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꽉 채운 버스 패키지여행
번잡한 출근 시간이 지난 후 시먼딩 지하철역 5번 출구 앞 도로변은 크고 작은 투어버스들로 가득 채워진다. 모두 소위 예스진지투어를 떠나기 위해 대기 중인 차량들이다. 예스진지는 각각 예류지질공원, 스펀, 진과스, 지우펀의 지명 앞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예류지질공원은 퇴적사암층이 바람과 파도의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해안공원이다.
스펀은 기찻길에서 풍등을 날리는 체험으로 잘 알려진 곳이고 진과스는 예전 금광을 관광상품화 한 곳으로 비탈에 만들어진 광산촌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아름다운 곳이다. 지우펀은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으로 유명해진 곳으로 홍등이 가득한 마을의 비현실적 야경이 압도적이다.
Klook이나 kkday 등의 사이트를 통해서 예약이 가능하고 가격은 일정과 포함사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보통 한국인 가이드가 있고, 특정 식당이나 상점 등의 이용을 권유하는데 다른 패키지들처럼 강매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하루 종일 100km 남짓을 이동하는데 스펀, 진과스, 지우펀의 오래된 산길을 달리는 버스가 간간히 아슬한 스릴을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지우펀은 오후 일정으로 지우펀을 따로 찾아온 차량들이 그 좁은 마을 길에 뒤엉켜 난리법석인데도 워낙 기사분들이 그 환경에 익숙해 있어서인지 꽤 질서 있게 그 좁은 길을 빠져나간다.
제주의 현무암처럼 보이는 저 바위들은 사실 퇴적된 사암이다. 파도와 바람 때문에 차별적으로 풍화되고 침식돼서 마치 사람이 빚은 것 같은 모양새를 낸다. 바윗 속 철분이 산화되어 검은색을 띠고, 구멍이 나 있어서 더더욱 현무암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왕바위가 그 중 가장 유명하다. 이집트의 여왕 네페르티티를 닮았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계속된 침식으로 목부분이 약해져서 수년 안에 붕괴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예류를 대표하는 여왕바위가 사라질 것에 대해 다양한 보존대책을 두고 토론이 이루어 졌고, 그 결론은 붕괴에 대해 과학적인 모니터링을 하되 절대 인위적인 보존조치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났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의 접촉을 최대한 제한하기 위해 똑같은 복제품을 만들어 그것을 관람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상태에서 그대로 보전조치가 불가능한 것이 아닌데도 비록 흔적 없이 사라질지라도 자연의 순리에 맡기고 그 과정을 기록하고 추억하겠다는 사람들의 계획이 근사하다.
지금 그곳에는 여왕의 마지막을 눈에 담기 위한 행렬이 이어지고 있으려나...
스펀폭포. 일명 대만의 나이아가라 폭포다. 일반적인 예스진지투어 중에는 이 폭포방문이 빠져 있는 경우가 있어서 예약할 때 주의해서 살펴야 한다. 폭포가 포함된 투어는 예스폭지라는 이름으로 판매가 된다. 예류지질공원 관람 중에 걷는 거리가 은근히 길어서 살짝 더위에 지쳐 있던 차에 시원하게 펼쳐지는 폭포와 숲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폭포에서 20분 정도 걸어서 스펀 옛 마을에 도착했다. 기찻길 양쪽으로 상가들이 줄지어 있다.
태국의 매끌렁 철도시장, 군산 경암마을을 연상시킨다. 매끌렁이나 스펀에서는 실제로 교외선 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직접 볼 수 있다. 스펀은 원래 석탄운송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1980년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탄광이 폐광된 후 이 지역을 운행하던 핑시선은 산업철도에서 관광철도로 전환되었고 지역 마을들이 관광상품으로 개발되었다. 그중 가장 성공적인 관광상품화 사례가 스펀의 풍등체험이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풍등의 절반 정도는 한글이 적혀 있을 정도로 한국 관광객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불이 붙어 하늘로 오르는 풍등을 보고 있으면 화재가 나지는 않을지, 저 많은 풍등이 다 떨어지면 환경오염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일단, 그동안 문제가 될만한 심각한 화재사건은 거의 없었다고 하고, 화재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재료의 사용이 의무화되어 있는 데다가 장소와 시간 등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어서 비교적 안전한 이벤트라고 한다. 떨어진 풍등을 지역주민이 수거해 오면 보상금을 지급해서 회수율을 높이고, 지역주민의 불만도 해소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라고 하니 화재와 환경문제는 그다지 걱정할 만한 일이 아닌 듯하다.
풍등에 적었던 소망들을 돌이켜보면 소원성취는 딱 반타작이었다. 대구 달구벌 관등놀이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풍등을 날리는 행사라고 하니 내년 부처님 오신 날에는 대구로 가서 다시 한번 소원을 빌어보면 어떨까?
진과스는 한때 유명한 금과 구리 광산지역이었다고 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 최대 번영기를 보냈는데 일대에 일본식 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고, 지금은 관광상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부 갱도를 체험할 수 있고 황금박물관에서는 220kg에 달하는 순금덩어리를 직접 만져 볼 수도 있다. 이곳의 최고 흥행 상품은 광부도시락이다. 다양한 가게들이 각자의 개성을 담아 돼지고기 튀김이 곁들여진 도시락을 판매하는데 일부 가게에서는 먹고 남은 철제도시락을 기념으로 가져갈 수도 있도록 음식값에 도시락용기 값을 포함해서 판매하기도 한다. 투어객들 대부분이 여기서 약간 이른 저녁을 해결한다.
지우펀은 북부해안 비탈에 형성된 작은 금광마을이다. 비탈진 마을 사이사이로 좁은 골목길들이 미로처럼 이어지고 마을을 관통하는 아케이드형 도로에는 각종 기념품과 간식거리를 파는 상점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워낙 골목이 좁은 데다가 대부분 관광객들이 홍등이 켜지는 초저녁 시간에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잠시 서서 한 번 두리번거릴 새도 없이 밀려다녀야 한다. 홍등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을 수 있는 포인트마다 줄을 서서 촬영 차례를 기다리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제작진 측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마을의 모습, 특히 홍등거리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마을과 매우 흡사해서 이 마을이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홍등은 중화문화권에서 보통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걸어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유흥업, 매춘업을 의미하는 홍등가는 서양의 red light district에서 유래한 것으로 동양의 홍등과는 거리가 멀다.
투어를 마치고 한 시간 남짓 달려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오니 저녁 9시 전이다. 숙소에서 나와 다시 숙소로 돌아오기까지 딱 12시간이 걸렸다. 그야말로 하루를 꽉꽉 채운 가성비 패키지여행. 꽤 즐겁고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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