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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은 바꾸라고 있는 거야.

by 바크


“계획은 바꾸라고 있는 거야.”


남편은 이 말을 습관처럼 되뇌며 산다.

그의 삶은 늘 무계획에 가까웠고, 때로는 무책임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이 집안의 방식이었다.


그 집 아들, 딸, 그리고 심지어 시어머니까지도 ‘그날 좋은 게 바로 계획’이라는 철학 안에서 살고 있었다.


이번 어머니 생신도 다르지 않았다. 시누이들이 단톡방에 여행 얘기를 올렸고, 남편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반대의사를 밝혔다.

작은 시누이는 날짜를 다시 공지하며 모두 기억하라며 당부했다.

며느리인 나와 동서는 당일에는 바쁘니 대신 식사나 나들이 정도를 생각해 보자며 조용히 상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톡방은 그 후로 조용했다.

시어머니 생신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아무 말이 없었다.

보통 같았으면 어디서 볼지, 누가 뭐 준비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을 터.

불안한 마음에 동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도 이번엔 어머니 생신에 불참하기로 했고, 시동생만 뵈러 온다고 했다.

그럼 결국 어머니와 나, 남편, 시동생—그렇게 넷이서 조용히 식사하고 꽃구경이나 다녀오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던 중 단톡방에 시누이들이 일본에 갔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선물은 명품으로 하자느니, 여행이 어떻다느니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침묵 속으로 사라지더니, 결국 어머니 생신에 일본으로 훌쩍 떠난 것이다.

놀라움보다는 ‘그래, 이 집안은 원래 이렇지’ 하는 체념이 먼저 들었다.

계획이란 이 집안에선 장식에 불과했고, 진짜는 그날 아침의 기분이었다.


나는 내 계획대로라도 어머니를 모시고 나들이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토요일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그날 오전엔 직장 사진 동호회 일정이 있어 어머니는 오후에 뵈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남원으로 꽃구경을 가자는 나의 계획은 또 접혔다.

대신 출사 장소로 어머니와 함께 가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전날 밤, 다시 일정을 확인했다.

“내일 어머니랑 같이 가는 거지?”

남편은 말을 바꿨다. “오전엔 우리 둘만 가고, 어머니는 오후에 따로.”

이유는 “같이 가면 번거로울 것 같아서”였다.

나는 어이없어하면서도 “뭐, 울 엄마 생신도 아닌데” 하고 넘겼다.


그리고 새벽 7시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오전 9시엔 출사 장소에 도착해 사진을 찍었다.

점심을 먹고 어머니께는 3시쯤 도착하겠다고 연락했다.

솔직히 남편은 자기 엄마라 무계획에도 엄마는 받아들이시겠지만 며느리인 나는 어떤 핑계 같지 않는 이유로 설명할 생각 해 좀 머리가 아프긴 했다. 잘못도 없는데 괜히 죄지은 기분이 들었다.




그와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무계획’이라는 이름의 파도를 수없이 맞으며 살았다.

처음엔 화도 났고,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집안 문화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처음엔 시어머니 생신에 뭔가 멋진 걸 해드리겠다고 나서도,

곧 남매들이 끼어들어 “그날 기분이 이거니까 이렇게 하자”는 식으로 모든 걸 뒤집는다.

결국 난 “그래, 그럼 나는 빠질게” 하고 뒤로 물러선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고 나니 편해졌다.

며느리들이 손을 놓자,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시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이 집안 문화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기로 했다.

문화란, 개인이 바꾸는 게 아니니까.




며칠 전, 남편이 지친 얼굴로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너무 피곤해.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

나는 걱정이 되어 말했다. “그럼 강아지 데리고 뒷산 산책하고, 집에서 저녁 먹고 푹 쉬자.”

남편은 알겠다고 차에 올랐다.

하지만 가는 길에 말을 바꿨다.

“아, 기가 막히게 좋은 데 알아냈어. 1시간 드라이브 가자.”

나는 당황했다.

“피곤해서 일찍 퇴근했다며. 그냥 쉬어야지.”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자고 해서 별로였던 데 있었어? 다 좋았잖아.”

나는 그를 또 잊고 있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계획을 거부하는 사람, 도파민이 뛰는 곳, 순간의 설렘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한 시간쯤 달려 도착한 곳은 강변 산책로.

유산소 운동을 좋아하는 나에겐 산책은 그저 정신의 휴식이지만,

남편은 “이걸로 오늘 운동 다 했네”라며 흐뭇해했다.

나는 “그래, 잘했어” 하고 웃으며 칭찬했다.

칭찬은 그의 연료다.

그렇게 기분 좋아진 그는 다시 흥겹게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에게 계획은 쥐약이다.

그는 아마 죽는 날까지도 무계획일 것이다.

나는 계획형 인간이지만, 이제는 믿지 않는다.

계획이란 반드시 이뤄질 거라는 환상을.

대신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변수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나를 훈련시켰다.

왜냐하면, 남편은 도파민이 솟는 방향으로만 달려가는 사람이고

나는 위험을 피하고자 앞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전혀 합이 맞지 않는 부부다.


그는 나를 보면 답답해하고,

나는 그를 보면 “성인 ADHD가 바로 당신이야”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그를 이해하려 애쓰며 살아왔고,

이제는 나 자신을 이해하며 살아간다.


그는 늘 자기 이익을 먼저 고려했고,

그래서 나도 이제 나를 우선순위에 둔다.

그랬더니 세상은 엉망진창이면서도, 나름의 평화를 품게 됐다.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엔 그의 흐름을 따라가고,

떨어져 있는 시간에는 내 리듬대로 산다.


그것이 우리가 유지되는 방식이다.


아마 남편은 평생 나의 성향을 알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만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탓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계획형 인간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변수다.

그 변수에 익숙해지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런 훈련을 꽤 잘 해낸다.


누구는 배우자를 휘어잡고 잘 산다.

실제로 그런 집이 경제적으로도 넉넉해 보이기도 한다.

내 남편이 내 말에 귀를 조금만 더 기울였더라면,

우리는 좀 더 단단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또 돌아보면,

그를 통해 나는 사람을 이해하고자 철학을 배웠고

끊임없는 질문에 답을 구하고자 독서를 알게 되었으며,

그 덕분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면 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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