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힐링
드라마가 끝나니 내 옆에는 하얀 티슈가 산을 만들어 놓았다.
실컷 울고 나면 얼굴이 당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눈과 눈 주위가 벌겋게 되는데
꼴은 한심해 보여지지만 기분은 무척 좋아진다.
울음이 떠진다는 것은 드라마가 원하는 기분을 내가 제대로 느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냥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니고 흐느끼면서 울게 되고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엔 엉엉 소리를 내면서 울기도 하는데
참았던 눈물이 많았었나 한다.
난 내 문제로는 울면 안 된다고 참으면서 버티는 편인데
내 문제가 아닌 일에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도 울컥하고
책이나 만화를 읽으면서도 소리 내면서 우는 경우가 많다.
간혹 울면서 눈물에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애를 먹는다.
펄벅의 히든 플라워를 몇 년 전에 다시 읽었을 때엔
흐느끼면서 콧물을 풀어가며 읽었고 눈물을 닦아가면서 책장을 넘겼었다.
젊어서 읽었을 때엔 그저 주인공 정도만 기억에 남았던 것이
이 나이가 되니 느껴지는 것이 달라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을 아까워하면서
길게 오랜 시간 즐기자고 한 것이 울기 시작하면서 다 읽어버렸고
마룻바닥에는 하얀 티슈가 수북하게 쌓여 내가 앉았던 곳을 알려 줬다.
드라마는 혼자 밥을 먹을 때 많이 본다.
그렇게 심각하지 않으며 대사만으로도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데
그런 드라마가 갑자기 심각해져서 나를 울게 만들면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울어 가면서 먹고 있었다.
이런 내가 나도 이해가 잘 안 되었는데...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에는 아이들의 부드러운 옷소매에 눈물을 닦았는데
그럼 아이들이 이상한 표정으로 티슈를 가지고 왔었다.
사춘기에는 내가 훌쩍거리기 시작하면 또.. 하면서 자리를 피하더니
지금은 내가 울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티슈만 가져다준다.
나도 이제는 엄마 체면이라는 것도 없이 대 놓고 속 시원하게 울고는
아이들에게 변명으로 너무 감정이 섬세하고 여린 여자라서 눈물이 많다고 한다.
미국에서 쓰는 티슈는 가장 큰 통으로 한 시간을 울면서 봐도 티슈가 남아 있는데
일본에서는 그렇게 양이 많은 것이 없어 도중에 새것을 가지러 가야 한다.
가지러 가면서도 훌쩍이고 다시 앉아서 흐느끼는 내가 코미디 하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있다.
눈물이 나오는 나의 감정과 이 꼴을 제정신으로 보고 있는 나의 이성에서
나는 어느 쪽도 억제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막 풀어놓은 이 상태가 지나가면 나는 무척 홀가분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만의 힐링 방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