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감치 그림일기 4
1.
선생님의 관리 감독이 없이 내 마음대로 그린 그림 둘, 다른 말로 하면 집에서 그냥 그린.
첩첩겹겹 산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음대로 번지는 물 같기도 하고 스스로 종 못 잡는 기분처럼 흐르다가 질척 흘러내리는 하늘로 보이기도 하는,
2.
이유도 없이 만나는 색들이었다가 암흑으로 번지는 대기권으로 보이기도 하고 저 아래가 땅인지 바람인지 아래가 아래는 맞는지도 모르겠고 거기 어디 숨어 허기진 위장이 째려보는 건 아닌지.
글쎄, 예술은 노는 것이다. 즐겁게! 그래서 시키지 않아도 하고, 하지 말라고 해도 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짓만 골라서도 한다. 하다 보면 서로의 숨통을 움켜쥐기도 하고, 슬슬 간질이기도 하다가 남들 불편한 것만 골라 보여주고, 또 모여 낄낄거리던 몇이 서로를 쓰다듬기도 한다.
경건할 필요도 없이 즐겁게 내가 세상 하나를 만들어보고 거기 들어가 신나게 노는 것이다. 슬픔도 노는 일 중 하나이다. 내 마음대로 그리는 그림 중 일부분이다.
후루룩 지나가는 봄날의 끝자락에 연분홍치마를 입고 들판에 나서는 일도 그것이며, 그렇게 지나던 봄바람 중 하나는 대책 없이 연분홍치마를 헤집기도 한다. 그러니까 쓰리기도 할지언정 봄바람이랑 노는 일이다.
예술은 우리를 순간 다른 세상으로 데리고 다니는 일이다. 저 멀리 노을 깊은 해변으로 이끌었다가, 멱살 잡혀 속죄의 땅에 던져진 날 끝 모를 바닥에 철렁 떨어진 심장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음악도, 그림도, 시도 이런 비슷한 길 어디쯤 헤매며 노는 일이다. 내 마음대로.
그러니까 잔소리하지 마세요. 아니 잔소리하세요. 잔소리에 항복하지 말라고 잔소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