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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쟁 Sep 18. 2019

빅데이터가 말했다. 나는 마이너라고

왓챠 100개 채우기 중간점검



기가 막히게 메이저한 취향의 녀석을 안다. 그녀의 취향이 당대의 유행이었고, 당대의 유행이 그녀의 취향이었다. 슈스케 우승자, 프로듀스 101 센터, 쇼미더머니 우승자도 다 맞췄다.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그냥 자기 취향이 우승한단다. 오..!


내가 응원하는 사람은 오디션에서 아쉽게 떨어지거나, 끝까지 살아 남아도 준우승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우승할 것 같은 사람이 누군지 느낌이 와도 매번 나는 다른 사람들이 더 좋았다. 그렇다고 방송 활동을 하지 않는 가수나 배우들을 찾아다니면서 좋아하는 정도는 또 아니다. 차라리 그랬다면 특별함을 캐릭터로 삼을 수 있었을 텐데. 그걸 억지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보통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빅데이터는 알고 있다


신통방통한 메이저 그녀의 능력은 엄청나게 '많이 보는' 데서 나오는 듯하다. 틈만 나면 뭘 본다. 나는 뭘 많이 안 본다. 그래 왔다. 웬만한 콘텐츠는 다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종일 보고 듣고 싶은 마음이 크진 않아서. 그게 콘텐츠 산업 언저리를 맴도는 나의 취약점이자 약간의 콤플렉스다. 그래서 취미를 얘기할 때도 영화 보기, 드라마 보기, 책 읽기 이런 것들을 말할 수가 없다.


거기에다 따라 하는 걸 미친 듯이 싫어해서 무언가에 영향을 받을까 봐 더 안 보고 안 들었다. 글을 쓸 때도 영상을 만들 때도 레퍼런스를 찾느라 자료조사를 할 땐 보는데 평소에는 웬만한 사람들보다 더 안 봤다. 과거형인 이유는 안 좋은 똥고집이라 고치려고 노력 중이기 때문이다. 내가 안 본다 해도 같은 내용을 쓰면 어차피 후발주자는 따라 하게 되는 셈이니. 콘텐츠는 데뷔 순이다. 그래서 겹치기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세상에 나와 있는 것들을 더 많이 보려고 올해 1월에도 다짐을 했다.


─ 이번 해에는 드라마도 많이 보고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자.


이럴 땐 왓챠가 딱이다. 왓챠는 뭘 봤는지 기록해 두기도 좋고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취향에 맞게 추천해주는 기능도 괜찮다. 영화, TV에 이어 마침 도서 카테고리도 활성화됐다. 무엇보다 숫자로 쌓이기 때문에 '올해 안에 영화, 드라마, 책 100개 보기'와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정할 수 있어서 맘에 든다. 왓챠의 또 다른 즐거움은 다른 사람의 취향을 구경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이 작품을 별 다섯 개 줬구나~ 이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작품 재밌게 봤구나~


어느 날, 유튜브를 공동 운영하는 친구들에게 서로 왓챠 팔로우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무심코 본 취향매칭률 결과가 좀 당황스러웠다.


취향매칭률 23%는 같이 영화 못 보는 거 아닌가...


취향매칭률이 무려 세 명과 20%대(!)로 나왔다. 이 정도로 나올 일이야....? 더 당황스러웠던 건, 애들이 그냥 잠깐 웃고 금방 수긍을 했다는 점이었다. 뭐야, 나만 이상해? 왜 다들 이해해?


취향이 약간 마이너한 경향이 있음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저 정도일 거라고 생각은 못했다. 나도 네이버 뮤직으로 음악 듣고, 케이블 TV로 드라마 보고, 멀티플렉스 가서 영화 본다. 나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재밌게 봤고 드라마 <도깨비>에 푹 빠졌었다. 영화 <어벤저스>도 좋아하는걸?


결판은 다른 데서 났다. '취향'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자.


취향: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다수와 다른 취향이란 건 같은 걸 보고도 다르게 느끼는 것이 핵심이다. 남들 보는 거 보기는 는데 좋고 싫음의 마음이 다르게 생기는 것. 같은 걸 보고도 별점을 다르게 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겹치는 것도 있으나 갈리는 게 더 많았던 모양이다. 혹은 남들이 보는 걸 안 보거나 남들이 안 보는 걸 보고 좋아하는 일도 있었겠지.


리뷰할 작품을 놓고 나 혼자 재미없어했던 게 생각난다. 반대로, 다 재미없어하는데 나 혼자 좋다고 별 다섯 개 박은 작품도 있었다. 밌게 본 영화 추천했더니 보다 졸았다는 소리는 수도 없이 들었다. 내가 5점 준 영화 몇 개만 적어 보자면 <메멘토>, <남한산성>, <공작>, <심장소리>, <이퀄스>, <석조저택 살인사건>, <사도>... 쓰면서도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빅데이터가 내 취향을 알아본 것이다. 결정적으로 다른 멤버들끼리는 취향매칭률이 80%대(!)가 나왔다. 내가 빅데이터를 깨달은 것인지 빅데이터가 나를 깨달은 것인지..


취향 다수와 (내 짐작보다 조금 더) 다른 게 분명하다. 그러나 취향은 취향일 뿐, 마이너라고 모자란  아니다. 틀린 것도 아니다. 그냥 좀 다른 거지. 렇게 생각하니 어린 날의 한 순간이 떠올랐다.



남과 다른 생각


대학교 전공 강의 중에 TV 프로그램을 분석하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프로그램 하나를 정해서 잘된 점과 부족한 점을 살펴보고 새 프로그램 기획안을 제출하는 게 핵심 커리큘럼이었다. 첫 수업은 오리엔테이션으로 시작됐다. 교수님께서는 이 수업을 왜 신청했는지 혹은 고민이나 궁금한 게 있는지를 학생들에게 물으셨다.


수강생이 40명쯤 됐다. 교수님께서 가나다 순으로 출석부를 부르시는데 열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건 40명 전체 소환각. 빠르게 무슨 질문을 할까 나는 고민이 무엇인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 이름이 불리겠다 싶을 무렵, 내가 말하려고 준비한 질문을 먼저 다른 학생이 말해버렸다. 아, 다시..


이 무슨 창의력 테스트란 말인가. 똑같은 걸 말할 수도 없고, 아무 말이나 던지기 좋은 분위기도 아니었다. 순서는 가까워져 오는데 도통 뭔가 떠오르질 않았다. 제일 마지막에 불릴 학생을 불쌍히 여길 여유도 없었다. 내가 김씨인 게 그나마 행운이었다. 어쩜 다들 갑자기 시켜도 말을 잘하는지. 감탄하다 결국 내 차례가 되고 말았다.


"김수쟁~"

"네. 작품에 대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부분이 많은데 어떡하나요?"


궁지에 몰리니 나도 모르게 진심이 묻어 나왔다. 앞으로 수업에서도 TV 프로그램 분석을 해야 할 텐데 나만의 생각에 갇혀 객관적인 사고를 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당 강의를 수강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진정성 있는 질문을 던지고 위기를 넘겼다고 숨을 돌리는 순간, 숨이 턱 막혀버렸다.


"그럼 이쪽 일 하기 힘든데.."


그래서 그런가. 당시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쪽 일'에 약간 걸친 '이쪽 저쪽 일'을 하고 있는데, 어렵다. 물론 특정 상황을 바로 볼 줄 모르면 이쪽 일뿐 아니라 어떤 일에서도 뭔가를 해내기는 어렵다. 다만, 미디어 산업에서 생산자 취향 중요한 요소라 마냥 자유롭지는 못하다.


미디어 산업에서 취향은 수익과 직결된다. 생산자라면 타겟의 생각을 예측해 행동을 이끌어 내야 하는데, 다수를 설득하지 못하면 주류를 움직일 수 없다. 쉽게 말해 마이너는 돈이 안 된다. 특정층을 공략해 내 취향을 잘 활용하면 득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게 다수 수용자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결국 생산을 지속할 수 없다. 나도 사소하게는 공모전이 그러했으며 실직적으로는 밥벌이가 그러했다. 이런 면마이너는 일정 부분 불리하기까지 하다. 나같이 어정쩡한 마이너라면 더욱.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다. 나는 수용자이자 생산자니까. 공부하는 맘으로, TV 프로그램을 보고 나면 기사를 많이 찾아본다. 내 관점이 남들과 얼마나 어떻게 다른가도 비교할 겸. 같은 주제를 다루는 기사를 다섯 개쯤만 봐도 약간의 흐름이 잡힌다. 그리고 본문과 함께 댓글까지 꼭 본다. 센스 넘치는 베플을 구경하는 게 재미도 있고 사람들 반응을 보면 얻을 정보도 많아 꼼꼼히 살핀다. 댓글은 적극적인 의견을 내는 행위이다.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웬만한 경우에는 댓글만 봐도 다수의 반응을 알 수 있다.


이건 몇 년 전만 해도 꽤 괜찮은 나만의 공부법이었는데, 사실 이 부분은 이제 확신하기 어렵다. 댓글을 열 페이지 이상 다 확인하다 보면 조직적인 움직임도 쉽게 눈에 띈다. 그래도 화제성 조사에 아직 댓글 키워드 분석이 들어간다. 대체할 만한 무언가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댓글은 중요한 자료로 여길 수밖에 없다.


평소에 연예 파트 말고 다른 분야 기사들도 이것저것 많이 읽는다. 그게 남들의 생각을 파악하는 데 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왓챠를 빌미로 다양한 작품을 접하면서 창작의 동력을 더 얻어가고도 있다. 아직 멀었지만 분명 나아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맘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주류가 어렵다면 비주류를 담당하지 뭐. 다수의 일은 누군가 알아서 잘 할 테니 나는 내가 할 일을 찾으면 된다. 세상이 다채로워지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그게 나에겐 더 좋다.






십여 년 전 교수님께 드렸던 질문의 답은 찾았다. 작품을 바라볼 때, 내가 좋다고 항상 훌륭한 작품일 수는 없고 남들이 싫다고 반드시 부족한 작품인 것도 아니라는 것. 남들과 생각이 다른 것도 잘못된 게 아니고 쭈구리가 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 그렇지만 상황을 정확하게 볼 줄 아는 시각은 필요하단 것.


어차피 사람은 다 다른 존재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다수에 속하기도 하고. 취향은 그냥 상황에 맞게 잘 활용하면 될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주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열려 있다! 나는 내 취향을 아끼고, 다른 모든 이들의 취향도 존중한다.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노오력을 하는 데 힘쓸 뿐이다. 안목도 키우고 남과 다름을 남다름으로 만들기 위해.


그래서 왓챠 100개 채우기는 12월 31일까지 계속 도전할 예정이다. 조금 늦은 중간점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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