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를 망가뜨리는 소시오패스 팀장
4. 나는 소시오패스 팀장과 일한다 - 무(無)절차
#1. 공정한 절차를 모르는 소시오패스 팀장
"너 같은 애도 붙을 정도면 별거 없겠네"
신입사원 채용이 시작됐다. 처음 맞는 후배 채용에 설렘이 들었다. 그날 밤늦은 시각 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팀장은 나에게 공채시험 난이도와 준비방법 등 채용 팁을 물었다. 자기가 아는 사람이 지원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나는 나름 기억나는 대로 대답했다. 한참을 듣던 팀장은 너 같은 애도 붙을 정도면 별거 없겠네라며 대답했다. 순간 화가 났지만 웃어넘기며 지원자 이름을 물었다. 팀장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이름을 말해주곤 전화를 끊었다. 기분 나쁜 밤이었다. 설렘은 사라지고, 지원자가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야, 그거 일정 어떻게 되냐?"
그다음 날 팀장은 인사팀 팀원들을 들들 볶기 시작했다. 채용으로 바쁜 와중에 인사팀 팀원들은 다른 팀 팀장 응대까지 정신없었다. 팀장은 자기소개서 평가 일정부터 인적성 시험, 면접 예정일까지 모두 알아내서야 자리를 떴다. 그리고 팀장은 담배 피우러 가며 지원자에게 전화를 했다. 상세히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었다. 사실 일정을 지원자가 안다는 것 자체가 권한 밖의 일이었다. 더구나 팀장은 1차 실무면접 면접관이기에 더욱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팀장은 그 사실을 알고도 지인 챙기기에 바빴다.
"시험 잘 좀 준비하지 그랬어"
며칠 뒤 팀장은 지인이 자기소개서 평가에서 합격했다는 사실을 공식 발표보다 먼저 알아냈다. 그리고 인적성 시험 유형도 알아내 지인인 지원자에게 합격 소식과 함께 전달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팀장 지인은 인적성 시험에서 탈락했다. 팀장에게 기분 나빴던 그 연락 때문에 그 사람의 탈락이 기뻤다. 이러한 기쁨은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정규직 전환을 위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준비했던 계약직들도 기뻐했다. 팀장이 절차를 무시하며 지인에게 정보를 줬다는 사실을 계약직 모두 알고 있었다. 만약 팀장 지인이 합격했다면 문제 삼을 소지가 있었다.
"얘, 이쁘장하게 생겼네, 얘는 일 좀 답답하게 할거 같다."
최종 합격자인 신규 입사자들이 결정됐다. 팀장은 인사팀 팀장과 팀원을 또다시 들들 볶아 자신의 부서로 배치될 후보자들 이력서를 임원진보다 미리 받았다. 그러면서 팀장은 이력서 사진을 보며 외모평가를 시작했다. 훈훈한 외모에 팀장은 혼자 웃고, 일 잘할 것 같다는 혼잣말을 했다. 말이 좋아 혼잣말이지 다 들리도록 말했다. 훈훈한 외모와 SKY 학벌 외에 아무 스펙이 없는 신입에게 후한 자기소개서 평가와 함께 회사생활 잘하겠다는 칭찬을 늘어놓는다. 이미 팀장은 신입 팀원을 우리 ■■이라 부른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음에도 팀장은 정해놨다.
#2. 업무상 절차를 모르는 소시오패스 팀장
"내가 다 말해놓고 왔다"
신입채용이 끝나 내게도 후임이 생겼다. 후임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팀장을 믿지 말라는 말이었다. 나는 소시오패스 팀장의 말을 믿지 않는다. 특히, 업무적인 의사소통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유는 단 하나다. 팀장이 잘 말해놨다고 해서 일을 진행하면, 말을 해놨다는 부서에서 호출이 온다. 팀장이 말한 내용과 실제 업무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팀장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실무진의 의견과는 사뭇 다른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경우 항상 일을 진척시킨 것을 다시 취소하고, 업무 단계를 다시 밟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업무협조, 기안작성, 결재, 보고까지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결국, 팀원만 다시 바빠지고, 팀장은 결재가 올라온 것을 체크만 하는 식물이 된다.
"나는 절차나 그런 거 몰라, 애들이 다 잘하잖아"
팀장은 일을 진행하는 절차와 과정을 전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체계를 망가뜨린다. 소시오패스 팀장은 혼자 새로운 업무 시작과 동시에 먼저 골인 지점에 가있다. 팀원들이 출발 신호도, 첫 스텝을 밟기도 전에 먼저 이상적인 지점에 도착해 진도가 늦은 팀원을 혼낸다. 법적, 절차적 검토 없이 무조건 되게 하라는 태도이거나 이미 일을 저지른다. 그리고 뒷수습은 팀원들에게 또 넘긴다. 팀원들은 죽을 맛이다. 더 큰 문제는 소시오패스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상관없다는 태도다. 팀원들이 알아서 한다는 자랑 섞인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어떤 어려움이나 곤란한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은 본래 팀장이 져야 하지만 팀장은 회피한다. 반대로 성과라면 공로에 숟가락을 올리려 한다.
"본부장 없을 때 결재받자"
팀장에게 큰 금액이 걸린 결재를 올렸다. 그러자 팀장은 본부장이 부재할 때 대표에게 먼저 결재를 받자는 의견을 냈다. '왜요?'라는 내 물음에 팀장은 본부장이 태클 걸게 뻔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본부장 부재 시 대표 결재를 먼저 받으면, 본부장은 복귀 후 어쩔 수 없이 결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소시오패스 팀장은 대표에게 팀장은 좋은 것들만 보고하여 결재를 득한다. 우려사항이나 예상 걸림돌은 최대한 축소 보고한다. 그러나 본부장은 이러한 우려사항이나 걸림돌들을 잘 파악하고 있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하루는 이러한 소시오패스 팀장의 무질서한 결재 행위가 반복되자 본부장은 화를 냈다. 그러자 소시오패스 팀장은 연신 죄송하다며 사과를 한다. 그러나 뒤돌아서서는 잘 마무리했다며 흡족해하고, 신입사원에게는 올바른 팀장인척 연기를 한다.
#에필로그. 소시오패스 팀장 밑에서 5년을 버틴 방법
소시오패스 팀장 밑에서 어떻게 오랜 기간 일했냐고 묻는다. 절차를 안 지키는 팀장과 일하는 것이 꽤 녹록지 않았던 것은 나도 불편했고 힘겨웠다. 그냥 버틴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썼다는 것이 맞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팀장은 나를 자신이 지배하지 못하는 영역이라 느껴졌고, 경계했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적법한 절차를 나는 알고자 노력했고, 만들어가려 했기에 팀장은 나를 더욱 조심했을 것이다. 특히, 팀장은 실무에 거의 무지했다. 자기 팀원이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왜 그 일을 담당해야 하는지도 5년째 몰랐다. 자기가 하는 일에 관한 뉴스나 법령도 몰랐다.
그렇기에 나는 팀장처럼 일했다. 소시오패스 팀장이 부재중인 날을 즐겼다. 그를 패싱하고 일하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부재중인 팀장을 대신해 다른 팀원 업무까지도 살피고 추진했다. 소시오패스 팀장이 돌아오면 간략히 보고하고 넘어갔다. 적절한 절차와 업무 프로세스를 다 밟았기에 당당했고, 책임도 적당히 질 수 있다 생각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소시오패스 팀장에게 기대가 없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무책임이었다.
※ 해당 글은 사실에 기반하였으나 다양한 근무지에서 일하는 여러 사람들의 경험담을 조합하여 각색 및 창작한 이야기로 특정인물과는 관계가 없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