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제작기] 플레이어에서 크리에이터로 6
과연 어떤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게임을 하러 올까? 일단 내 주변 사람들을 보자. 나의 주변에는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도, 방탈출 게임을 하는 사람도 정말 적다. 그나마 HFK의 보드게임 클럽을 통해 함께 게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긴 했는데, 이 모임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게임 자체의 매력이 좋아서 보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좋아서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보드게임은 보통 학습용으로 많이 활용되고 (교육 시장이 가장 크다고도 들었다) 그 외의 경우에는 소수의 게이머스 집단이 이끌어가는 편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나의 <글룸헤이븐> 팟과 같은. 방탈출 역시 몰입하는 사람은 소수.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이런저런 테마를 찾아다니며 꾸준히 다니겠지만 그 외에는 한두 번 정도의 재미있는 체험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나는 보드게임에선 게이머스 쪽에 속하고, 방탈출은 체험 한 두 번 해보고 만족한 사람일 것이다. 같이하는 콘브레드 멤버들은? 처음부터 보드게임도 방탈출도 나보다 정통했던 멤버 은 정도를 제외하면 글쎄, 다들 체험과 취미 사이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재미를 찾아가는 중 아니었을지.
어쨌든 이런 멤버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게임이어 설까, 일이 아닌 취미로 시작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시작하는 단계인 데다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나 예산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일까. 일단 프로그램 자체를 시중의 방탈출처럼 깊이 있게 짤 수 없었다. 그러니 보드게임이나 방탈출 마니아를 우리 게임의 타깃으로 잡을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해 '여기 와서 방탈출 게임하고 가세요~!'라고 홍보하기 힘들었다는 거다. 실제로 오픈을 앞두고 내 지인 중 방탈출 게임을 정기적으로 즐기는 나름 마니아 층 친구를 불러 테스트 플레이를 시켰는데 모든 게임을 완료하고 "정말 좋았지만 '방탈출'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체험인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다. 사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기에, 그 생각을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두 번째 테스터는 우리와 함께 HFK 보드게임 클럽을 하고 있는, 원래부터 게임을 좋아한다기보단 같이 노는 것에 재미를 느껴 보드게임을 지속하고 있는 멤버였다. 이 멤버는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을 꽤 어려워했다. 문제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뭐랄까, 조금씩 첨가해 둔 말하자면 '방탈출의 문법을 활용한' 게임의 구조를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의외로 우리와 결이 잘 맞았던 사람은 스페인책방을 통해 모집을 받은 테스트 플레이어였다. 실은 급하게 오픈하느라 충분한 홍보가 안되어 시작하는 주에 체험단 모집 아이디어를 급히 추가했던 건데, 그 체험단 모집을 보고 신청하신 분들이 있었다. 스페인에 관심이 많고, 여행도 좋아하고, 일부는 심지어 스페인어도 할 줄 아는 분들이 우리 게임에 관심을 보였다. 방탈출에는 경험이 있는 분도, 없는 분도 있었지만, 그런 요소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 문제를 즐기며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분들이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며 감탄을 할 때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희열에 휩싸였다.
언젠가 그런 글을 썼었다. 보통 책 읽는 사람들은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때 그런 이야기를 썼던 건 그게 아니라는 반박이 하고 싶어서였는데, 사실 생각할수록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테스터 이후에도 책방을 찾은 분들이 자연스레 우리 프로젝트에도 관심을 가지고 해 보실 수 있도록 여기저기에 홍보물을 배치했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이 눈길을 한 번 안 주셨다. 이건 그냥 책방의 특징인 걸까, 우리 홍보방식의 문제인 걸까, 거기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능성도 책방에서 봤다. 이후 거의 매일 같이 올린 인스타그램 홍보에서 광고 한번 집행 안 했음에도 관심 있는 분들께 가닿았는지, 책방 SNS를 통해서 예약을 신청했다는 분들을 꽤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애초에 스페인과 바르셀로나에 관심이 있던 분들이 가우디의 이야기에도 우리의 게임에도 훨씬 몰입을 하며 참여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방탈출'이 아니라면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고민할 때에 우리가 생각해 낸 워딩은 '체험형 콘텐츠'였다. 가우디99가 어떤 포지셔닝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되어 나가면 좋을까 생각할 때 내가 떠올린 건 '몰입형 콘텐츠'였다. 어쩌면 우리의 콘텐츠는 게임이 좋다거나 게임을 하고 싶다는 사람보다는 뭔가 자기가 아닌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금 더 와닿게 경험하게 하는 역할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마땅한 좋은 '이름'을 찾아내지 못했고, 그렇기에 '방탈출'이란 이름으로 소개를 하고 홍보를 하면서 잘 모르는 사람에겐 처음부터 어떤 장벽으로 작용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게임은 잘 마무리되었다. 6월 두 번째 주말까지 진행되었고, 그 주 평일에 있던 가우디의 기일에는 스페인 관련 분야에 계신 분들을 초대해서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프로그램 진행 중간쯤부터 만족도 조사도 실시했는데, 대체로 좋았다는 응답, 이를 통해 스페인과 바르셀로나, 가우디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고 흥미도 생겼다는 답변이 꽤 많았다.
신기한 일이다. 늘 같은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 수동적 직장인으로 살아왔던 내가, 어느새 어떤 커뮤니티에 속해 모임을 이끌고, 나아가 주체적으로 게임을 만들어보게 됐다. 그 과정에서 곡절도 정말 많았고, 힘든 순간도, 포기하고 싶은 날들도 꽤 많았다. 하지만 어찌 될지 모르는 그 미래를 향해 나는 계속 또 한 발 나아갔다. 어떻게든 내 턴이 돌아온다는 것, 시간은 언제까지고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다는 것, 틀린 답이라도 일단 실행해 보아야 알 수 있다는 것, 그 과정에서 가끔은 실패할수도 있지만 그러면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라는 것. 단지 게임을 했을 뿐인데 내 안에 무언가가 훌쩍 자라버린 기분이 든다. 이제는 처음보는 어떤 게임도, 겁이 나기 보단 흥미가 생긴다. 저 커다란 판 안에서 나는 어떤 플레이를 할 수 있을까, 또 어디까지 가볼 수 있을까. 이제 또 다시 새로운 게임을 펼쳐 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