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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크 Sep 25. 2024

행복한 우리 집

보미씨의 명절 2

시어미니가 보미씨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가 짜잔하고 시골촌구석 대학교라며 외손주의 명문대 대학 입학을 자랑하니 보미씨는 매우 상심하고 섭섭해하는데... 

그 섭섭함을 되려 서운하다는 시어머니는 명절 전날 갑자기 큰 시누 집으로 가게되면서 그 후 이이야기




어머니가 큰 누나 집으로 갔다는 말에 보미씨는 앞으로 닥칠 상황이 무서워졌다. 

원래 평화주의자 보미씨는 불화를 못 견뎌한다. 본인이 참고 말지 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보미씨만 참는 게 아닐 수 있고 서로가 상당히 조심히 하는 것도 알고 있다.


보미씨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해 본다. 


차례를 지내야 하는가? yes! 

- 시어머니는 평생을 차례를 건너뛰어본 적이 없다. 미리 하거나 며느리가 하거나 무조건 진행했다. 집안의 어르신의 계획은 우선적으로 선행되는 것이다. 


어머니와 담판을 지을 것인가? no!

- 보미씨는 굳이 자녀 문제 가지고 서운할 일도 섭섭한 일도 지나가버린 감정이라 쌓지 않기로 한다. 그러니 어머니와의 오해는 되도록 해소되어야 하기 때문에 담판보다는 은근히 지나가고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되길 바란다. 


차례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가? yes

-어머니가 비록 큰 시누집으로 갔을지라도 다가올 차례음식은 당연히 보미씨가 준비를 해야 한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먹음으로써 얼마나 행복감을 느끼는가?  건강하고 튼튼한 보미씨와 그 남편이 준비하는 것이 맞다. 


보미씨가 생각하기엔 어머니는 태후다. 절대 권력. 곳간열쇠는 아직 며느리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곳간열쇠를 쥔 어머니의 권력은 현 실세이고 태후이니 자녀들의 존숭을 받는다. 이에 맞춰 며느리도 따라가는 것이다.  보미씨는 왜 어머니가 힘들다고 구시렁하면서 며느리들에게 감정을 호소하는 걸까 평소 궁금했다. 

차라리 곳간열쇠를 쥐어주고 며느리들이 음식을 하면 맛이 있든 없든 기회를 줘야 하지 않는가? 왜 자꾸 미리 나물재료 사다 놓고 힘들다고 하는지.. 정작 같은 노동을 하는 며느리들은 한두 번 비위를 맞췄지만 지속되면 내성이 생겨 이제는 아무 감정이 들지도 않는다. 


부정적인 소리 계속 들으면 듣는 사람도 계속 괴로워진다. 보미씨는 언젠가 챗지피티에게 시어머니가 음식에 대한 욕심을 가지는 이유를 물어봤다. 당시에 여성들이 사회 진출이 어려웠고 가정에서 오직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요리였다고 한다. 그래서 평생을 요리로 인정욕구를 받아온 세대들에게 요리만이 자존심이었다고 한다. 


보미씨는 그런 시어머니가 외식을 하거나 음식 재료를 사면 왜 품평을 하고 음식이 맛이 없다는 둥 재료가 신선하지 않다는 둥, 생물로 사 온 해산물은 상했다는 둥 이해 안 되는 말들이 이제는 이해가 된 것이다. 


  그만큼 어머니의 재료 품평은 혹독하고 냉정했다. 


시집와서 처음 사간 명란젓을 보고는 '첨가물이 많이 들어있는 짜디짠 명란젓을 왜 사 왔냐'

특산물이라고 홍삼이 5%가 함유된 꿀을 보내드렸더니 

'홍삼 5% 들어간 이런 꿀은 좋지 않은 꿀이다. 공장에서 어떤 장난을 칠지 모르는 거 아니냐. 100% 꿀을 사야 한다.'

살아있는 소라를 사 왔는데 '냄새맡아 보니까 먹지 마라, 상했다. '

수산물시장에서 싱싱한 낙지를 살 때 서비스로 받은 바지락을 보며

'바지락 누가 먹는다고, 앞으로 절대 가져오지 마라'

맛있는 오리탕집이 있다고 해서 어머니와 같이 갔는데 어머니가 대뜸 종업원을 부르며

'여기, 왜 이렇게 고기가 오늘따라 질겨요?' 따지니 맛있게 먹던 보미씨가 절로 숟가락을 놓은 사건들이 있었다. 



언젠가 보미씨는 '나는 배를 타고 먼바다를 가서 물고기를 잡아와야 어머니가 만족하시겠구나' 생각을 했더란다. 음식에 대한 집착이 주변사람을 곤란하게 한다는 걸 모르시는 걸까? 적당히 고맙다, 괜찮다, 먹을만하구나 이렇게 배려하는 대화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보미씨의 세대는 회사에서 업무 성과로 성취감을 얻고 여가 문화 시대가 오면서 건강을 위해 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과 여유가 있다. 그렇지만 오직 음식과 집안 살림을 도맡고 부족한 월급으로는 빠듯한 살림살이가 궁핍하니 부업을 하던 어머니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이런 어머니와 음식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유는 보미씨가 차례음식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앞서 시어머니가 또 어떤 품평을 할지 마음가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준비하기 전에 보미씨는 남편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내가 이번에 한 음식들을 보나 마나 시댁에선 안 좋아할 거야. 그러니 당신이랑 아들이 전부 싹 다 해치워야 해. 아주 좋은 재료로 만들 거니까 아깝기도 하고 우리 입맛에는 진짜 맛있으니까 책임지고 다 먹도록!"

남편과 아들은 걱정 말라고 맛있게 먹어준다고 약속을 한다.


그렇게 명절 전날 보미씨는 남편과 재래시장에 가서 한우와 송편, 몇 가지 재료를 사 왔다. 

그리고 전와 새우튀김, 특등심으로 만든 소고기산적, la 갈비, 배, 사과, 국내산 제품으로 맛있다고 소문난 모싯잎 송편, 멜론, 약과, 깨강정등 차례상에 올라갈 음식들을 정갈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계시는 큰 시누집으로 갔다.

-이 앞편에서 시어머니가 보미씨에게 섭섭해서 명절 전날 갑자기 큰딸집으로 어머님이 가버리셨고

이번 명절은 본의 아니게 큰 딸 집으로 차례음식을 들고 갈 수밖에 없었다.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차례는 이곳에서 지낸다는 호출도 있었기때문이다. 


보미씨는 이 많은 음식들을 들고 가며 어머니가 과연 어떤 반응을 하실지 궁금했다. 원래 시어머니집으로 들고가는 음식들이라 어머니 계시는 어느곳이든 써야 할 돈이라 아깝지는 않았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명절을 보낼 수 없기에 며느리에게 서운해서 분노하신 시어머니에게 보미씨는 안아드리고 달래 드려야지 맘을 먹는다.

'나는 으른이니까' 하며 보미씨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다. 

음식이 전부인 어머니에게 맛있는 음식을 들이대면 분명 마음이 녹아내릴 거라 생각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더 어렵지 않은가.. 큰 용기가 필요한 만큼 보미씨는 시어머니가 먼저 다가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막상 큰 시누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으로 가지고 온 음식들을 밀고 들어가니 

모두들 너무나 반갑게 맞이하고 어머니는 어마어마한 갖가지 음식에 반가움을 드러내며 보미씨 엉덩이를 탁탁 두들긴다.


"이렇게 많은 걸 준비했다니, 너무 고생 많았구나.!"


보미씨는 이제 안다. 

어머니가 어떤 포인트에서 마음이 녹았는지. 모두가 즐거워야 할 명절에 비록 해프닝이 아닌 해프닝이지만 

늙으신 노모가 기대고 싶은 마음 어찌 모르랴. 그것도 딸이 채워주는 기쁨도 있을 것이고 

보미씨에게 기대가 커서 그만큼 서운했다가도 살갑게 다시 다가오는 며느리가 이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말씀을 안하셨지만 미안함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왔음을 보미씨도 직감했다.  이만하면 어르신이 큰 양보를 하신거구나 싶다.  


보미씨는 싱긋 웃으며 어떤 재료로 이걸 만들었고 저걸 사 왔고 주렁주렁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시어머니는 행복한 표정으로 귀담아들으시고 남편은 그런 상황들이 아무렇지 않듯 가족들과 둘러싸여 있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냐고?

결국 차례음식으로는 차례를 못 지내고 명절 전날 보미씨의 음식으로 온 가족이 만찬을 누리고 시어머니 집으로 되돌아왔다. 큰 시누도 시댁에 가야 하니 명절 전날 차례를 지내기엔 큰 사위의 눈치가 있을 것이고 이렇게 흐지부지 추석 명절은 끝나버렸다. 


보미씨의 시댁은 항상 예측불허라 다음 명절엔 또 어디로 튈지 모른다. 차례를 지내긴 지내는데 다음엔 또 어떻게 지내게 되는 걸까?  보미씨는 시어머니 태후께서 하자는 대로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보미씨의 명절은 그렇게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남겨두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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