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다 중요해 보인다면 순서가 필요하다.
꿈꾸던 브랜드 마케터로 입사 후 1년, 12명이었던 브랜드 팀원 중 8명이 퇴사,
3개월 후 남은 3명이 퇴사하며 결국 혼자 브랜드팀에 남게되었습니다.
팀장님의 퇴사 후, 브랜드를 어떻게든 운영해야 했던 실무자의 생생한 고군분투기입니다.
브랜드의 방향을 설정하고 실행해 온 브랜딩 적용기에 관심있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어떻게 해서든 지키고 싶은 것,
어떻게 해서든 꼭 전하고 싶은 것,
그것을 타협 없이 밀고 나가는 것.
가능하면 고객이 브랜드의 어떤 모습을 보고도 브랜드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중요한 가치를 모든 곳에 녹여내는 것. 오늘도 브랜딩을 고민하는 사람은 이러한 일에 힘을 쏟습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영역의 일을 브랜딩 질서에 꼭 맞출 수는 없습니다. 브랜드가 새롭게 발신하고자 하는 이미지보다 이전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브랜드 입장보다 외부 요청 사항에 더 맞춰주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브랜드'다움'을 잃지 않기위해 어떤 기준으로 타협해야 하는지 위계를 정하는 것이 브랜딩 매트릭스(matrix)입니다.
브랜드 질서를 아주 단호하게 지켜야 하는 영역 - 1
브랜드 질서를 안 지켜도 되는 영역 -7
브랜드의 사업이 여러 가지라면, 특히 외부 업체와의 일까지 연결되어 있다면 구분이 필요합니다. 매트릭스를 통해 1~7단계까지 브랜드다움의 본질에 가까운 것을 기준으로 사업을 배치하면 무엇에 힘을 주고, 무엇은 조금 자유도를 높여도 될지 알게 됩니다. 물론 각자가 생각하는 정도는 다르지만 이분법적으로 브랜딩 규칙을 지키느냐 빼느냐라는 성급한 결론은 맺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매트릭스 안에서 어떤 기준으로 배치를 해야 하는지를 논의하면 여러 원칙들을 정하게 됩니다.
현대카드의 앱을 예로 들면 그것이 음식이든, 금융이든, 날씨이든, 카드 청구서를 열든 '속도와 느낌은 같아야 한다'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음식 앱에 현대카드의 무채색을 입힐 수는 없지만 경험은 맥락이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브랜딩 매트릭스는 소란스러움 가운데 질서를 찾는 과정입니다.
파파레서피 브랜드 키워드 정립 후, 처음부터 전 영역에 새로운 브랜딩 규칙을 적용시켜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웹, 지류, SNS 콘텐츠, 플친 소재까지 전 영역을 동시에 적용시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한정된 리소스로 하나씩 하나씩 바꾸어가다 보니, 이전 브랜드 이미지와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가 섞여 산재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발신하고 있는 모든 이미지를 모아 어디서부터 바꾸어가야 할지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B2B 영역의 경우에도 당장 새로운 브랜딩을 적용시킬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기업들이 우리 브랜드를 인식하고 있는 모습, 고객들에게 가장 각인되어 있는 모습을 강조해야만 하는 자리이니깐요. 브랜드 키워드 정립 이후 큰 B2B 행사가 있었지만 이곳에 새로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적용할 순 없었습니다.
영역 1 - 브랜드 주 채널(인스타그램), 브랜드 손편지, 제품, 택배박스, 웹/모바일 홈페이지
영역 7 - 외부채널, 외부업체 요청 사항
정리해 보니 고객 접점에 가장 가까운 것들부터 브랜드의 본질을 잘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실무자가 바꿀 수 있는 자유도가 높은 영역부터 바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정된 리소스와 브랜드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함을 고려했을 때 브랜드 주 채널인 인스타그램과 주문 시 제품과 함께 동봉되는 브랜드 손편지에 집중해야 함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외부 채널에 셋팅해야하는 상세페이지는 브랜드의 결을 보여주기 보다 외부 채널 특성에 맞추어 다른 톤으로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고객이 브랜드를 접하는 순간들을 이어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광고 소재와 제품 상세페이지, 웹 홈페이지를 통해 브랜드를 경험합니다. 주문을 하면 택배 박스를 받고, 제품 포장지, 제품, 브랜드 지류 등 물성이 있는 것을 통해 브랜드를 경험합니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면 택배 박스와 제품에 브랜드 색깔이 진하게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웹에서도 브랜드 스토리가 잘 느껴지도록 UI/UX도 바꾸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고객에게 우리를 잘 보여주고 싶다는 목표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지표, 한계들이 실무에 산재합니다. 제품을 바꾸려면 하나의 제품이 아닌 전 제품에 새로운 디자인 가이드를 적용해야 합니다. 웹도 실제 고객의 행동 패턴 분석 없이 단순히 브랜드 결을 보여주겠다고 바꿀 수는 없습니다. 제품을 잘 진열하고 전환을 일으켜야 하는 MD 측 입장과 상충될 수도 있습니다. 택배 박스 역시 비용의 문제로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택배 박스만 바꾼다고 브랜드에 대한 인상이 확연히 바뀌기도 사실상 어렵습니다.
주 채널 하나만 잘 바꾸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뾰족하게 만들고, 고객이 반응하도록 하는 과정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인스타그램 운영 당시 브랜드 키워드(easy, curious, fresh) 당 킬러 콘텐츠를 하나씩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기획 의도도 있고, 레퍼런스 콘텐츠도 있었지만 우리 고객이 바로 반응하지는 않았습니다. 반응할 수 있는 고감도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여러 번의 시도와 검증이 필요했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오히려 방향성도 흐려지고 자신감도 떨어지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고객 접점에서 중요할 만한 것을 생각하면 전부 중요하다고 느껴집니다. 모든 게 중요하지만 순차적으로 적용시켜 나갈 원칙들과 전략이 부재하다면 고객에게는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사적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 고객 접점에 대해 생각하고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상징적인 것부터 바꾸어가야 합니다.
다음 화에서는 브랜드 인지를 일으키기 위해 고객 접점을 선별하여 시도해 본 이야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