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회고] ~6/9
막상 백수로 본격적인 한 주를 보내면서 마음 한편에 차오르는 불안함을 어찌할 순 없다. 적어도 6월 한 달은 쉬고 노는 달로 삼자고 정해놓고, 스스로 그 결정이 못 미더운지 자꾸만 놀고 있는 내 자신이 벌써부터 불안하다. 그래서 뭐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이렇게 자꾸 끄적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주간회고를 시작하고부터 가끔씩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메모해 놓곤 하는데, 이번 주에는 딱 한 문장만 적혀 있다. "유예해 왔던 것들을 처리하는 시간". 말하자면, 언젠간 내가 해야 하는 일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미뤄놓고 있던 것들을 이제는 하나씩 해야 한다는 뜻일 테다.
지금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퇴사가 그렇다. 이번주 내내 친구들에게 축하를(?) 정말 많이 받았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너 힘들어했잖아"라고 말해주었다. 아마 꽤 오래전부터, 난 그만두는 게 맞다고 계속 생각하면서도 실천에 옮기질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역시 가장 편한 것은 현상유지였다. 새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개척하며 새로운 미래를 향한 결정 따위를 내리는 일이 너무나도 크고 버겁게 느껴졌다. 나름대로 인정받고 있는 이 세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마음속 괴로움을 조금만 모른 척하다 보면 나오는 월급의 편안함을 쉽게 뿌리치지 못했다. 그냥 모른척하고 있으면 어떻게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모든 게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청소하지 않으면 끝끝내 아무도 치워주지 않는 집처럼,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먼지만 쌓여갈 뿐이다. 깨끗한 집을 위해선 나 스스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이번주엔 영화를 참 많이 봤다. 아침부터 일어나 아이맥스 조조로 <매드맥스>를 봤다. 전편이자 본편(?)을 정말 재미있게 보기도 했고, 이번 영화 또한 CG 거의 없이 그 광활한 스케일을 그대로 재현해 담았다고 해서 아이맥스로 꼭 봐야 할 것 같았다. 조지 밀러 감독의 나이가 거의 80이라던데 그때까지도 지치지 않고 그 수많은 사람들을 설득해 내며 함께 일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원천은 도대체 무엇일까. 최근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에너지를 분출할수록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에너지가 충전된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아마도 감독은 그런 시간들을 더 많이 쌓아왔던 것 아닐까.
주 후반에는 무주에 다녀왔다. 현충일 즈음해서 열리는 무주산골영화제는 올해로 3번째 방문이다. 다행히 모든 것을 미리미리 챙기는 J 일행이 있어서 숙소도 교통편도 편하게 준비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심지어 영화마저 일행들에게 기댔다. 실은 나에게 이 여정은 영화 축제를 즐기는 것보단 산 좋고 물 좋은 무주에 놀러 가는 일에 가까웠기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결정들이기도 했다.
내가 무주에 도착한 날 밤, 덕유산자락에서는 음악을 다룬 영화 세 편이 상영됐다. 첫 번째 영화인 <크레센도>는 임윤찬이 우승을 하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현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가 무르익을수록 어두워진 하늘 위로 별들이 반짝였고, 별을 바라보며 피아노 연주를 듣는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너무 행복했다. 무주에 머무는 동안 봤던 영화들 또한 대부분 그런 것들이었다.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이 아닌, 분출하면서 자꾸만 더 큰 에너지를 쌓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보고 있으니 나까지 덩달아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