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제작기] 플레이어에서 크리에이터로 4
글을 쓰지 못한 약 한 달여 동안 나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다시 직장인이 됐다. 사실 월급쟁이로의 삶은 연말부터 조금씩 준비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 걸어온, 이제는 슬슬 끝이 보이는 그 길을 또다시 선택할 것인지, 조금 더 먼 미래를 생각하며 지금이라도 안 해본 일에 도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어떤 선택도 내리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어렵게 내린 결론은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이 또한 이력서 통과가 쉽지 않은 현실이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 40%에 나의 경험을 토대로 한 가능성 60%를 어필한 덕분에 한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던 일이 마무리되고 넘어갈 수 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런 타이밍까지는 내가 조절할 수 없었다.
더 큰 소식은 따로 있다. 콘브레드의 게임이 드디어 론칭했다. 바로 지금,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스페인책방에서 '가우디99'라는 이름으로 주말마다 운영하고 있다. 이제야 밝히는 책방과 게임의 테마. 전말은 이렇다.
시간을 다시 되돌려 지난 10월, 삼청동 과학책방 갈다에서 과학방탈출을 마치던 날. 처음으로 우리도 게임을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대화를 나눴던 그날, 멤버 환은 머릿속으로 이미 한 공간을 떠올렸다. 이전에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한 여행사를 운영하며 사무실을 두었던 곳, 바로 그 건물에 스페인책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환 덕분에 스페인책방과도 쉽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3층에 있는 책방보다는 5층에 있는 살롱 공간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이게 진짜로 되는 거야?"를 외친 첫 번째 순간이었다.
장소가 결정되면서 테마는 자연스럽게 스페인으로 정해졌다. 스페인의 많고 많은 이야기 중 어떤 부분을 게임에 가져올까는 책방지기 분들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그 와중에 바르셀로나의 중심 거리인 그라시아 거리를 발전시켜 나가는 보드게임 <바르셀로나>의 존재를 알게 되어 함께 플레이를 하기도 했다. 도시 산책, 예술가 투어, 음식이나 스페인어. 다양한 대화의 끝에 도달한 주제는 바로 바르셀로나를,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에 대한 것이었다.
가우디의 역작으로 알려진 바르셀로나의 성가족성당(사그라다파밀리아)은 매년 전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을 바르셀로나로 불러 모으지만, 그 성당은 아직도 건축이 진행 중인 미완의 성당이다. 1882년 착공에 들어가 1년 만인 1883년, 30대의 가우디가 젊은 나이에 성당의 수석건축가를 맡게 된다. 가우디는 아주 독실한 신자였다. 이 성당의 건축을, 신에게 삶을 바치는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의 평생의 여정이 시작된다.
가우디는 자기 생에 이 건축이 마무리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후대의 건축가들이 자신이 만든 것을 보고 참고하여 이 성당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한 쪽 파사드(쉽게 말하면 한쪽 문), 예수의 탄생을 그리는 '탄생의 파사드'를 먼저 완공시켰다. 성가족 성당의 건축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카사밀라, 카사바트요, 구엘공원 등 지금도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유수의 걸작을 탄생시켰다.
100년이 넘게 지어지고 있는 성가족성당은 2026년 드디어 완공을 앞두고 있다. 2026년은 가우디가 서거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가우디의 죽음, 그리고 성당의 완공을 한 해 앞두고 있는 지금, 99라는 이 미완의 숫자가 무언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또한 2018년 처음 바르셀로나를 가보고, 아무 계획도 없이 떠났던 그 여행에서 가우디를 알게 되어 온 시간을 그의 흔적만 찾아다니다 온 기억이 있다. (참고로 건축에 ㄱ 도 모른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성당이 완공되면 꼭 다시 가서 하루 종일 그 성당을 경험하고 오리라 다짐했었지. 나 같은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일까. 아마도 성당이 완공될 내년, 바르셀로나와 성가족성당은 전 세계인의 가장 큰 관심사일지도 모른다.
바로 이렇게 대단한 이야기를...! 조금 앞서서 우리가 먼저 예고하고 알아보는 시간을 줄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가우디와 바르셀로나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할 수 있다면? 이렇게 콘브레드의 첫 번째 게임 '가우디99'가 만들어졌다. 뛰어넘은 중간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씩 다시 풀어낼 기회를 가져봐야겠다. 오늘도 충무로에서 게임이 진행되는 날이기에, 이제 슬슬 글을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