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냉철한 분석
이래 봬도 나도 보는 눈도 있고 색에 대한 센스도 있어서 멋을 안다.
단지 돈으로 치장한 것에는 선입관이 있어서 보려고도 하지 않지만
소박하니 단아한 멋쟁이에게는 눈길을 떼지 못하고 넉을 놓고 쳐다본다.
그래서 간혹 저 정도는 입고 싶다는 단아한 여인을 보면 그저 부러운데
왜 나는 그러지 못하는지 어제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진지하게 분석을 했다.
걸어야겠다고 나가서 기왕이면 공기 좋고 멋진 해변가에서 폼을 잡자고
버스 정류장에 서서 송정으로 가는 버스 번호를 확인하고 내리는 곳을 찾아봤다.
얼마 만에 가 보는 송정인지 그동안 친구나 동생 차로 가 보기는 했지만
차로 가면 가고자 하는 장소에 내려 그대로 돌아오니 주변을 걸을 기회가 없는데
그 송정은 예전 대학 때 갔었던 송정이 아닌 아주 다른 21세기의 송정이다.
그래서 20대에 갔던 길을 걸어 보자고 지도를 보고 있는데
내가 가장 동경했던 단아하게 입은 모습의 여인이 걸어와 정류장에 섰다.
특별해서 독특해서 멋있는 것이 아니고 연령에 맞게 검소하면서 우아했는데
이런 사람들이 간혹 눈에 띄었지만 매번 바빠서 부러워하면서 지나쳤었다.
그러니까 왜 부러운 것인지 왜 나는 따라 하지 못하고 침만 흘리는지
시간이 많은 지금 철저하게 분석을 해 보자고 마침 온 버스를 그냥 보냈다.
딱 내가 동경하던 그런 옷차림이 너무 잘 어울려 존경심까지 생겨나는
그 여인을 열심히 쭉 머리에서 발끝까지 쳐다보았다.
가방은 작고 심플한 장식의 핸드백이었다.
긴 하늘거리는 머플러를 했는데 봄 코트의 색과 잘 어울렸고
신은 굽이 없는 구두가 복숭아뼈가 보이는 길이의 바지와 딱 맞았다.
반지도 꼈는데 그냥 액세서리는 아닌 것 같은 앙증맞은 것이었고
염색을 했는지 흰머리가 없는 머리는 그냥 잘 빗은 정도로 자연스러워
전체가 다 하나가 되어 내 눈을 꽉 잡고 놔주질 않았다.
이 정도면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데 왜 난...
난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일이 거의 없다.
가방에 넣어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인데 벌레 물렸을 때 바르는 약부터
휴대용 충전기와 알레르기 비염으로 많은 양의 티슈를 가지고 다녀야 안심이 된다.
긴 하늘거리는 머플러는 어렵다.
난 22도 날씨에 반팔을 입고 다니는데 그래서 봄 코드라는 것은 나에게 없다.
멋쟁이들은 겹겹이 입거나 포인트를 주려고 머플러를 한다고 하는데
난 더위를 많이 타고 갑갑한 것이 싫어 겨울에도 심플하게 입고 산다.
신은 굽이 없는 구두인데 그런 구두가 나에게도 잘 어울렸었지만
발 뼈에 금이 가고 나서부터는 철저하게 운동화만 신는다.
반지
나에게도 반지도 목걸이도 부자 엄마 덕에 제법 있었지만
반지만 끼면 손가락이 부어 일하기가 힘들고 빠지지도 않아 빼는데 엄청 고생을 했다.
목걸이는 갑자기 목이 갑갑해지는 것 같은 기분에 손으로 뜯어 낸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러고 나서 쓴 일이 없던 것들을 딸이 대학생이 되었는 때 다 줘 버렸다.
난 손톱에 매니큐어도 바르지 못하는데 바르면 손톱이 무거워지고 갑갑해졌던 것이
지우면 그제야 편안하게 답답함이 사라졌는데 다들 믿어 주지는 않았다.
내 머리도..
나의 앞 머리는 아예 하얗고 나머진 반 백으로 풀풀 날리는데
한 번도 염색이라는 것을 한 적이 없고 하려고 꿈도 꾸지 않는다.
이렇게 써 보니 정말 알 것 같다.
억지로 라도 나를 쥐어짜서 맞춰 끼고 입고 신는다면 가능할 것도 같았는데
이렇게 차려 입고는 당장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힘들 것 같아 보이니
멋만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몰라도 삶을 위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이렇게 살아왔던 것이 나 다운 내 모습이었구나 하고 납득을 한다.
지금 내 모습은 운동화에 커다란 에코백 같은 가방에 반팔 셔쓰에 긴 얇은 바지인데
이것이 최고의 예의로 나에게는 최상의 자유를 주는 그런 복장...
이 복장으로 송정에 내려 대학 때 느꼈던 기분을 불러오려고 정신에 집중을 한다.
절대로 안 되는 일에는 빨리 포기를 하고 열심히 걷자고!
이제부터는 부러움을 뺀 눈으로 그 고상하고 단아한 모습을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