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도보 이동을 선택했다. 아직 이 모든 느낌이 새로울 때 가능한 많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같은 장소를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방문하게 되면 금방 그 환경에 익숙해지고 새로움이 옅어지면 장소에 대한 흥미도 잃기 마련이다. 결국 사진 찍기도 마음이 하는 일이다. 피사체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기 전에 최대한 많이 셔터를 눌러야 했다. Zocalo광장에 이르는 길은 흡사 서울의 을지로, 종로 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숙소에서 문화예술궁전(Palacio de Bellas Artes)까지는 8차선 대로가 길게 죽 이어져 있었다. 문화예술궁전에서 쏘깔로 광장까지는 오래된 유럽식 건축물들과 각종 로드샵들이 줄지어 있는 Old Downtown이다.
중무장한 여경. 별로 큰일이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늘 저렇게 준비를 하고 있다.
예술궁전에서 쏘깔로로 이어지는 거리. 저 멀리 소깔로 대통령궁이 보인다.
문화예술궁전 앞 교차로. 짐칸이 앞에 있는 자전거에 생수통을 싣고 달리는 모습이 신기하다.
상이군경을 위한 모금활동.
좀 비싸 보이는 바이크를 타고 출근하는 샐러리맨. 멋있어 보여서 한 컷.
그렇게 길을 걷다가 이제 막 문을 열고 호객을 하던 구두닦이 할아버지에게 구두를 맡겼다. 십여분 정도 구두를 샴푸 해서 때를 닦아내고, 광약을 바르고 광을 내는 과정을 멍하니 구경했다. 평생 처음 구두닦이에게 신발을 맡겨봤다. 내 구두가 남의 손에 의해 깨끗하게 닦이고 빛이 나는 것을 바라보는 쾌감이 바로 이런 거였구나... 굳이 다시 해볼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묘한 상쾌함이 밀려왔다.
다시 길을 재촉해 조금 더 걸어가니 El moro라는 유명한 추로스 집이 나타났다. 우리 돈 2천 원 정도에 추로스가 한 봉지 가득. 마침 출출하던 차라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하나씩 꺼내먹은 추로스가 다 없어질 때쯤 나는 드디어 문화예술궁전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저 멀리 쏘깔로의 대통령 궁이 보였고, 거리에 가득한 인파가 나를 살짝 흥분시켰다. 나는 곧 300미리 망원렌즈를 꺼내 들었다. 이미 해는 중천에 떴고, 그곳에서 내가 카메라로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의 표정을 담는 것 뿐이었다. 한참 멀리 떨어진 피사체를 쫓아 렌즈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문득, 앞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이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없었다. 일부러 청바지 앞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내가 전혀 눈치도 못 챈 어떤 순간 사라진 것이다.
눈 앞이 깜깜해졌다. 지금 여기서 내가 핸드폰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나? 길도 모르고, 스페인어도 모르고...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누군가 차를 깨부수고 차 안의 카메라와 노트북을 강탈해 가서 멘붕이 왔던 그 순간이 절망처럼 떠올랐다.
일단, 핸드폰을 사야 한다. 그래야 뭐든 할 수 있다. 아침에 걸어오면서 봐 둔 전자상가를 떠올리고 바로 그쪽으로 달려갔다. 이곳에는 LG나 삼성폰은 거의 없고 있어도 고가였다. 가끔 중고폰을 팔고 있는 노점들이 보였다. 내 폰도 곧 저 매대에 오르겠지? 씁쓸했다. 가게마다 중국산 저가 브랜드나 모토롤라 제품들을 전시해 놓고 팔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는 모토롤라 G7 plus라는 제품을 골랐다. 최신 os에 다른 사양들이 무난했다. 6천 페소 달라는 걸 얼마를 더 깎고, 현금인출기를 찾아 지급했다. 영어가 전혀 안 통하는 동네에서 이 어려운 걸 또 해냈다.
덤으로 받은 100페소짜리 심카드를 꽂고, 바로 구글에 로그인했다. 내 기기 찾기를 시도했지만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소매치기당한 게 틀림없었다. 일단 잃어버린 핸드폰에 초기화를 걸었다. 모든 계정 암호를 새로 바꾸고 최소한 필요한 앱들을 다시 복원했다. 경찰은 찾지 않았다. 지난번의 경험으로 이게 모두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내 여행자 보험에는 휴대품 도난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그저 시간낭비일 뿐이었다.
멕시코시티에서 이런 풍경은 이제 낯설지가 않다.
이날 이후 이곳은 나의 최애 장소가 됐다.
가끔 버거킹 바로 옆 수끼야에 가서 규동을 사 먹기도 했다. 밥이 생각날 때 이만한 가성비가 없었다.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한바탕 난리를 친 후 더 이상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우버를 불러 Zona Rosa로 향했다. 내 얘기를 듣고 의사 선생님은 그 짧은 시간에 핸드폰을 새로 사들고 거기까지 온 내가 대단하다고 했다. 여기는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니 늘 조심하라는 충고와 함께. 진료를 마치고 나서 버거킹으로 들어갔다. 배도 고팠고, 핸드폰 세팅도 다시 다 해야 했다. 이 동네에 버거킹, 수끼야, 엘모로, 맥도널드. 내가 여행 중 휴식을 취했던 모든 장소들이 다 모여 있다. 어느 곳이나 2층은 창 없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 해충이 없다. 2층 창가에 앉아 있으면 바깥공기가 한 톨 남김없이 다 느껴진다. 파리 모기가 없는 오픈된 음식점이라니..여태껏 어느 곳에서도 겪지 못했던 경험이다. 식사를 하고 핸드폰을 충전하면서 바깥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오전에 겪은 일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슬며시 잦아들었다. 덕분에 새 폰을 하나 샀고 기대했던 것보다 폰의 성능은 만족스러웠다.
마음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나자 다시 아까 핸드폰을 잃어버린 곳으로 가서 밤 풍경을 보고 싶어 졌다. 우버를 불렀다. 우버 요금이 무척 쌌다. 우리 돈 몇천 원이면 2-30분 이내 거리는 다 갔던 것 같다. 우버도 종류가 여럿인데... 난 주로 소형차의 합승을 이용했다.
완전히 오픈된 이층. 모기가 없다. 다리가 피곤해지면 자연스레 발길이 가던 장소. 와이파이, 핸드폰 충전, 멍 때리기.
스냅으로 한컷. Zona Rosa의 패셔니스타.
꽃을 든 남자
문화예술궁전 앞 사거리. 가운데 보이는 백화점 8층에 가면 멋진 테라스 카페가 있다.
저녁 시간 멕시코시티의 다운타운은 낮보다 더 북적댔다. 상점과 식당, 공원마다 일을 마치고 나온 시민들이 이리저리 흘러 다녔다. 심심하고 무료한 캐나다에 몇 년을 있다가 오랜만에 한국처럼 분주한 밤 풍경을 보니 마음이 설레었다. 쏘깔로는 다음 저녁을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피곤했다. 한나절을 핸드폰 때문에 우왕좌왕했으니 오죽했을까. KFC에서 치킨을 사들고 다시 또 우버를 불렀다.
휴대폰을 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던 소녀.
핸드폰을 잃어버린 바로 그 장소에서 한 커플이 셀카를 찍고 있다.
길거리 클래식 버스킹
추로스. 15페소에 한 개가 아니라 한 봉지다.
여기도 그렇고 쿠바도 그렇고 이 동네 피자가 캐나다보다는 훨씬 맛있고 싸다.
길거리 서점
롹밴드 버스킹. 특이한 것은 이런 공연 앞에 늘 댄서가 있다. 강렬한 롹 사운드와 리듬에 맞추어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댄서에게서 쉽게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