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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쯤은 쉬어도 돼..

이튿날

by Mong

늘 나의 여행은 틈이 없이 빡빡한 편이었다. 늘 동이 튼 후의 거리가 궁금하고, 늘 하루 해가 고개를 숙이는 때의 빛을 놓칠 수 없었다. 햇살이 물밀듯이 창을 가득 채우고 들어올 때까지도 나는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전전날 오후부터 쉴 새 없이 걷고 타고 비행기에서 쪽잠을 자다가 시티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12시간을 돌아다녔으니 그 피로가 어지간했을까. 꼼짝도 하기 싫었다.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Exterior의 아파트 복도. 무덤덤한 노출 콘크리트 복도에 햇살과 화분 하나. 멕시컨들의 디자인 감각은 볼 수록 놀랍다.

그래도 일어나 나가야만 했다. 병원 예약이 있었고 배가 고프기도 했다. 한식이 먹고 싶었다. 여행자들의 블로그를 찾아보니 멕시코시티는 한국인 중남미 여행자들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란다. 가장 많은 한식당이 모여있고,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메뉴가 다양한 한인타운이 있는 곳이 바로 멕시코시티였으니까. 코리아타운은 Zona Rosa라는 지역에 형성되어 있다. 그들이 설명한 대로 각양각색의 한인 식당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하나를 골라서 김치찌개로 점심을 해결했다. 병원에 가기 전에 멕시코 독립 기념비를 찾아갔다.

LA에서 처음 봤던 Bird가 멕시코시티까지 진출했다. 가끔 다리가 힘들 때 이용해 보니 스릴도 있고 편리했다. 뒤에 있는 것이 독립기념비. 이 도시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거대한 라운드어바웃 한가운데 우뚝 솟은 기념비에는 접근 제한이 없었다. 해의 방향에 따라 사면으로 그늘이 길게 드리우면 바로 그곳이 오가던 행인들의 쉼터가 된다. 기념비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자니 갑자기 노곤함이 밀려왔다. 기념비에 등을 기대고 눕다시피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잠시 쭈삣거리다가 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돌바닥과 기념비의 벽면은 잠시 서늘하게 느껴졌지만 이내 적당하게 시원해졌고, 선선한 바람이 셔츠 안을 자유자재로 파고들었다. 카메라를 가방 안에 넣어두고 나는 한쪽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반쯤 누운 자세로 눈을 감았다. 평화롭다. 이곳이 과연 마약 카르텔이 각종 흉악범죄를 수시로 저지르는 범죄의 도시가 맞긴 한 걸까? 그대로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두 시간을 있었다.

로터리를 빙 둘러서 돌 벤치들이 이어져 있고, 사람들은 각자 도시락을 먹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혹은 멍 때린다.
그늘 밑으로 찾아드는 사람들.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저마다 편안한 포즈로 휴식을 즐긴다.
멕시코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형물들이 잘 배치된 기념비.
딱 이런 모습으로 나도 뻔뻔하게 두어 시간을 쉬었다. 세상이 다 내 집인 것 마냥.
Chapultepec 공원 쪽으로 향하는 큰길. 의외로 도시설계가 세심하게 잘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쯤의 날씨가 어떤지 알 수 있는 옷차림. 하카란다 꽃이 사방에 흐드러져 있다. 보라색은 내 멕시코 여행의 또 다른 상징이다.
유난히 다정했던 중년부부. 서로를 향한 자연스러운 미소가 보기 좋았던..
Zona Rosa의 어느 길. 가로수가 만든 터널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바람에 이리저리 춤을 췄다.
한인타운의 가게들. 반가웠던 한글 간판들. 어디 가나 멕시컨 손님들이 더 많고, 직원들도 대부분 멕시컨이다.
Uber Eats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던 것 같은데 멕시코 시티에는 이미 도입되어 있었다.
노닥거리는 멕시코 청년들. 잘 팔리지도 않는 것 같은데 수입은 좀 되는지...
노점상 하는 엄마를 따라나선 아이. 자꾸 눈길이 가서 훔쳐보게 됐다. 화려한 Zona Rosa의 길바닥을 채우는 고단한 삶들.
깊게 파인 주름 하나마다 삶의 역정이 새겨져 있을 터. 셀 수도 없을 희로애락 감정의 편린들을 그녀는 다 기억하기나 할까?
지금 보니 그냥 타코 집이 아니었다. 난 모든 길거리 음식점들이 다 타코를 파는 줄 알았다. 저 사발에 어떤 음식이 담겨 있던 것인지 이제야 궁금해진다.
무심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 주인. 도대체 캘린더 걸들은 왜 오려서 붙여 놓는 걸까?
어디에나 넘쳐나는 경찰들. 교통경찰이 무장까지 하고 있다. 그 옆에서도 소매치기 같은 범죄는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렇게 오후 한나절을 그들과 함께 졸다가 멍 때리다가 간혹 카메라 셔터도 누르면서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조금 늦게 병원에 갔다. 청진기로 들리는 내 숨소리가 다소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많이 걸어서 그런가? 경계성 고혈압인 내 혈압이 최근 15년간 처음 보는 수치로 안정화되어 있었다. 캐나다 비자 신체검사를 받을 때 혹시나 싶어 혈압약 먹고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잠깐 떠올랐다. 이날은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향했다. 가벼운 스낵과 내 인생의 동반자 콜라 두병을 사들고.

긴 여행을 위한 휴식 같았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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