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했던 단 하나의 이야기를 찾아

[게임제작기] 플레이어에서 크리에이터로 5

by 배짱없는 베짱이

지금껏 보드게임에 대한 글을 쓰며 각 게임이 가지고 있는 테마,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게임이 가진 '스토리'에 집중한 글을 써왔던 나다. 그만큼 게임의 스토리를 신경 쓰고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이기도 한데, 이게 막상 내 이야기가 되니 쉽지 않다. 게임의 스토리를 입힌다는 게.

게임을 만들겠다고 멤버들과 의견을 모으고 공간까지 섭외한 것은 지난해 가을 무렵. 그러나 해가 넘어가도록 아직 뚜렷한 무언가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스토리가 문제였다. 애초에 '방탈출'이란 장르가 주는 강력한 이미지 때문일까, 뭔가 미스터리 한 스토리를 가지고 와야만 할 것 같았다. 가우디를 게임의 테마로 정했을 때 나온 '가우디99'라는 키워드 또한 그랬다. 99. 아직 100이 되지 못한 미완의 숫자.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같은 느낌이랄까. 무언가 비밀을 잔뜩 간직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때부터 나는 미스터리에 매몰되고 말았다. 가우디의 죽음에 미스터리를 섞을 순 없을까, 아직까지 완공되지 않은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유령을 출현시킬 순 없을까, 누군가 마지막 남은 도면 또는 기술을 훔치려고 했다거나, 아직까지 완공되지 못한 이유가 성당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 때문이라던가.


이야기야 수도 없이 만들어낼 순 있겠지만, 무언가가 자꾸 걸렸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그래도 신성한 공간인 성당에, 그것도 아직 완공도 되지 않은 곳에 기이한 이야기를 덮어씌우기가 조심스러웠다. 가우디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이 고민을 하던 시점보다 뒷날의 일이지만 심지어 가우디는 얼마 전 교황청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조심스러운 게 많다 보니 이야기는 오히려 더 복잡해져 갔다.


자꾸만 흐트러져가는 스토리를 바로 잡기 위한 회의도 열렸다. 우리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가우디의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이 게임이 끝났을 때 참가자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면 좋을까. 하나는 확실했다. 사람들이 바르셀로나와 가우디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가 남긴 건축물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왜 대단한지. 그리고 또 느꼈으면 좋겠다. 잠시라도 여행을 떠나온 것 같은 기분을. 언젠가 바르셀로나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바르셀로나에 가거든 이런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놓치지 말고 보고 오라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알려주고 싶었다.


고민 끝에 4월 초까지 디벨롭하던 스토리를 싹 뒤집어 버리고 말았다. 뭔가 그럴듯한 껍데기, 멋져 보이는 포장에 집중하다가 알맹이를 놓쳐버려선 안 된다. 마침내 미스터리를 벗어던졌다. 그저 '바르셀로나를, 그리고 가우디를 재미있게 알아가셨으면 좋겠어요'를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다.


솔직한 마음으론 난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했다. 바르셀로나와 가우디를 알아가는 과정에 스토리를 입히고 싶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다른 멤버와 의견이 대립했다. 그는 스페인책방이라는 공간과도, 이곳을 통해 우리를 찾아올 손님들에게도 이렇게 덧입힌 이야기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여전히 막연했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우리 게임을 하러 올지, 우리 프로젝트의 타깃을 어떻게 잡고, 어떻게 홍보해야 할지 전혀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막연히 스페인책방과 멤버 환이 바르셀로나 여행사를 운영하는 동안 맺었던 인연들이 우리 프로젝트를 반길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이 막연한 예상은 반 정도 맞았던 것 같다. 다음 글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아야겠다.


아, 참고로 스페인책방의 방탈출 프로그램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곧 마무리된다. 현충일을 낀 이번주 금토일 마지막 플레이를 앞두고 있다. 이제야 조금씩 에약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벌써 끝이라니. 첫 시도라 다 이런걸까, 여기에 대한 리뷰도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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