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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Dec 21. 2018

후회

85화

후회는 정말 무섭다. 얼마나 무서운지, 그게 무언지 영영 모르고 살아도 좋을 것 같다.


일상산문 백편을 쓴다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더 많이, 더 자주 쓰고 싶었는데 모자란 15편의 일기가 참 손에 잡힐 것 같으면서도 아득하다. 부족한 15편. 딱 그 만큼의 행복을 내가 2018년에 놓쳤던 것만 같다. 오늘부터 매일 일기를 써도 올해 안에는 백 편을 채울 수 없다.


하루하루 바쁘고 밀도 높게 살아가고 있고, 천만 다행으로 그만큼 좋아해주시는 손님들께 기대어 내년은 좀 더 하고 싶은 게 많아지는 12월이다. 나 자신을 믿고 혹은 믿지 못한 채로 벌인 일들이 내 손에 하나씩 잡히면서 느끼는 떨림은 두려움 같기도 하고 기쁨 같기도 하다. 이렇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다는 게 기쁜데 마냥 기뻐할 일이 맞는지 궁금하다. 이러다가 언젠가 벽을 만나 압력이 높아지면 한순간에 터져버릴까봐 조심하는 중. 이렇게 몸보다도 마음을 사리면서 사는 게 어쩌면 당연한건가.


점점 더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천천히 되감은 다음 느리게 느리게 재생시켜본다. 그러면 하루하루에 했던 수많은 생각과 일들이 꿈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많은 일을 하면서 다 잊어버렸다는 게 적은 일을 한 것보다 더 슬픈 거구나, 깨닫는다. 어린 시절엔 하루에 블럭으로 집 한채만 만들어도 그게 며칠동안이나 머리 속에 있고 맴돌고 마음을 거기 두곤 했는데 지금은 아파트를 지어도 내가 뭘 했는지 잊어버리면서 그냥 강도한테 쫓기듯이 앞만 보고 뛰고 있었구나. 더 느리게 느리게 삶을 재생시키지 않으면 숨이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달리다가 어느 순간 멈춰버리겠지.


느리게 재생되는 하루하루엔 배경음악이 필요하다. 올해 내가 발견한 좋은 노래들로 글을 마무리 지어야지.


Tom Misch <Movie> 05:57

나얼 <Comforter> 07:27

Ed Sheeran <Dive> 03:58

Perlo <Call Me a Fool> 03:24

One Ok Rock <Heartache> 04:25


음악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에도 딱 좋고, 흘러가는 시간을 온전히 느끼기에도 딱 좋구나. 밤이 긴 겨울이 문득 고맙다. 후회만 하기엔 너무 긴 밤이구나.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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