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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루페

성모의 도시

by Mong
과달루페 성지 앞에 있는 가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조각이 사실적이다.

12월 12일. 우리에게는 군사쿠데타의 날이지만 멕시코인들에게 이날은 과달루페 성모 발현 축일이다. 기독교인들이 아닐지라도 과달루페의 성모를 믿지 않는 자들은 결코 멕시코인들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과달루페의 성모는 멕시코의 정신적 지주고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종교다. 이 성소는 파티마, 루르드와 함께 세계 3대 성모 발현 성지다. 가톨릭 신자들에게 이곳은 생애 한 번쯤 꼭 방문해 볼만한 장소중 하나다.

내 어머니는 평생 불교신자로 사시다가 시한부 판정을 받고 딸들의 권유로 말년에 천주교로 개종하셨다. 개종한 후 어머니는 지역 성당에서 교리를 받으셨다. 투병 중 폐가 심하게 안 좋아지시자 가톨릭 강남 성모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셨고 그곳에서 생을 마치셨다. 고통 속에서도 수시로 찾아 기도해 주시던 수녀님과 신부님으로부터 주님의 말씀을 전해 들으셨고 그 안에서 위로를 받으셨다. 돌아가신 후 장례는 청담동 성당에서 치렀고 유골은 흑석동 성당에 안치됐다. 임종 때 어머니는 나에게 세례를 받으라고 유언하셨는데 나를 제외한 온 가족이 세례를 받는 동안 유일하게 나만 성당에 가지 않았다. 나를 그때나 지금이나 망설이게 만드는 것은 고백성사다. 내가 일상에서 짓는 죄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는 것도 힘이 들거니와 고백한 죄를 다시 짓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캐나다에 와서 신자인 아이들을 ride 해주기 위해 성당에 갔다가 신부님과 주변의 강력한 권유를 이기지 못해 결국 교리를 받았고 사도 요한의 세례명을 받았다.

그렇게 몇 달을 다녀본 캐나다 중소도시 이민자의 성당에서 난 입으로는 신을 외치지만 주님의 길과 다른 행동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제와 신자들을 봤고, 외곽으로 이사한 후 거리도 멀어져 그 이후로는 냉담하게 되었다.

과달루페로 가던 길에 버스에서..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같은 느낌이어서 한 컷.
멕시코시티의 버스 안 풍경. 굴절버스의 앞칸은 여성전용이다. 자리가 있어도 남성들은 들어가지 않는다. 간혹 연로한 노인분들은 들어가 앉는 것을 봤다.

아침부터 서둘러 버스를 타고 과달루페로 출발했다.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간 외곽에 있는 과달루페 성당에 도착하니 여느 관광지와 다름없는 풍경들이 펼쳐졌다. 성당 바로 앞에는 십자가와 교회용품,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고 입구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대로변에는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과달루페 성모의 성당은 1600년대 건설된 옛 성당과 1970년대 지어진 새로운 성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성당 사이에 재임 중 이곳을 네 번이나 방문했다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상이 있다. 옛 성당은 지반 침하로 피사의 사탑처럼 살짝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다. 멕시코시티 자체가 거대한 호수를 메꾼 연약지반 위에 세워진 탓에 지진의 영향도 많이 받고 자체 지반침하도 조금씩 이루어져서 오래된 건물들이 조금씩 기울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새 성당에 들어가자마자 미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뒤쪽에서 미사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서 있다가 나왔다.


정면에서 보면 구 대성당이 살짝 기울어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평일임에도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새 성당의 모습이다. 같은 시기에 지어진 몬트리올 올림픽 스타디움이 연상되는 건물이다.
구 대성당 왼쪽에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상이 보인다.
새 대성당에서 미사를 보는 사람들.
천장의 조명이 인상적이다. 과달루페 성모가 아메리카 대륙의 수호자로 지정되어 왼쪽에 아메리카 대륙 각국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대성당에서 바라보이는 구성당
십자가 밑에 M자는 성당이 세워진 테페약 언덕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새 성당을 보고 나서 구성당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고딕 양식의 성당은 생각보다 소박하고 밝았다. 가장 먼저 성모가 발현한 성지이고, 성모의 주문이 성당의 건립이었음에 비추어 본다면 상대적으로 성당은 지극히 서민적인 분위기였다. 미사가 열리고 있지 않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입장해서 각자의 기도와 묵상을 하고 있었고 분위기는 경건했다. 나는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이 성당의 분위기가 좋았다. 성당 뒤쪽에서는 어떤 아주머니가 맨발로 십자가의 길을 재현하고 있었다. 세례만 받았지 천주교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나에게 이 성지의 각 건축물들과 그림과 조각들을 통해 느끼고 알 수 있는 것들은 한계가 있었다. 누구나 자신이 아는 것만큼만 보이기 마련이니까. 방문전에 이곳에 대한 공부를 충분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화려함으로 치장하지 않은 성당 내외부의 모습을 통해서 강력한 믿음의 힘을 느끼는 것은 무지한 자에게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성모는 이곳에 성당을 세우라고 주문했지만 사실 성모가 주문한 성당들은 이미 아메리카 원주민들 가슴속에 지어지고 있었을지 모른다.

미사 때마다 건축헌금 얘기가 빠지지 않았던 한인성당과 헌금의 규모로 신자들을 줄 세우던 모습이 잠시 떠올랐다.

구성당 내부의 모습.
아마도 십자가의 길 순례를 하고 계시는 듯한 노파의 모습
기울어진 성당의 모습이 조금 위태하게 느껴진다.
성당 앞 대로에서 바라본 성당. 이쪽부터 북쪽으로는 치안이 상당히 안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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