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감치 그림일기 6
1.
오늘은 그림 선생님의 인성을 폭로하는 내용이 주가 될지도 모르겠다. 주우2이기도 한 그림 선생님과 나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비슷한 연배의 인간 수컷으로 술을 좋아한다는 점 외에도 이십 대 후반의 딸아이 하나를 두었으며 그 딸님들이 서울에서 혼자 지낸다는 사실까지 같다. 뭐, 서로 다른 점은 셀 수 없기에 생략한다.
얼마 전 그림 수업을 마치고 점심 자리 대신 집으로 향하는 나에게 선생님이 물었다.
“왜? 국밥에 소주 안 해? 어디가?”
“장 보러.”
“뭐, 혼자 맛있는 거 먹을라구?”
여편의 지령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딸놈에게 과일이나 채소 등을 사서 택배로 보내고는 했다. 혼자 지내는 젊은 아이들이 자기 돈으로 잘 안 사 먹는 품목들이다. 이런 작은 생색으로 생활비도 안 보내주는 부모의 책임감을 슬쩍 지우는 일이었다.
“어? 애한테 그런 걸 보내줘? 난 안 보내는데.”
선생님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나를 흘기며 말했다.
“김자까! 그런 거 나랑 같이 보내지 말자.”
2. 오래전, 볼펜을 쥔 손만으로 글씨를 써야 할 때가 있었다. 다른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필도 있었잖아?’ 이런 반문은 사양하겠다. 그래서 화려한 손기술이 난무했다. 중지와 검지를 이용해 볼펜 돌리기, 같은 방법으로 삼회전, 공중회전, 새끼손가락부터 위아래로 회전 올려 내리기, 교실벽에 볼펜 꽂기 등, 범접할 수 없는 공부 대신 그 시간을 투자해 연마한 기술들이 난무하던 춘추전국시대였다.
그때 볼펜똥이라는 게 있었다. 글씨를 쓰다 보면 볼펜 끝 볼 한쪽에 잉크가 몰려 뭉친 것을 책 구석에 쓰윽 문대면 거기 똥이 남는다. 교과서 위아래 귀퉁이에는 항상 볼펜똥이 묻어있었고 책을 덮었다 펴면 양쪽 페이지 모두에 데칼코마니가 남았다.
그림 공부를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한때 미술대학에 몸을 담고 있었던 딸놈께서는 가끔 명언을 던졌다.
“항상 제일 예쁜 건 물감똥이야.”
그러니까 물감을 칠하기 전에 어떤 색이 구현됐는지 확인차 종이에 찍어본 것을 물감똥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도 이런 물감똥을 꽤 가지고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무작위에 기댄 예술이다.
3. 일 년 가까이 됐음에도 가장 최근에 그린 수채화이다. 좁은 베란다에 강제로 모여있는 식물들 수런대는 소리가 시끄러워 그려보았다. 그냥 천천히 그렸고 그리고도 꽤 흡족했던 그림이었는데 선생님이 다가왔다.
“근경에 이건 뭐예요? 파? 전혀 파 같지 않은데? …… 여기 진한 부분은 더 죽였어야지! …… 저기 산은 초점이 맞지 않으니까 끝선을 흐리게 해야 하는데, …… 여기 벽은 그냥 대충 마무리했네. …….”
과일이며 채소며, 같이 보내지 말 걸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