 후배 A에게 나는, 후배 A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맞장구를 쳐 줬다. 그러자 기분이 좀 풀린 후배 A는 내 덕분에 그래도 이렇게 다시 일할 힘을 얻었다며,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그런 후배 A는, 내가 해고되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자, 신기하게도 꽤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마치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 후배 A는 내가 해고되자, 나의 일을 나 대신 맡아서 꾸려 갔다. (후에 보니 그 후배 A는 내 직함을 달았다.) 조만간 밥 먹자며 너스레를 떨던 후배 A로부터 그리고 더 이상 연락은 오지 않았다.




4회 동안 예정되어 있었던 상담 회기는, 어느덧 벌써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일단 저질러보자’며 무모하게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때는 ‘이게 맞는 건가’ 혹은 ‘이게 효과가 있나’ 하는 나 스스로의 의심과 고민으로, 상담을 가는 게 다소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일이 어느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어딘가 아쉽기도 하고, 또 어딘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마지막 상담을 하러 가는 길은, 그 간의 3회기와는 다르게 확실히 마음이 가벼워져 있었다. 나 스스로도 무언가 기준을 잡았다는 생각이 안에서 자리 잡아서인지는 몰라도, 내 몸이 처음보다는 바닥에 붙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그전까지는 뭔가 내 몸이 붕 떠있고, 기분도 붕 떠있고 안정되지 못한 채 여기저기 휩쓸려 다니고 있는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그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상담만으로 백 프로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상담의 효과가 아예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상담센터로 가는 길은 굳이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이제는 몸이 기억하며 알아서 걸어가고 있었다. 예스러운 병원 건물 위에 자리하고 있는, 한 달여간 다녔던 상담센터로 향하는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이제는 여기를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당분간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마음이 일렁거렸다. (왜 그랬을까?) 그러자 계단을 오르고 있으면서 동시에 아련한 마음이 올라왔다. 처음 이 계단을 디딜 때의 내가 생각났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져 있었다. 그건 상담 선생님도, 나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상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담 선생님은 내가 봐왔던 것처럼 따스하게 맞이해 주었다. 한 주간 어떻게 지냈느냐는 상담 선생님의 말에, 나는 친구를 만나서 속마음도 털어놓는가 하면, 운동도 조금씩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회사한테 업무적인 연락은 자제해 달라는 말을 전했다는 얘기도 더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깨달았던 것들을 누가 훔쳐갈 새라, 그런 이야기들을 선생님 앞에서 냉큼 술술 풀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나의 속마음을 어느 누구에게도 제대로 털어놓는 게 그동안 참 힘이 들었는데, 이제는 그 속마음을 ‘누군가는’ 제대로 들어주고 있다는 ‘안정감’이 생기자, ‘얼른 이것들을 말해줘야겠다’면서 나도 모르게 다소 신나게 나의 이야기를 풀어버린 것이다. 내가 회사 상사를 나도 모르게 (심리적으로) 아버지 같은 존재로 여겼던 이야기, 그동안 왜 상사에게 제대로 할 말을 못 했었는지 (어린 시절의 내가 겁이 나서 못했던 것처럼), 인터넷에서 간이로 성인애착유형 검사를 했고, 그 애착 유형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고민해 봤던 이야기 등등, 마치 오랜만의 옛날 친구를 만나서 반갑고 신난 마음을 느끼는 것처럼, 나는 선생님 앞에서 내 마음의 두루마리를 마구 풀어헤쳐놓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선생님한테 또 하나 용기 내어 말을 전했다.


“저 그리고, 제가 겪었던 이 이야기를 에세이로 적어보고 있어요. 그냥, 시간이 지나면 다 까먹을 거 같은데, 또 제가 잊고 싶지 않아서요.”

“아 정말요? 멋지네요.”

“그래서 이걸 묶어서 나중에 인터넷에 연재해보려고 해요. 저처럼 힘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 같기도 해서.”

“심리 상담 기술 중에 ‘쓰기 치료’가 있어요. 글을 쓰다 보면 나의 상황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고, 그걸 통해서 나의 마음을 정리할 수도 있거든요. 상담을 하는 분들에게 권장하는 방법 중 하나예요. 그런데 ㅇㅇ씨는 이미 충분히 하고 있네요.”

“아 그런 게 실제로 있어요?”

“네 그럼요. 마음이 복잡할 때는 글을 쓰는 게 도움이 돼요. ㅇㅇ씨처럼 화를 잘 내지 못하는 분들에게 더 좋죠. 잘하고 계시네요.”


잘하고 계시네요.


상담 선생님의 가볍지 않은,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지 않은 말 한마디가 내 마음에 쑤욱, 들어왔다. 잘하고 있다. 나는 잘하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그 말 한마디가 필요했다. 여태 하던 회사 생활에서도, 나의 일상생활에서도, 나는 그 말 한마디가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상담 선생님의 말 한마디는 방심하고 있었던, 퍼석한 내 마음 한가운데 소복이 내려앉아 버렸고, 그 바람에 나는 울컥 눈물이 터졌다. 오늘은 진짜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치 없는 눈물이 제 존재를 잊지 말라며 주책맞게 나와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첫날보다는 사용한 휴지의 양이 현격하게 줄었기에, 거기서 조금은 단단해진 내 마음을 알아차리며 안심(?)했다.


“ㅇㅇ씨의 그 에세이 기대할게요. 그리고 ㅇㅇ씨가 하고 있는 일에서 멋지게 빛날 ㅇㅇ씨의 미래도 기대할게요.”


마지막 상담은 선생님의 어떠한 솔루션 없이, 내가 그간 정리한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 90%, 선생님의 리액션과 지지, 그리고 마지막 위로 10%로 끝을 맺었다. 나는 상담실을 나오며, 상담 선생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상담실을 나가는 나한테, 선생님은 다시 한번 “파이팅! 할 수 있다!”며 든든한 응원을 덧붙였다. 상담실 문을 닫고 나오는 나는,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만 같았다.




나는 상담을 받기 이전에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삶을 살았었다. 상담 초창기에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내 앞으로의 직업 인생이 끝날 것만 같은 불안함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렇기에 더욱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무서웠고, 다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거라는 주문 아닌 주문을 나도 모르게 계속 스스로에게 걸고 있었다. (어쩌면 그걸 스스로 편하게 여겼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4번의 상담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나는 나 자신과 주변을 정리하며 조금씩 내 안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으로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내 생각이 결코 ‘옳았던’ 생각이 아님을 알았고, 내가 만들어낸 공포가, 내가 피했던 현실이 나를 더 옭아맸었단 것을 깨달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상담이었지만, 텅 비어있던 나의 중심에 그 누구도 아닌 ‘나’를 다시 끌어 앉혀 오는 데 상담은 성공적이라 느꼈고, 그건 실제로도 꽤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내 중심에 나 자신이 들어오자, 나는 다시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강의도 찾아 듣고, 운동도 등록했다. 안 쓰는 물건은 버리거나 나누는 등 방 청소도 시작했다. 내 머릿속이 조금이라도 어지러워지려고 하면, 나는 부단히 몸을 움직이며 주변을 정리하거나 아니면 일부러 더 책을 읽으며 집중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나가서 걷거나 일부러 더 운동을 찾아 나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4번의 상담을 받으며, 나는 내 중심에 나를 다시 데려다 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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