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제작기] 플레이어에서 크리에이터로1
HFK의 보드게임 클럽은 한달에 한 번 모여서 보드게임을 하는 모임이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으로는 성에 안차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나 또한 사람들에게 조금 더 무거운 게임도 알려주고 더 많이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어느 평일 저녁 모이자는 번개를 쳤다. 나 포함 5명이 모였다. 보드게임으로 취미를 찾았다는 환, 우리 클럽 초창기 멤버로 환을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한 현, 자칭 프로참석러 수, 나보다 보드게임 세계에 대한 조예가 깊은 은.
그날 우리가 모여서 무슨 게임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모임이 끝날 쯤 내가 제안했던 다음 모임이다. 과학책방 갈다에서 진행 중인 '과학방탈출'. 삼청동에 위치한 과학전문 책방 갈다에서 과학을 테마로 한 방탈출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난 일반적인 방탈출게임을 많이 해본 편이 아니고 딱히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도 아니었지만, 갈다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이런 곳에서 그들의 전문 분야를 살려 만든 게임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마침 멤버 은은 보드게임만큼이나 방탈출에 대한 애정도 높은 사람이었다. 자연스럽게 5인의 다음 모임이 삼청동으로 정해졌다.
경복궁을 둘러싼 은행나무가 모두 노랗게 물들었지만 날씨는 반팔을 입고도 더웠던 어느 가을날 우리는 갈다 앞에서 다시 만났다. 과학방탈출은 우리가 예매하고 며칠 뒤, 어디에서 입소문이 났는지 전회차 매진 상태였다. 타이밍이 좋았다. 게임은 책방 2층의 작은 방에서 시작되어 종종 강연이 열리기도 하는 지하의 넓은 공간으로 이어졌다. 주제는 인공지능. 인공지능의 등장에서부터 종류까지 다양한 관련 지식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퀴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문 방탈출카페처럼 공간을 모두 꾸미지도 않았고, 책방의 느낌을 살리되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들만 설치한 느낌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좋았다. 문제 또한 형식보다 내용에 집중한 느낌이랄까, 일반 방탈출카페의 문제를 풀기 위한 문제들과는 차이가 있다보니 오히려 문제 하나 하나에 집중하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좀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의 탈출 기록은 35:10. 꽤나 빠른 편이라고 한다. 아마 아이를 포함한 가족 손님을 대상으로, 그리고 방탈출을 찾아다니는 전문 게이머보다는 갈다를 아는 일반 손님들을 대상으로 만든 게임이었을테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게임을 마치고 게임을 제작한 과학 크리에이터 분과 직접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분은 오히려 우리를 신기해 했다. 딱히 공통점도 없는 성인 5명이 과학방탈출을 하겠다고 주말에 갈다에서 모이다니. 향후 새 게임을 개발하면 테스트 멤버로 참여해달라는 말엔 우리가 더 신났다. 서로 명함을 교환하고 헤어지는 길,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우리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방탈출?" 방탈출이든 보드게임이든, 뭔가 소비만 하지 말고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굴뚝같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진짜 현실이 되어 벌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