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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Jul 15. 2024

대충 주저 앉아 있고 싶을 때

도비 이즈 프리...!

지난주 드디어 회사와의 관계가 만료되었다. 앞으로를 생각하면 여전히 막막하긴 한데, 그 막막함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


문서 상으로 회사와의 계약 마지막 날, 나는 오전부터 수영도 빼먹고 분당에 있었다. 프리랜서로의 첫 업무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전날까지도 예보엔 비가 떠있었는데 어느새 쨍쨍한 해로 바뀌어 있었다. 가방 속에 고이 접혀있는 우산보다는 양산이 필요한 날씨였다. 나에게 일을 준 회사에서는 담당자가 갑작스러운 퇴사 소식을 알리며 인수인계 중인 새 담당자와 함께 나왔다.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전임자가 기획안에 대해 이런저런 피드백을 해주며, 담당자도 작가도 모두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되는 상황에 대한 살짝의 우려를 비쳤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무척이나 상쾌하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이렇게 넘겨주고 나면, 이젠 더 이상 당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얼마 전 인수인계를 할 때 나도 저런 모습이었겠지. 이렇게 저렇게 신경 쓸 것도 많고 꼼꼼한 과정이 많으니 알아서 잘해주세요. 이제는 더 이상 제 일이 아니거든요 ^^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난 입밖으로도 내뱉었네 ^^)


그러나 마냥 속 시원하지만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어려서부터 걱정이 좀 많은 스타일이기도 했고. 퇴사하면서부터 6-7월은 아무 생각 없이 놀기만 할 거라고 그렇게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고 다짐하고 있었음에도 '이러고 있어도 되나' 싶은 마음이 한편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쩌면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는 걸까. 어디 여행이라도 갔어야 하나. 그런데 이번엔 여행은 내키지가 않았단 말이지. 여행 가서도 한 번씩 떠오르는 걱정 때문에 텐션이 내려앉을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ㅎㅎ


가끔, 아니 자주, 나는 그냥 이대로 주저앉고 싶다. 아무 도전도 고민도 생각도 안 하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 지금까지 대체로 그렇게 살아오기도 했고. 그래서 크게 잘못된 적도 없었고. 대충 살아도 대충 중간은 가는 인생이었달까. 이제야 이런 나의 삶이 재미없다는 것을 깨닫고 뭐라도 해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데 자꾸만 늦었다는 생각, 그리고 한다한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 그리고 해도 안될 것 같은 불안감 같은 마음이 복합적으로 엉켜서 내 발목을 붙든다. 그러나 지금처럼 살면, 또 지금처럼 살게 되겠지. 누군가 만들어놓은 가치를 쫒고, 의미나 보람도 없이 그것을 실현시켜 나가기 위해 내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는.


수업에 빠졌던 수요일엔 갑작스레 배영 발차기를 시작했다고, 우리 아빠 또래시라던 내 수영 동기가 금요일 수업 시작 전 나에게 알려줬다. 아무래도 자기는 너무 늦은 것 같다고, 갈수록 너무 힘들다고, 괜히 시작한 모양이라고 말간 얼굴로 웃으면서 말이다. 확실히 내 눈에도 그분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는 것이 보인다. 스몰토크에 약한 나는 뭐라 해야할지 몰라서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계속 잘 해내셨으면 좋겠다. 얼마 전 친구의 말로는, 그래도 평형까지는 해야 물놀이 가서도 편하다던데 (자유형과 배영은 앞으로 나아가는 게 메인이라 물놀이 상황에서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말이다) 평형까지 같이 잘해서 처음 시작하셨던 목적대로, 가족들이랑 물놀이 가서 마음껏 풀장에 들어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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