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빠 안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용 Jan 19. 2024

꿈에서 아빠가 나타났다

2. 아빠안녕!- 아빠의 웃음

오랜만에 아빠가 꿈에 나왔다. 아빠는 나에게 웃으면서 무언가를 말했다. 아빠를 보자 나는 7살 아이 모습으로 변해 아빠에게 보고 싶었다며, 울며 달려갔다. 아빠의 품에 다다를 무렵 아쉽게도 나는 꿈에서 깼다. 아빠가 그리웠다.


그리움을 뒤로하고 다시 나는 누군가의 남편, 아빠로 돌아왔지만 꿈 생각이 계속 났다. 아빠는 꿈에서 무엇을 말했을까. 하루종일 생각이 맴돌았다. 내 나이쯤 돼 보였던 아빠는 건강한 모습으로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며 웃었다. 웬만한 기쁜 일이 아니면 웃지 않은 무뚝뚝한 분이었기에 어떤 의미인지 더욱 알고 싶었다.


누군가는 조상님이 로또번호를 알려주는데 아빠도 그랬나?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그러나 아빠는 그런 일확천금에 기대는 사람도 아니고, 사행성 게임 자체를 싫어했다. 즐거울 수 있는 아빠 친구들의 화투놀이도 집에서는 금지였었다. 집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비디오, 노름, 술판이었다. 누나와 나의 교육상 좋지 않다는 이유였기에 더욱 강경했다. 이러한 성격을 생각해 보면 아빠는 로또번호보다 다른 필요한 것을 알려줄 것 같았다.


의미를 고민해 보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아빠의 마지막 웃음은 언제였을까 생각했다. 생전 내 기억 속 아빠의 마지막 웃음은 100일을 갓 넘긴 손자의 재롱을 병실에서 동영상으로 볼 때였다. 허허 고 녀석 하며 가장 순수한 할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당시 암으로 등과 가슴이 아팠고, 병실에서 힘든 생활이었을 텐데 막 태어난 손자는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아빠의 그 미소에는 손자를 통해 느낀 순수한 감정과 함께 고생 많다는 아들에 대한 위로를 주는 웃음이었다. 그 마지막 웃음은 꿈에서 봤던 웃음과 어딘가 모르게 조금은 비슷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나름 열심히 지냈다. 아비, 아빠, 남편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잠깐 나를 내려놓고 지냈다. 가족의 행복에 나도 흡족스러웠지만 나를 챙기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미뤄야 했다.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게 더 편했다. 이게 가장인가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나 한 명 고생하면 됐지 하며 잠깐 나를 내려놨다.


하늘로 떠난 아빠는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보살펴 주고 있을 것이다 생각하며 지냈다. 그렇다면 내가 겪고 있는 가장의 무게감을 아빠는 이해했을 거다. 아빠도 아비, 아빠, 남편, 가장, 큰형이라는 무거운 직함을 안고 살았다. 더구나 경제적으로 더 힘겨웠던 시간을 보냈어야 했던 아빠였기에 나보다는 무거웠을 거다. 그래서 아빠는 나에게 격려와 위로를 주기 위해 말을 하고 웃어준 게 아닌가 싶었다. 나도 그 꿈에서 깨고 난 뒤, 힘들었던 마음도 잘 정리되며 가장의 무게를 잘 이겨낼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 나이 37살이 된 2024년. 그러나 37살이라는 숫자와 별개로 아직 나는 아빠에게는 어리광을 부리고, 아빠에게 의존하고 싶은 아직 어린 아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아빠가 필요한 순간 힘을 주는 웃음과 어떤 말을 해준 것 같아 고마웠다. 더 나아가서는 꿈에서라도 다시 아빠를 봐서 기뻤다. 그렇게 나는 하루 힘을 낼 동력을 아빠는 가져다주었다. 나타나준 것만으로도, 잠시 꿈에서나마 아빠에게 마음을 의존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나는 위안을 얻고, 행복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 죽으면 제사 지내지 마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