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순발력
내가 일본 고베 집에 잠시 다니러 간다고 했더니
오래된 서울 사는 친구가 따라가도 되냐고 했다.
일주일 정도를 생각했던 일정이 京都는 보고 싶다고 해서
일정을 늘리고 나니 친구의 딸이 아줌마 하면서
2박 3일로 중간에 가도 되냐고 물어 왔고
친구가 자기 딸이 오는 날짜에 京都 관광을 하자고 했다.
그냥 고베 집에 가서 꽉 차 있을 우체통을 비우고
장마철과 여름을 잘 보내게 습기 제거 통을 새것으로 바꿔 놓는
이런 일들을 하러 가는 일정이 갑자기 관광이 되어 버렸다.
난 京都를 정말 모른다.
그런데 나에게 京都를 이틀이면 다 보겠지? 하고 묻는 말에 멍해져
어떻게 하면 이틀에 京都를 다 보여준다는 것이 되는지 고민하다가
한참을 설명을 했는데 말을 하면서도 내가 모른다는 것을 실감했다.
하루 이틀에 다 봤다고 사진 찍는 일도 어려운 게 왜 그런지 몰라서
관광 지도를 인터넷으로 펼쳐 놓고 놀래고는 무엇이 보고 싶은지 물었다.
그리고 단호하게
난 관광업자도 아니고 안내인도 아니니 큰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는데
친구는 몇 번 일본을 봤었고 친구의 딸(내 딸과 같은 나이)은 처음이라고
뭐든 내가 하자는 데로 그대로 따라 하겠다며 부담 가지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고 대충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는 문제여서 느껴지는 부담이 후회로
처음부터 가볍게 생각하고 대답한 내 책임이 크다고 나를 나무랐다.
그리고 난 내 입장을 위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적어도 京都의 지리는 알아야 여관이나 호텔을 찾을 수 있지 않냐고
京都 역에서 친구가 가고 싶다는 清水寺의 위치를 찾았다.
건성으로 볼 때엔 그저 그랬던 볼거리가 세세하게 들어가니 엄청 많은데
오고 가는 날짜를 빼면 그저 하루뿐이어서 욕심을 확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일본어 사이트로 들어가 京都의 숙박을 찾았는데
친구의 재력과 환경을 고려해서 내 수준으로는 조금 비싼데 하는 곳으로
머리를 잘 썼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교통이 편한 곳을 고르려니
내가 아닌 사람의 마음을 읽어가면서 해야 하는 일로 엄청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하루 종일 후보지를 결정해 두고 다음날에 한 곳으로 정했는데
이틀 동안 고민해서 그런지 나름 여러 면에서 만족이 되어 뿌듯했었다.
친구에게 정했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이번엔 어떤 식으로 다녀야 하는지
교통수단에 대해서 공부를 하려니 이 나이에 무슨 짓인가 싶었다.
난 관광에 취미도 흥미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은데
내 손으로 이렇게 가고 싶지도 않은 곳을 뒤지고 있다는 것에 납득이 안되어
왜 내가 이 짓을 하고 있는지 나를 위해서 이유를 찾아보니 통역 봉사였다.
그럼 할 가치가 있는 거라고 해 달라고 청할 때 하자고 할 거면 잘해 보자고
본격적으로 京都의 지형을 놓고 京都에 사는 일본 친구에게서 듣던 말들을 떠올리며
공항에 도착해서 京都로 바로 오는 친구 딸아이의 교통수단까지 확인해 두었다.
그런데 이러고 있던 사이에 내가 잘 이용했던 호텔닷컴에서 광고 메일이 왔다.
그 순간 아! 하는 생각을 하고 일본어로 시작해서 다 일본 사이트로 봤던 것에
숙박 요금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떠올렸고 가슴이 뛰기 시작해서 손까지 떨렸는데
역시나 같은 호텔의 숙박 요금이 거의 두배 차이가 났었다.
왜 이제야 생각이 났을까 하면서 얼른 예약한 것을 취소하고 호텔닷컴으로 다시 예약을 했다.
엄청난 순발력으로 앉은자리에서 돈을 벌었다는 기분...
일본은 하나의 방 가격에 들어가는 사람 수를 곱하는데
우리나라는 세명이 쓰는 방이라면 그냥 방값만 내면 되어
세명이 되니 액수가 많이 차이가 나는데 왜 이런지는 난 아직도 모른다.
암튼 난 이것을 친구에게 잘한 짓이라고 칭찬하라고 엄청 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