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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쟁 Aug 23. 2019

일기 쓰는 사람

<서른쯤 산 문집> Intro

얼마 전 새벽, 실시간 검색어에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떴다. 드디어 폐쇄하는 건가 싶어 또 심쿵했다. 


'싸이월드는 회원들이 보유하고 있는 도토리 때문에라도 폐업을 못한다!'


소문을 철썩같이 믿고 있으면서도 '싸이월드'가 검색어에 오를 때마다 매번 긴장한다. 일종의 트라우마랄까. 싸이시대 이전, '일기 나라'라는 사이트에 내 온갖 생각들을 쏟아냈던 적이 있었는데, 그곳이 사업 종료를 하는 바람에 3년이 넘는 일기 데이터를 날렸다. 폐쇄 공지를 확인하지 못한 내 탓이 크지만 인생이 날아간 듯한 그때의 허망함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싸이에 써둔 일기는 양이 꽤 많다. 한꺼번에 데이터를 백업할 수 있는 기능이 아직 없어서 곳의 일기는 미처 옮기지 못한 채 싸이가 사라질까봐 주기적으로 쫄고만 있다. 물론 일일이 옮기면 되긴 하는데, 수동 백업을 하려면 Ctrl C와 Ctrl V를 5000번(!)이나 해야 한다. 그럴 용기가 아직은 없어 그저 미룬다.

기사를 찾아 보니 다행히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일명 검블유)'에 비슷한 소재가 언급이 돼서 화제가 된 것 같았다. 휴. 백업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오랜만에 싸이에 로그인을 해 보았다. 최후까지 싸이에 남아 있던(혹은 남아 있는) 몇몇의 흔적이 보였다. 그렇게 아련하게 싸이 감성을 느끼고 있으려니 문뜩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벌써 몇 달이 지났다. 눈코는 물론 입이나 귀까지도 뜰 새가 없던 일상을 빵 차버린 지. 매일이 균일해졌다. 시간이 남고 (해야) 할 일이 없다. 아점을 먹고, 티비를 틀었다가 책을 폈다가 휴대폰을 들었다가 벌러덩 눕는다. 최근  일과는 단조롭다. 오전에 집안일 좀 하고 수업 준비 하고 시간이 되면 수업을 하러 나간다. 집에 돌아오면 한밤. 대강 밥 챙겨 먹고 배를 두들기다 졸면서 뭔가를 본다. 재미가 있든 없든 두 시를 넘기고야 만다. 그제야 내일의 나를 좀 걱정하기 시작한다. 다음 날 피곤할 걸 알면 일찍 잠이나 자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 그 시간에 뭐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러기는 또 싫다. 그렇게 월요일, 화요일 지나고 일요일 넘어가면 또 월요일이다.

요 며칠은 특히 답답함이 복리로 불고 있었다. 단순히 일상적인 패턴이 지루해서는 아니었다. 좀 더 근원적인 이유를 알아내야 풀릴 듯했다. 그러던 중, 싸이를 마주한 것이었다. 새삼 그곳이 그리웠다. 그때가, 엄청 그리웠다.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싸이는 그 시절 나의 일부였다.



나의 일기 연대기

초등학생 때 일기쓰기는 단골 방학숙제였다. 개학을 앞둔 일주일 동안 알찬 방학 생활을 몰아 적는 것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지나간 날씨를 지어내는 게 어려웠을 뿐(ㅋㅋ). 일기쓰기 숙제를 대하는 내 마음은 이중적이었는데, 사적인 이야기를 선생님께 보여주고 평가를 받는 게 일단 민망했다. 종종 독자를 과하게 고려한 글쓰기를 하게 됐기 때문이었다. 그다지 재미 있지 않은 활동을 매우 즐거웠다고 쓴 적도 있고, 부정적인 마음이 들어도 긍정적인 다짐으로 순화해서 쓰곤 했다. 선생님은 성의 있게 읽었다는 의미로 검사 후에 빨간 글씨로 답을 달아서 돌려주셨다. 일종의 댓글(!)이었다. 쌍방향 소통까진 아니었지만 그 문장을 읽는 재미에 일기를 제출하는 게 좀 설렜다. 가끔 질문으로 답하실 때면 대댓글을 달고 싶었고 댓글이 짧으면 꽤 서운(?)했다. 일기쓰기 지도는 학생의 인권 침해로 지적되는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내 경우엔 적당히 포장하고 적당히 드러내는 법을 배웠다는 점에서 오히려 의미가 있었다. 여전히 서툴지만.


갓 중학생이 된 난 자유로운 일기를 쓰는 재미에 푹 빠졌다. 독자는 오로지 나뿐이었기에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잘 쓸 필요도 없었다. '일기 나라'에 오롯이 나를 위한 글들을 써댔다. 매일 쓰지 않아도 됐는데 하루종일 보고 듣고 생각했던 것들을 잊어버리기가 너무 아까워서 하루에도 몇 개씩 일기를 썼다. 공개와 비공개를 오가며 남에게 하지 못한 말, 속상했던 일, 자랑하기 민망한 것들까지 마구마구 뱉어냈다. 손으로 쓸 때보다 시간이 두세 배로 절약되컴퓨터를 놓을 수 없었다. 빠르게 많이, 저장공간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게 너무 좋았다. 사람들 간의 교류가 활발한 시스템은 아니었지만 낯선 사람이 가끔 어떻게 알고 찾아와 공감된다며 댓글을 달아주었는데, 그게 또 그렇게 짜릿했다. 지금은 사이트와 함께 사라진 순간들이지만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좋다.


고등학생이 되자 바야흐로 싸이시대가 열렸다. 다이어리도 이전보다 더 많이 썼다. 거의 강박에 가까웠다. 하루라도 못 쓰고 넘어가는 날이면 다음날 두 배로 더 써댔다. 아침에 눈 떴을 때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생각한 걸 다 적어야 직성이 풀렸다. 일기를 다 쓰고 침대에 누웠는데 미처 다 못 적은 게 생각나서 컴퓨터를 또 켠 적도 많다. 그냥 안 적으면 되는데 그땐 그게 안 됐다. 그래서 생각하는 걸 컴퓨터 종료하듯이 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진심 피곤한 삶(?)이었다. 하도 자세히 적어뒀다 보니, 여러 해에 걸쳐 전개된 사건의 내막을 몇 년이 지난 후에 내 일기로 추리해서 알아내기도 했다. 너무 즐거웠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던 유레카!! 그렇게 대학 초반까지만 해도 아무리 피곤해도 일기는 꼭 쓰고 자던 나였지만, 페이스북이 등장하고 감당하기 벅찬 삶의 고단함이 동시에 몰려오면서 나의 싸이월드는 저 세계에 잠들었다.


대학교 졸업 이후, 글을 잘 쓰고 싶은 열망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일기는 그 후로도 간간이 다른 공간에 계속 써왔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고 싶었지만 그때까지도 일기는 '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맘에 드는 '글'을 계속 쓰지 못했고 무얼 쓰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글을 못 쓴다는 자괴감은 엉뚱한 곳을 공격했다. 나는 잘 쓰는 게 아니라 그냥 많이 써왔을 뿐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너무 속상해서 손가락이 다 굳어버렸다. 일기는 의미 없는 강박이 됐다. 강박에서 벗어나고자 일부러 일기를 안 쓰고 살려고 노력하기까지 했다. 기어코 난 해냈다. 일기를 안 쓰고도 찜찜함을 갖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난 텅 비어버렸다.



운명의 데스티니, 브런치

얼마 전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찾다가 어느 국어 교사의 블로그에 들어갔다. 글이 참 정갈하고 학생들을 향한 진심이 듬뿍 묻어 있어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다. 나와 비슷한 고민도 있고 좀 다른 고민도 있어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 발견한 한 젊은 작가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 작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깔끔한 필력의 선생님이 팬이 됐다길래 어떤 느낌인지 궁금한 것도 있었지만, 일기가 '글'이 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더 호기심이 발동했다. 은 작가는 시로 등단한 뒤 시집을 냈고 최근에는 꾸준히 쓰던 일기를 모아 산문집을 냈다. 일기 딜리버리 서비스라는 것도 시행하며 독특한 행보를 잘 이어가고 있는 듯했다. 블로그를 찾아 일기를 어떻게 쓰는지도 살펴 보았다. 몇 편만 읽어봐도 팔딱팔딱한 기운이 느껴졌다. 역시는 역시인가. 멋있었다. 그곳에서 일기는 '글'이었다.


브런치 작가 신청에 낼 참고 글을 쓰기 위해 며칠 동안 노트북을 붙잡고 살았다. 그러나 결과는 늘 노력에 비례하진 않는다. 고친 글을 다시 읽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못마땅했고 이걸 냈다가는 영 탈락할 것 같았다. 보여주기 위한 글에 매여 마음의 자유마저 박탈 당했다. 예전에 느꼈던 글쓰기의 고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압박에 약한 스타일이다. 연재는 무슨. 그냥 에버노트에 계속 써야겠다 생각했더니 갑자기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브런치를 껐다.


'자유다!'


맘 편히 독자 모드로 글 구경이나 하자 싶어 팔딱팔딱 작가의 블로그를 계속 염탐하려는데 생각보다 공개되어 있는 게시물의 수가 적었다. 더 볼 수 있는 게 없나, 산문집을 바로 살까, 룰루랄라 하면서 글이 더 있다는 링크를 클릭했다. 음...? 맙소사. 도망쳤더니 브런치가 내게로 왔다. 운명인가.



나는 누구인가?

브런치에게 거절의 자유를 주기로 마음 단단히 먹고, 브런치를 다시 찬찬히 살폈다. 작가 신청을 하려고 보니 글도 글이지만 나 자신이 누군지부터 고찰해야 했다. 글에 제목 붙이는 건 참 좋아하는데 내 프로필 쓰는 건 너무 어렵다. 전에 자유기고가용 프로필을 쓸 때도 애 좀 먹었다. 이력만으로 묶어보려 했더니 일맥상통 하는 것 같으면서도 중구난방이다. 한 갈래만 집중적으로 드러내 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러기엔 그 분야에 정통했다고 할 만한 수준이 아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서로 별 연관이 없는 이력의 조합이 딱히 참신한 것도 아니다. 춤추는 시인이라든지 똘끼 충만한 박사라든지.


내가 꿈꾸는 건 아직도 둘 혹은 셋을 '다 하는' 것에 방점이 있다. 글도 쓰고 영상도 만드는 국어쌤. 이런 나의 모든 이야기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오직, 다시, 일기다. 뭘 써도 내 얘기니까 통일성도 기가 막히게 존재한다. '나는 일기 쓰는 사람이다.' 이상으로 나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문구는 없다. '나는 인간이다'와 거의 흡사한 수준으로 포괄적인 프로필이지만, 그 외엔 나를 한마디로 표현할 재간이, 내겐 없다. 일기쓰기만이 내가 가장 많이 해봤고, 가장 오랜 시간 해왔으며, 가장 끊임 없이 해낼 수 있는 행위이다. 비장함만 덜어낸다면, 내가 가장 괴롭지 않게 쓸 수 있는 '글'이다.


일기란 가장 사적인 이야기이자 개인정보 대방출의 현장이다. 가감없이 그대로 썼을 때 가장 빛남을 안다. 그러나 나는 내 정보를 드러내는 걸 좀 꺼리는 편이다. 모순이긴 하지만 노출 자체 때문은 아니고 좀 더 세밀한 부분 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같은 거.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것을 싫어하는데, 지하철 소음이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된다거나 책이 갖고 다니기 무거워서가 아니다. 내가 무슨 책을 읽는지 사람들이 보는 게 싫어서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타인에 무관심하다는 걸 알지만 그냥 나만의 의식이다. 맞다. 사실은 내가 그런 시각으로 사람들을 다. 갤럭시가 아닌 아이폰을 사용하는 것, 샤프가 아닌 연필을 사용하는 것,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는 것 등등. 어떤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을 보면 어느 정도 그 사람 추론할 수 있다. 성급하게.


수년 전 나는 아이폰을 썼지만 애플이 좋아서가 아니라 단말기 값을 지원받을 수 있어서였고, 수업을 준비할 때 연필을 사용하는 건 기념품으로 받은 연필이 집에 당장 있었기 때문이며, 연애할 때 운동화를 주로 신었던 건 구두를 신었을 때 내 키가 남자친구보다 커져서가 아니라 운동화가 편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자들이 완전히 동의할 수 없는 판단은 또 아니다. (실제로 샤프보다 연필의 아날로그 느낌을 좋아하긴 한다.) 다만 농도의 차이를 '한마디' 혹은 '한 번'에서는 잘 알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한마디로 말하라는 걸 싫어한다. 잘 못하기 때문이다. 구구절절 풀어서 설명했을 때 그 안에서 발견하는 걸 재밌어 한다. 내가 그렇게 발견되는 것 또한 즐긴다. 확실하다. 나는 일기고 보여주길 좋아하는 소심한 관종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쨌든 나는 일기를 쓰는 사람이다.



서른쯤 산 사람이 되어서, 맘 먹고 다시 글을 써보려고 한다. 하던 대로, 혹은 새롭게. 지금까지 변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분명히 변해갈 것이다. 그 살아가는 순간들을 이번엔 여기에 차곡차곡 쌓아볼 생각이다. 나중에 달라지면 달라졌구나 하고, 여전하면 여전하구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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