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주 기념비적인 날이다. 처음으로, 킥판 없이, 자유형으로! 한 번도 안 멈추도 끝까지 갔다.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고 두 달 반 만의 일이다. 늘 호흡하려고 고개를 물 밖으로 내미는 순간이면 몸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동작이 다급해지며 숨이 가빠오고, 가라앉지 않으려고 충분히 숨을 마시지도 못한 채 다시 얼굴을 물속에 넣어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수영 선생님은 몸에 힘을 빼라고 했고, 호흡할 때의 자세를 다시 잡아주며 계속 연습하다 보면 분명히 될 거라고 했다.
고개를 내미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가서 몸이 가라앉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힘을 빼라고? 힘을 빼고 어떻게 고개를 물 밖으로 돌릴 수 있지? 힘을 빼면 고개가 더 가라앉을 것만 같은데. 게다가 그렇게 해서 입이 물 밖으로 나온다 한들, 충분히 숨 쉴 수 있을 만큼의 시간 동안 (그래봐야 1초? ㅎㅎ) 그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나에겐 힘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 같았다. 그런데 그 일이 되고야 말았다. 어떻게 됐는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또 한 번 끝까지 가려고 했는데, 딱 2번 더 성공한 뒤로는 또 줄줄이 실패했다. 힘이 부족했던 걸까(?).
문득 아빠와 함께 자전거를 타러 나갔던 날이 생각난다. 나야 워낙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탔어서, 아빠도 당연히 잘 타실줄 알았는데, 탈 줄 알다더니 막상 자전거에 올라타서는 비틀비틀, 긴장긴장. 온몸에 힘이 뽝 들어가서는 핸들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그재그 갈 지자를 그리면서 위태롭게 나아가지 않던가.
자전거 배우는 어린아이를 에스코트하는 부모가 된 양, 앞서가는 아빠를 뒤에서 비호하던 그때의 나도 해줄 수 있는 말이란 '몸에 힘 빼!' 밖에 없었다.
언젠가 <힘 빼기의 기술>이란 책을 본 적 있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서점 매대에 놓인 책을 보며 참 별게 다 책으로 나오네, 그게 뭐 어렵다고 책으로까지!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아 그런데 힘 빼는 게 정말 이리도 어려울 줄이야...! 게다가 나이 먹을수록 수영만이 아닌 여러 가지 상황에서 힘을 빼야 하는 일들이 참 많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끔 나의 퇴사의 이유도, 결국 완급조절의 실패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퇴사하고 겨우 잡은 목표 하나가 수영이었다는 건 스스로도 가끔 신기하다. 딱히 물놀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껏 수영 못해도 잘 살아왔고. 물론 어디 여행 가서 물이 무서워서 쩔쩔매느라 아까웠던 시간들은 좀 있었지만. 이직도 아니고, 창업도 아니고, 뭐 거창한 자기계발도 아무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수영이라니.
사실 이전에도 몇 번 수영을 배웠던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도, 대학생 때도 수영장을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놈의 자유형의 벽을 넘지 못했고, 무서운 속도로 뒤따라 오는 다음 사람에게 쫓기어 늘 레인 가장자리로 도망가고 말았다. 그렇게 물에 대한 공포만 더 깊어진 채 내 수영 강습은 끝나고 말았다. 어쩌면 자꾸만 쫓기는 마음에 버티면 될 수도 있었던 두 달 반의 벽을 넘지 못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직 자세는 엉망이지만, 그럼에도 자유형으로 끝까지 도달하게 되었다는 건 이제는 조금 물속에서도 힘을 뺄 줄 알게 되었다는 신호 같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렇게 안 되던 힘 빼기가, 초등학생과 대학생 때도 그렇게 안되던 힘 빼기가 말이다.
문제는, 왜?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서 또 해보라고 하면 그때는 잘 될지도 모르겠다. 그냥 시간을 들여서 터득하는 수밖에 없는 걸까. 아무튼 이제 갈수록 물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고 있다. 누가 물놀이 가자면 좋다고 따라갈 것 같다. 수영장이 있는 호텔에서도 걱정은 안 할 것 같다. 아 참고로, 배영은 자유형보다 훨씬 빠르게 터득해서 이미 꽤 전부터 킥판 없이 잘 가고 있다. ㅎㅎ 이렇게 보니 예전보다 머무를 수 있는 세계가 넓어졌네. 게임으로 치면 맵의 확장이 이뤄진 셈이다. 이게 고작 두 달 반만의 성과라니. 이건 커리어도 안 되고, 돈도 안 되지만, 이 정도면 그 어떤 날들보다 알찬 시간을 보내는 중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