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하는 관습
벌써 20년 전에 했던 연하장을 보내는 일이 머릿속에서 지워졌나
갑자기 친구가 보낸 답변에 머리가 멍해졌다.
일본 30년 지기 친구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한 줄을 보냈다.
난 그저 살아 있다고 알렸는데 이 친구에게는 이런 인사가 힘들다고
꼼꼼한 성격의 친구는 남동생이 5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 줄 보내왔다.
아마도 내가 일본에 있었다면 그 소식을 엽서로 받았을 텐데
가족의 슬픈 일이 있는 사람은 새해의 축하를 하거나 받으면 안 된다는
일본 관습이 있어 이걸로 보자면 엄청난 실례가 되는 것을 내가 한 거다.
이 실례는 철저한 일본인으로 사는 이 친구에게 충격일 것 같아서
뭔가를 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럴 때 쓰는 말이 있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아 다른 조금 개방된 일본 친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大変でしたね 를 알려 주었다.
난 이런 관습을 한국식도 잘 모르지만 일본식은 더 깜깜한데
도무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가 이해되지 않아 그런지 습득이 되지 않고
그냥 거부하는지 거의 20년을 어울려서 살았으면서도 익숙하지가 않다.
한 해 동안 이런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새해의 연하장을 받거나 보낼 수 없어
미리 사망 통지를 알리는 엽서가 있는데 이것도 까다로운 형식이 있어
개인이 그냥 써서 보내기는 어려워 다들 인쇄를 부탁하는 편이다.
이렇게 받은 엽서는 잘 보관을 해야 연말에 연하장 보내는 일에 실수를 안 하는데
이래서 엽서를 모아두는 사진첩 같은 것도 매년 구분이 되어야 하니 필요하고
매년 꼭 해야 하는 이 일에 인쇄를 부탁하면 비용이 꽤나 되어 프린터를 사는데
그 프린터는 연하장을 만드는 기능도 보내는 주소도 자동으로 프린트되어
거의 웬만한 집에는 한 대씩 놓고 손으로 써야 하는 수고를 대신했다.
이게 얼마나 커다란 행사인지 우체국에서 공백의 연하장을 사려면 예약이 필요하고
그때쯤엔 모두들 만나면 우체국의 연하장 엽서는 사 두었냐고 하는 게 인사였다.
우체국의 연하장에는 새해가 되면 추첨을 해서 우표 등을 선물하는 번호가 있어
가능한 우체국 것으로 보내는 것이 좋다고 해 나도 열심히 우체국 연하장을 사서
아이들과 사서 썼던 고무도장의 새해 문구나 새해의 띠 그림으로 엽서를 장식하고
내 주소나 상대방의 주소는 프린터를 이용해서 완성했는데 이걸 다 잊고 있었다.
이 연하장은 12월 15일부터 우체국에서 받아 25일까지 계속 모아두었다가
새해 아침에 한꺼번에 배달했는데 새해 아침을 먹고 나면 우편함을 열어 보고
이건 다시 내년 연하장 보낼 때 참고로 해야 하니까 잘 구분해서 보관해 두었다.
한참 90년대 일본의 호황기 때엔 화려한 장식의 연하장에 경쟁을 하면서
나는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사는 동네가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는데
작년에 받고는 올해 보내지 않으면 오해를 받는다고 친구들이 조심하라고 했다.
이 글을 쓰려고 지금은 어떻게 하는지 일본 사이트를 보다가 찾은 건데
그 예전에는 없던 방법으로 연하장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관하는 방법도 있고
연하장 버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잘게 잘라서 태우는 쓰레기로 버리라고 해
연하장 하나에 더 많은 일들이 생겨난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