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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Sep 23. 2024

여러 풍경

느지감치 그림일기 5

 1.

 당연한 얘기이지만, 그림수업시간의 대부분은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첫 시간에 간략한 미술사 얘기와 함께 그림 도구들에 대한 사용법과 같은 간단한 이론수업이 끝나면 바로 연필이나 붓을 쥐고 앉아 그린다. 그래서 깨달은 사실이지만 예술은 그냥 몸으로 하는 것이다. 몸으로 익히고 정신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긴 시간을 갈아 넣어 연습해야 하고 또 그것이 달아나지 않게 붙들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그림시간에 동안 선생님의 역할은 대부분 수강생들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다. 연필이나 붓을 빼앗아 몸으로 지나온 길을 보완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말이 좀 거창하다면, 다시 말해 시범을 보인다. 어수룩한 부분을 고치고 빈 공간을 어떻게 채울지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어느 날부터인가 내 자리에 잘 안 왔다.

어떤 기와

 사회적 거리 두기가 느슨해지면서 수강생이 많이 늘어 바쁘기도 했지만 붓을 안 뺏기려는 버릇없는 수강생에게 ‘어, 그래 너 잘 났다. 어디 혼자 잘해봐라!’ 이런 조금 꼬인 심사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선생님이 직접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

 그런 덕에 나는 제일 뒤 창가 자리에 앉아 마음 놓고 멍 때리기 일쑤였다. 전날 저녁 선생님과 같이 한 숙취해소용 멍이 제일 많았지만, 성질대로 되지 않는 그림 탓도 있었고, 부부싸움의 해법을 찾는 멍도 있었고, 자잘한 돈벌이를 찾아 뒤적이는 아쉬운 멍도 있었으니, 그래서인지 멍 때리다 마음에 멍든 날도 많았다.

 그러던 중 하루는 내가 마음 없이 바라보기만 하던 창밖 풍경이 문득 다가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보던 그냥 배경 장면은 구도랄 것도 없는 건물로 막힌 풍경이었다. 주택이 이고 있는 청색 기와가 반짝이다가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색이 변했다. 그래서 그냥 그리기 시작했다.

 뭐, 잘 그린 그림도 아니고 깊은 관찰이나 철학적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정이 갔다. 집에 가져와 거실에 세워놓고 오다가다 오랫동안 바라봤던 그림이기도 하다.      


 2.

 한 번은, 같이 시를 쓰는 주우(酒友)1이 시전(詩展)을 기획했다. 흔한 시화전이 아니라, 등단 30년을 핑계 삼아 시인의 시는 시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영상은 영상대로, 책은 책대로 자신의 개성을 살려 갤러리를 채우는 기획이었다. 시는 전부 그의 것이었고 그림은 주우2이기도 한 그림선생님이 대부분을 그리던 중 나도 하나 그리기로 했다.

 그림은 그의 시 중 「바람의 고향」을 주제로 한 것이다. 며칠 동안 화두를 놓지 않고 구상을 했으며 도서관을 찾아 남들이 그린 캐릭터들을 훑었다. 그리고 집에 앉아 열심히 그렸다. 한 순간 등 뒤로 다가오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렇게 다가온 여편께서는,

 “남의 중요한 행사에 걸 그림에다 똥이나 그리고 있어? 초 치려고 작정한 거야? 그래도 될 일이야?”

 예술은 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등으로 그림을 가리면서 여편의 튀는 침도 가렸다.

 그림 왼쪽의 사람은 힘겹게 똥을 싸고 있다. 변비약으로 간편하게 해결할 수도 있지만 작가는 순전히 힘으로 큰 똥을 싼다. 그 똥은 책이 되고 바람을 만든다. 그림의 오른쪽, 위아래가 뒤집어진 세상에서는 작가의 똥에서 시작된 바람에 놀란 존재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세상을 다시 깨달으며 뒤돌아보고 있다. 나무도 새도 있으며 이상한 생명체도 있는 데다, 눈 밝은 사람은 마릴린 먼로도 찾을 수 있다.

 그림의 왼쪽 하단에는 가격도 표시되어 있다. ‘미화 670 달러, 흥정 없음.’ 그래서인지 아무도 흥정하지 않았다.


바람의 탄생 주제에 의한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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