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나의 속살
모로성을 다녀온 후 하바나의 날씨가 다시 어두워졌다. 섬의 기후는 곧잘 돌변한다. 올드 하바나에 돌아온 후 나는 오비스포 쪽이 아닌 까삐톨리오 뒤쪽 거리로 향했다. 까삐톨리오와 잉글라테라 호텔 사이의 골목은 새롭게 단장되고 있었다. 오비스포와는 달리 조금 현대적인 느낌의 쇼핑거리가 될 듯 했다. 이 거리 끝에 있는 작은 공원은 와이파이를 이용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여기저기서 와이파이 카드를 파는 사람들이 호객을 했다. 호텔과 똑같은 가격에 카드를 파는데 누가 왜 굳이 길거리에서 카드를 사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 공원을 벗어나 서쪽으로 더 들어가면 하바나의 평범한 거리와 골목들이 나타난다. 낡은 건물들 사이로 조금씩 외벽이 부서져 내리고 있는 건물들이 보였다. 새로 페인트 된 건물들은 찾기가 힘들었다. 건물의 외벽에 뿌리를 내린 식물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대부분 도로는 포장이 되어 있었지만 여기저기 포트홀들이 복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골목 어귀마다 청소차량용 Junk container가 놓여 있다. 아마도 그 안에 생활 쓰레기를 버리면 주기적으로 트레일러가 와서 싣고 가는 듯했다. 관광지가 아니어서인지 외국인 관광객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길가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들은 제멋대로 나뒹굴었다. 하바나의 민낯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곳들을 둘러보지 않고 오비스포 쪽만 들여다봤다면 생각보다 그럴싸했던, 마치 유럽에 와 있는 듯한 느낌만 기억하게 되었을 것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근사한 관광지에서 몇 걸음만 더 들어가도 완전히 다른 풍경들, 도시의 속살들이 드러나곤 한다.
하바나의 속살은 그러나 그렇게 실망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꾸미지 않은 그들의 민낯이 예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진솔했고, 정이 갔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그곳에 하바나 사람들이 있었다. 좌판을 펼쳐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던 우리들의 옛 골목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깨끗한 아파트로 채워져 가는 한국의 대도시에서 골목 어귀에 둘러앉아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사람들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그런 골목들이 사라져 간다.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 밀집해서 살아간다. 하바나의 커뮤니티는 아직 골목을 중심으로 끈끈해 보인다. 해가 지기 전까지 같은 거리를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