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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들 Aug 14. 2023

나의 해고 일지 - 요가 Ⅱ

왼쪽 발목

요가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내가 일을 하며 내가 지녔던 나의 태도도 다시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피해자고, 희생양이고, 회사와 이사가 일종의 가해자였던 입장이었는데, 반대로 나는 일을 하면서 정녕 최선을 다해 임했는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답은 '아니었다.' 아니, '부족했다'가 더 정확할 것 같았다.  나는 부족했고,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그리고 나의 시선에서는 괜찮게 일을 하고 있다고 보아 왔지만,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일종의 자의식 과잉이었던 것이다. 감추고 싶은 부분은 내 눈에서 감춰 버렸고, 대신 현재는 똑바로 보기 싫어한 셈이었다.


나는 왜 그동안 똑바로 보지 않았을까.

그동안 왜 똑바로 보는 것을 피하고만 있었을까.



왼쪽 발목을 다쳤다. 2년 전이었다.


촬영을 하던 중 순간 부주의로 인해 크게 넘어졌다. 왼쪽 발목을 접질렸지만, 대수롭지 않겠거니 하고 넘겼던 발목은 그날 밤, 곧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부랴부랴 병원을 찾아 침 치료도 받아보고, 물리치료도 받기 시작했다. 웬만하면 서 있지 말고, 쪼그려 앉지 말고, 가급적 움직이지 말라는 의사의 조언이 있었지만, 촬영 현장이 바삐 돌아가는 와중에 그 말은 지키기 어려운 일이었다. 촬영 현장 여건 상 서 있기도 부지기수였지만, 발목이 아파서 그때부터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고, 가까운 거리도 잘 걷지 않게 되었다. 발목에 혹여 충격이나 무리가 갈까 우려해서였다. 반깁스도 하고 파스도 붙이면서 나는 발목에 무리가 가는 일은 가급적 자제해 갔다.


움직임이 적어지자 급격히 살이 찌기 시작했다. 왼쪽 발목의 가동성이 떨어지자 나도 모르게 한쪽으로 디디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기에, 몸의 균형도 무너져 가고 있었다. 약해진 발목 근육을 버티고자 내 허벅지가 버티기 시작하면서 골반도 조금씩 돌아가 버렸다. 그 후로 가끔 길을 걷다가 잠깐 방심하게 되면, 잠깐 발목을 삐끗하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다치는 건 늘 ‘왼쪽 발목’이었다. 근육이 약한 발목이 조금만 바닥의 균형이 무너져도 바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그때마다 또 치료를 받고, 또 잠깐 낫고, 아프게 되면 또 치료를 받는 등 2년 여 간의 ‘아픈 손가락’인 ‘왼쪽 발목’은 늘 그렇게 나를 알게 모르게 괴롭혀왔다.


그 후로 2년 동안 지나오며 나는 생활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내가 요가 동작을 하는 동안 나는 의식적으로 ‘왼쪽 발목’에 무리가 가는 동작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조금이라도 왼쪽에 중심이 쏠리거나, 혹은 왼쪽 발목으로 디뎌야 하는 동작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움츠리면서 힘을 덜 주거나 하지 않았다. 나는 왼쪽 발목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는 왼쪽 발목 때문에 무서워서 동작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발목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는데, 괴롭히고 있는 건 나 스스로의 마음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거울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발목을 ‘지키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의 시도는, 결국 발목을 지키기는커녕 내 몸에 도움 되는 동작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걸 사실은 자신이 알았기 때문에 똑바로 보는 것을 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그러는 동안 요가 수업은 다음 동작으로 넘어갔다. 요가 동작을 설명하는 중간중간, 요가 선생님의 말은 가끔 깊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남들만큼 가려고 하지 말고, 본인이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 보지 말고, 한 점을 집중하세요.”

“무리하게 따라 하지 마시고, 내가 할 수 있는 곳까지 천천히 하세요.”

“(이 동작에서) 중요한 것만 생각하세요.”


물론 요가를 하는 동작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요가 선생님의 말은 가끔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을 보면서 쟤처럼 하고 싶어서, 혹은 쟤처럼 되기 싫어서 다른 사람을 얼마나 신경 썼던가. 그리고 남들이 말하는 성공이나 남들의 말에 휩쓸리며 나의 기준을 잃기도 했다. 중요한 건 뭔지 잊어버렸고, 내가 할 수 있는 곳까지가 아니라, 하고 싶은 만큼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게 직장인의 연차가 쌓이면 으레 겪는 ‘매너리즘’이라고, 혹은 신입과 다른 경력직의 ‘여유’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던 것은 아닐지. 나는  요가 동작을 쌓아갈 때마다 나의 인생을 되돌아봤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똑바로 안 했으면, 이제부터 똑바로 하면 되잖아?’


나는 거울   자신과 눈이 마주치며 얘기했다. 이제껏 제대로  적이 없다면, 다시 처음부터 제대로 하면 된다. 그게 요가 동작이든, 아니면 나의 일이든, 그것도 아니면 나의 삶이든.  어떤 것도 상관없었다. 지금부터 똑바로, 제대로 한다면, 남들보단 조금 느릴지라도 다시 앞으로   있을 것이다.


나는 왼쪽 발목을 매트에 디뎠다.

살짝 찌릿한 통증이 왔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 했다. 내가 무서워한 만큼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주저했던 모든 일들은, 결국 나의 무서움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제대로 해야겠다.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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