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깨춤
등나무의 꽃이 피어 정말 감탄사가 저절로 연발하게 만들었다.
2년 전 산 중턱에 세워진 거의 30년이 된 아파트에 이사를 왔었는데
아파트 바로 뒤에 있는 절벽? 언덕? 같은 곳에 늘어진 푸르름이 좋아
지나다닐 때마다 산속을 지나다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었다.
그런데 올해엔 그 푸르름 속에 등꽃을 보고는 금맥을 찾은 듯한 열광에
차들이 곁을 지나가는데 이러다 교통사고가 나는구나 하면서도
바로 눈앞에 늘어져 있는 꽃들을 사진에 담느라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흥분은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 자랑을 하면서 이사를 너무 잘 한 것 같다고
작년에도 피었을 텐데 어떻게 난 올해에 이 꽃을 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매일 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린다고 했다.
친구들이 말했다.
이제야 네가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나 보다고...
나도 생각해 보니 작년까지는 몰랐던 나를 많이 만났다.
몇 년을 사다 먹은 쵸코렛 상자에 깨알 같이 쓰여 있는 상자여는 방법이 있었고
이곳저곳으로 생각 없이 다녔던 100엔 상점의 이름이 다 다르다는 것과
이제까지는 읽지 않고 느꼈던 간판들을 한 자 한 자 읽고 있었다.
매번 지나가는 길에 있던 풍경의 폭이 커져서 색다르게 다가왔고
고개를 더 쳐들고 걸었는지 본 적이 없던 저 멀리에 있는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변화에 나도 내가 정말 달라진 것 같다는 확신을 했다.
아이들의 문제에도 오랫동안 걱정이 되지 않고 과정일 거야 하는 여유가 생겼고
부모님의 문제에도 덤덤하게 대처해 동생들에게도 흔들리지 않게 되어서
이 나이가 되니 살아온 세월 덕분에 저절로 안정이 찾아오는구나 하며
변한 지금의 내 모습이 40대의 나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에 고마웠다.
이대로 라면 긴 노년의 시간을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작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등꽃을 올해는 걸음을 멈추고 사진도 찍었으니
난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 틀림이 없어 흡족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이번에는 언제 미국에 가냐며 작년에는 일찍 가지 않았냐고 친구가 묻는데
대답을 하느라고 1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니 작년 아들의 졸업식이 생각났고
졸업식과 동시에 발의 깁스에 목발이 떠올랐다.
난 작년 4월 중순 한국에서 깁스를 하게 되어 일본에 들려서 가기로 한 것을
그대로 한국에서 지내다가 5월 초에 바로 미국으로 갔었던 것을
그래서 등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 뭐가 되는 건가?
내가 찾았다는 마음의 여유는
그저 망각에 환상으로 혼자서 깨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