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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로

첫 날

by Mong

멕시코로 떠나는 비행기는 자정을 넘어서야 토론토 피어슨 공항을 출발했다. 이른 새벽에 멕시코시티 공항에 도착한 후 곧바로 예약해둔 에어비앤비 숙소로 향했다. 미리 주인과 얘기를 해 놓아서 이른 아침이었지만 일단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 수 있었다.

악명 높은 멕시코시티의 공해를 난 잘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적당히 선선하고 건조한 공기의 쾌적함이 우버 승용차의 창을 밀고 들어왔다. 숙소는 일주일 예약했다. 일주일 후 또 다른 아파트로 옮겨갈 예정이다. 아파트는 살짝 미로 같은 구조를 가진 복도를 빙 둘러서 막다른 곳에 있는 투룸짜리 작은 집이었다. 아파트 창에 모기장이 없었다. 선풍기 뭐 이런 것도 없다. 뭔가 걱정할 일이 생겼다는 우려와 달리, 이 아파트에는 모기를 비롯한 해충이 없었다. 건조하고 선선한 해발 2000미터 고지에 들어선 이 도시의 특징이었을까?

아파트 생활은 대체로 만족스러웠으나 밤늦게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청년들 때문에 일찍 잠들기가 힘들었다.


멕시코시티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독감 치료를 위해 한인병원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 다음 바로 데이터 유심을 구매했다. 보통은 출국 전에 유심카드를 구매해 놓는데 지난 일주일간 아무것도 못하고 정신없이 드러누워 있었던 덕분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멕시코에 와버렸다. 숙소의 와이파이를 이용해 가야 할 곳들을 구글 오프라인 지도에 저장해 놓고 한인병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대략 5-6킬로 정도 걸리는 길. 그냥 가볍게 골프코스 하나를 걷는다고 시작한 걸음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카메라를 들고 보이는 모든 걸 렌즈에 담으면서 다니니 자연스레 걷는 시간이 길었다. 다리는 아프고 등은 땀으로 푹 젖어가는데 머리는 오히려 맑아졌다. 독감에서 드디어 해방되는 것 같은 가벼운 느낌이 좋았다.

병원에서는 내 병이 기관지염이라고 했다. 엄청난 양의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다. 병원 인근의 AT&T 매장에 들려 100페소짜리 심카드도 하나 구매했다. 일단 인터넷을 해결하고 나니 마음의 안도가 찾아왔다.


빌딩의 그림자가 골목을 어둠으로 채워갈 무렵 나는 오전에 내가 걷지 않았던 길로 돌아서 집을 찾아갔다.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어쩐지 이곳의 분위기가 예전 내가 자라나던 서울의 모습과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코앞에 두고 어느 광장에 이르렀을 때, 어떤 여인이 내게 다가왔다. 카메라 가방이나 카메라, 휴대폰을 조심해서 간수하라는 충고였다. 당신은 못 느끼겠지만 벌써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섬찟한 경고였다. 서투른 영어로 나에게 조심하라는 충고를 남기고 그녀는 곧 길 건너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잔뜩 쫄아든 난 꺼내 놓았던 카메라를 가방에 챙겨 넣고, 가방 자물쇠를 잠근 후 반대길 건너의 숙소로 향했다.


범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충고를 들은 이 관광객에게 그날 밤은 그래도 낭만적이었다. 낮은 달이 뜨고, 보랏빛 하카란다 꽃이 사방에 흐드러진 멕시코시티 변두리의 밤공기는 묘하게 내 고향의 향수를 이끌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멕시코시티 변두리의 난전들. 벼룩시장이다. 우리나라 황학동이나 동묘시장쯤 되려나..


카메라를 보자 알아서 포즈를 취해준다. 낯선 동양인을 향한 그의 미소가 반가웠고 고마웠다.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에서 튀어나올 법한 느낌의 할아버지. 묘하게 멋스러웠던 이분의 인상이 오래도록 잊어지지 않았다.

멕시코시티 역시 애완견의 천국이다.



이 길은 숙소가 있던 Doctores에서 한인병원이 있는 Zona Rosa로 가는 길이다. 멕시코시티의 대학로 같은 곳인데 고급식당과 노천카페들이 줄이어 있다. 점심장사를 준비하는 식당들의 풍경과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걷는 재미가 있다. 유럽풍의 오래된 건물들과 1층마다 빠짐없이 들어서 있는 가게들. 모기 같은 벌레가 없어서인지 가게들마다 창을 활짝 열어 놓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누군가 같이 걸을 수 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참 걷기 좋았던 길. 울창한 가로수 사이로 비집고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또 얼마나 눈부셨는지. 1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참 생생하다.


멕시코에는 마리아치가 있었다.


멕시코시티에서 처음 만난 풍경. 우리 거리에서는 이제 사라져 버린 구두닦이. 저곳에 앉아 내 신발이 때를 벗고 광이 나는 과정을 오롯이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0페소 정도.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던 카페.


어릴 때 내 아버지도 저렇게 나를 태우고 다녔다.
시내로 노점상을 하려고 나온 남매.
작은 성당과 지진 피해 난민들.
곳곳에 경찰은 참 많았다.
50미터에 하나씩은 있었던 타코 가게
루차 리브레 마스크들. 스페인어권 프로레슬링 게임인데 현지에서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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