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의 여행은 쏘깔로에서 시작해서 쏘깔로로 끝난다. 모든 멕시코 여행자들의 블로그나 유튜브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곳은 대성당과 대통령궁이 담처럼 에워싸고, 광장 한가운데에 거대한 멕시코 국기가 우뚝 서 있는 쏘깔로 광장이다. 멕시코에서 제일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독감 치료를 위해 부득이하게 미뤄왔던 쏘깔로를 향해 또 걷기 시작했다. 시기를 잘 선택해서 온 것인지 여행의 모든 날이 걷기에 쾌적했다. 이날은 작은 기내 캐리어도 하나 장만할 생각이었다. 기내 수하물 가방으로 보스턴 백을 들고 왔더니 조금 무겁기도 했고, 멕시코 시장에서 뭔가 하나 사보고 싶기도 했다. 쏘깔로까지 이어지는 길은 이전 날 걸었던 길들에 비해 다소 삭막했고, 문이 닫혀있는 점포들이 유난히 많았다. 약간 슬럼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지루하고 길게 느껴졌던 길을 한참 걷고 난 후 Pino Suarez 전철역에 도착했다. 넓고 큰 전철역 광장에는 길거리 음식들과 잡화를 파는 포장마차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10페소를 내고 과일을 담아 파는 큰 컵을 하나 샀다. 이런저런 과일들이 잘라져 담겨 있었는데, 살짝 지쳐있던 내게는 꿀맛이었다.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두 블록 남은 쏘깔로 광장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Pino Suarez 전철역 풍경
길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
멕시코시티의 관공서 건물. 그 숱한 지진에도 저리 멀쩡히 살아남아 있는 게 신기하다. 잘 보면 시티의 건물들이 조금씩 기울어져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지진의 영향이다.
광장 한 편의 그늘을 찾아 식사를 하는 부부(?)
쏘깔로 역 앞의 남자. 패션이 남달라서 한컷.
이 여행에서 하나 아쉬운 포인트가 이 건물에 있는 저 카페를 방문하지 않은 것이다. 방문한다 한들 저 창가 자리가 나에게 돌아왔을까 싶긴 하지만.
멕시코 여경들. 앗 눈이 마주쳤었네.
대통령궁
쏘깔로의 멕시코 국기는 역시 그 크기가 인상적이었다. 광장의 동쪽에는 대통령궁이 있고 북쪽으로는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 있다. 대성당은 1500년대부터 240년에 걸쳐 건설되었고,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건축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고딕의 특징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바로크적인 과장된 외관도 눈에 띈다. 멀리서 보면 전체적인 축이 살짝 기울어져 있는 듯한데 이 역시 지난 지진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대성당의 북동쪽으로는 Templo Mayor Musium이 있는데 이곳은 지하철 공사 중 발견된 마야 유적지다. 중남미의 역사적인 스페인 유적과 멕시코 고대 마야문명 최고 유적지가 지척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천주교 대성당 바로 옆에서 인디언 무속신앙 퍼포먼스가 상시로 벌어지는 모습도 꽤 인상적이다. 대성당 외에도 이 지역에는 꽤 많은 중소규모 성당들이 즐비하다. 대략 3-4백 미터에 하나씩은 나타난다. 어머니 유언으로 세례를 받은 나이롱 신자인 나에게 이 성당들은 좋은 쉼터가 되어 주었다. 걷다가 피곤할 때 잠시 들어가 가만히 멍 때리고 나면 피로도 풀리고 마음도 살짝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이후로 쏘깔로를 여러 번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 첫날의 쏘깔로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그저 단편적으로 접해오던 멕시코의 후진 이미지는 감히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광장은 오랜 문화유산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까짓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 편안하게 즐기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못살지만 대대손손 뼈대 있는 집안사람들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쏘깔로 대통령궁 뒤쪽으로는 재래시장들이 들어서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교민의 가게에서 기내 캐리어 하나를 샀다.
카메라를 보자 아는 체 하는 멕시컨들. 이들 이메일이라도 받아놨어야 하는데... 사진 찍는 내가 오히려 쑥스러웠다.
사진을 받게 되지도 않을 텐데 기꺼이 포즈를 취해주던 멕시코 사람들. 모르는 음식에 잘 도전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저 빵 하나를 못 사줬네...
도넛 팔던 아저씨
저걸 팔면 얼마나 팔 것인지, 저걸로 생계가 될지. 가족들의 무심하게 흩어지는 시선들이 흥미롭다.
멕시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매달리듯 애정표현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장사하는 엄마와 아이. 모전자전의 포스.
멕시코의 생활물가는 정말 저렴한 편이다. 음식값도 저렴하고, 교통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싸다. 우리가 보통 국민소득으로 그 나라의 경제 수준을 구분하는데 이게 과연 그 나라의 국민 생활 수준과 행복도까지 단정할만한 객관적인 지표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생긴다. 소득이 낮은 나라는 그만큼 생활비도 저렴한 편이어서 결국 그들도 살만큼 살아가고 있으니까. 예전에 피지에서도 그랬고, 이후에 가게 된 쿠바인들의 삶도 그랬다. 비싼 공산품을 충분히 사서 쓰는지의 차이일 뿐이지 그들도 나름대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서 살아가고 있다. 기대했던 것보다 캐리어 가격은 그다지 싸지 않았다.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 한국인이 있었다. 머나먼 멕시코에서 가방가게를 하는 한국인이라니. 한국인들은 대체로 해외 어느 곳이든 이런 종류의 가게를 잘하지 않는다. 보통 한국음식점을 하거나 한인민박을 하거나 한인 하숙을 치거나 여행 가이드를 하기 마련이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한인마켓이 큰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로 그렇다. 멕시코는 한인사회의 규모가 크지 않다. 이런 멕시코 재래시장에서 멕시컨들을 상대로 가방을 팔다니. 참 특이한 케이스였다. 가게에는 대학생 딸내미가 나와서 부모님 장사를 돕고 있었다. 한국말과 스페인어가 능수능란했다. 가격의 메리트가 있진 않았지만 꼭 그곳에서 팔아주고 싶었다.
내 카메라를 보고는 이분들도 다시 한번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손에 들고 있는 것도 뺏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삼백 원짜리 화장실.
삼륜차 택시.
행복이란... 가끔 날 활짝 웃게 해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는 것이겠지.
큰 광장만 광장이 아니다. 누구나 쉬어갈 수 있고, 잠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 복지가 뭐 별건가.
성당문은 늘 열려있었다.
버스 기다리는 사람들
버스 기다리는 사람들 2
버스에 탄 사람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
멕시코에서 가장 흔한 편의점 OXXO
있을지 없을지 모를 마지막 손님을 기다리는 부부.
영업 종료하는 가방가게 주인
하지만 내가 카메라를 들고 마주한 멕시컨들은 하나같이 선해 보였다. 서툰 영어로 애써 소통해주고, 눈 마주치면 인사해주고... 캐나다에서 눈만 마주치면 가식적으로 웃어주지만 뒤돌아 서면 인상 찡그리던 다수의 캐네디언을 목격했었고 또 많이 실망했었던 나에게 그들의 선한 웃음은 진짜였다.
어제 바로 핸드폰을 소매치기 당하고도 난 그들을 믿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었던 것일까. 뒤통수 된통 맞고 질려버릴 만 한데... 난 이미 이들을 용서하고 있었다. 제대로 관리 못한 자책을 하면서.
다시 우버를 불렀다. 우버를 부를 때 앱으로 목적지만 찍으면 알아서 적합한 드라이버와 매칭이 된다. 우버 기사가 오면 Hi, Hello만 하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Thank you! 만하고 내리면 된다. 운행기록 다 남고, 드라이버 인적사항 투명하고, 말이 안 통해도 목적지와 승차위치 공유 잘되고,돈 주고 받을 필요 없고... Not Bad!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