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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 Mar 13. 2020

나리칼라 요새에서

내가 조지아에 있었을 때 -9.


대부분의 트빌리시 명소가 그렇듯 이 명소는 가는 길이 잘 보이지 않을뿐더러 가는 길에 사람도 별로 없다.



므츠바리 강을 짧게 가로지르는 메테히 다리 남쪽, 강변 오거리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카페며 식당, 환전소와 기념품점이 밀집해 있어 꽤 떠들썩하다. 그러나 그곳에서 산을 향해 쭉 이어진 오르막길을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금방 스스로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해진다. 과자 상자 같은 집들이 서로 바짝 붙어서 있고, 문 앞에 있는 영어 간판이 아니면 게스트하우스와 일반 주택을 구분하기 힘들다.


         

도로가 점차 좁고 가팔라지면서 길을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을 세 번쯤 할 무렵이면 길이 꺾이면서 전망이 하늘을 향해 트인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도시를 가로지르는 청록색 강과 그 너머에 있는 리케 공원의 상큼한 녹색 잔디밭, 통일성 없이 시선을 분산시키는 몇몇 랜드마크들이 내다보인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들어보면 오래된 성벽이 언덕 위에 차분하게 앉아있다. 이 가운데에서 대책 없이 낙관적으로 허공으로 향하는 것 같던 길은 절벽 위에서 휙 반대쪽으로 꺾여 다시 올라가는데, 그 모퉁이에 있는 문이 바로 나리칼라 요새의 입구다.



이 요새는 도시의 관광자원이자 오래된 문화 유산이지만, 그보다는 폐허에 가깝다. 길도 (거의) 없고 매표소도 없고 울타리도 없다. 반쯤 무너진 성벽은 군데군데 자연적인 벼랑과 합쳐져 있고 구석에는 깨진 벽돌 무더기가 쌓여있다. 말이 안 되게 폭이 좁고 가파른 성벽 계단과 탑으로 이어지는 바위 벼랑에는 난간이 없다.



나리칼라 요새는 트빌리시를 훤히 내려다보는 언덕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성벽 안에 있는 건물이라고는 아담한 크기의 성 니콜라스 교회뿐이다. 시오니 성당과 메테히 교회의 막내 동생뻘인 이 교회는 조지아 정교회 특유의 우유갑 같은 몸체와 다각뿔 지붕을 가지고 있다. (교회들 중 막내인 이유는 13세기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96년에 복원했기 때문이다.)



나리칼라 요새를 특정 시대나 양식으로 분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요새 자체는 4세기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 때 만들어지고 7세기 후반 아랍 제국 시기와 10세기 조지아 왕국의 다비드 4세 때 확장되었다. 그러나 요새 이름의 유래는 그 이후에 쳐들어온 몽골의 언어(나린칼라Narin Qala, '작은 요새')이고,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외벽은 16-17세기 때의 것이다. 1827년 지진으로 성벽 일부가 무너진 것은 이 요새의 복잡한 역사와 애매모호한 정체성에 그리 크게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다.


현대 시점에서 기능적으로 분류한다면 '전망대'일 것이다. 나리칼라 요새에서는 시선의 방향에 따라 다른 트빌리시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다.



먼저 입구를 기준으로 요새 뒤쪽은 짙고 고요한 숲이다. 숲이라고 할까, 사실 저 움푹 들어간 계곡의 빼곡한 녹지는 무려 식물원이다. 성벽 너머로 내려다보면 길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뛰어내려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푹신한 녹색 쿠션이 가득 쌓여있다. 


식물원에서 동쪽으로 시선을 옮기다 보면 갈색 벽돌로 만들어진 반구형 지붕이 올록볼록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빵을 굽는 화덕처럼 생겼는데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비슷하다. 이곳은 목욕탕 마을인 아바노투바니(აბანოთუბანი)다.

트빌리시라는 이름의 뜻이 '따뜻한 땅'이라는 사실을 알면 이 도시 아래 온천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진 않을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베리아 왕국의 바흐탕 1세*A.D.449 – 502가 매사냥을 하던 중 숲 속으로 도망가던 꿩이 삶아진 채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이곳이 온천 지대임을 알았다고 한다. 바흐탕 1세는 이 따뜻한 땅에 도시를 건설했고, 새로운 도시는 곧 이베리아의 수도가 되었다. 이렇게 트빌리시 그 자체의 역사와 함께해 온 온천은 지금도 성업 중이며, 공중목욕탕 외에도 개인 욕탕을 시간제로 빌릴 수 있다.



이제 요새의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면 앞에는 트빌리시의 온 시내가 펼쳐져 있다. 므츠바리강은 '아주 느린 것'이라는 이름 뜻대로 매우 느리게 흐르고 있어 짙은 청록색 종이를 오려다 붙인 것처럼 편평하다. 강을 기준으로 가까운 쪽은 구시가지의 낙낙한 감성이 느껴지고 반대편은 주말이면 발랄한 소풍객들이 가득한 리케 공원과 분주한 지역민들의 삶의 터전이 펼쳐져 있다.



트빌리시 시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교회다. 아니, 물론 가장 번쩍거리는 것은 녹색 플라나리아처럼 생긴 평화의 다리와 리케 공원 안쪽에 있는 거대한 은색 쫀드기(공원의 콘서트장인데 공사 중지된 상태라고 한다)이긴 하다. 그러나 이 도시의 진짜 주인들처럼 보이는 것은 황금 지붕을 쓰고 저 멀리 서 있는 성 삼위일체 교회와 강변에 갑작스럽게 솟은 절벽 위에 버티고 선 메테히 교회, 강 이쪽 편의 시오니 성당, 아르메니안 교회 그리고 내 옆의 성 니콜라스 교회다. 이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냥 거기에 서 있었던 것처럼 표표하게 자리 잡고 있다. 피고 지는 들꽃 밭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검은 옷의 사제들. 이들은 마치 전파탑처럼 도시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신앙과 보호의 망을 펼쳐 트빌리시 전체를 은총으로 덮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널찍하게 서로 거리를 두고 있는 랜드마크들 사이에는 대체로 빨간 지붕의, 그러나 그다지 통일성은 느껴지지 않는 건물들과 색색깔의 장난감 같은 차들이 빼곡하다. 중심가를 벗어나면 주택들은 평면적인 흰색, 베이지, 회색의 커다란 성냥갑으로 변하고, 가끔 깜짝 놀랄 정도로 이질적인 통유리 건물 같은 것이 우뚝 솟아 사람을 놀라게 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트빌리시는 리스본이나 파리와는 다르다. 그런 아름다운 도시들은 마치 밀푀유처럼 오랜 시간 동안 통일감을 가진 문화적 특성과 미학이 반복적으로 층층이 쌓여 풍성하고 화려한 맛을 낸다. 그러나 트빌리시에는 그렇게 정교하게 다듬어진 어떤 일관성이 없다. 아주 긴 역사가 퇴적된 오래된 도시지만, 하나의 역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교차하는 까닭이다. 왕이 뜨끈뜨끈한 언덕 아래로 사냥용 매를 날려 보내던 고대로부터 러시아와 마지막 전쟁을 치른 지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고달픈 근현대가, 목욕탕 입구의 아랍식 모자이크 장식과 엄숙한 기독교의 십자가와 구소련풍의 기계적인 아파트들이.



몇몇 지리학자들은 므츠바리 강을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경계로 삼기도 하는데, 이 강이 도시를 날카롭게 관통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트빌리시 특유의 종잡을 수 없는 정체성의 혼돈은 거의 숙명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므츠바리 강의  다른 이름은 쿠라 강으로, 터키 동부에서 시작해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을 지나 카스피해로 이어진다)


이런 혼란을 고스란히 내려다볼 수 있는 나리칼라 요새에서 트빌리시를 유난히 특별하게 '아름답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조금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빌리시는 매력적인 도시다. 그 본질만큼이나 아주 기묘하고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나리칼라의 성벽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다 보면, 여기에서 보는 전망이 편안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편안함이란 건 보통 도시를 내려다보는 고도에서는 느끼기 힘든 감정이다.


중세의 근엄함과 소련식의 척박한 현대성이 불균형하게 뒤섞인 가운데,  콘크리트 도시에는 묘한 낙천성이 흐른다. 

매캐한 매연 냄새며 길바닥의 개들이며 털털거리는 노란 미니버스, 물건이 있는 듯 없는 슈퍼, 어디선가 나는 화덕 빵 냄새... 이 모든 평범하고 별 볼일 없는 것들이 현대 도시에서는 아주 드물고 귀한 특성을 이루니, 바로 단순함이다.



나리칼라 요새에서 트빌리시는 별 망설임도 없이 가슴을 열어 안에 있는 것을 모두 펼쳐 보인다. 어떤 도시가 이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아름답지 않은 것들, 이를테면 을씨년스러워 보일 정도로 낡은 건물이나 정비가 되어 있지 않은 도로, 형편없는 미적 감각으로 꾸며져 어쩐지 애달픈 느낌마저 드는 테라스 등이 훤히 내다보여도 이 도시는 치장하려고 하지 않으며, 치장할 줄도 모른다.

어쩌면 적이 될지도 모르는 낯선 여행자에게 이렇게 스스로의 살갗을 갈라서 거무죽죽한 피부 안쪽이며 작은 것들이 바쁘게 출퇴근하는 핏줄 구석구석까지 보여주면 어떻게 하나, 싶을 정도다. 세련된 취향의 까다로운 관광객이라면 역시 '별 볼일 없다'라고 판단해 버릴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해부도란 게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더라도, 눈앞에서 파득파득 뛰는 심장을 보는 것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여기에서는 도시가 작동하는 방식을, 그 실제적인 요소와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사방에 온통 생활감이, 삶이 넘친다.


꾸민 듯 안 꾸민 것처럼 보이기 위해 공을 들이느라 진이 빠지는 아침 화장 시간이나 일부러 색을 뺀 신발에 달린 가격표 같은 피곤함이 없다. 순진무구에  대한 섣부른 미화는 접어두더라도 이 요령없는 단순함이 친근하고 또 편안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여행자는 화려한 매료도 속을 걱정도 없이, 트빌리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트빌리시에서 낡은 것은 정말 낡은 것이고, 그럼에도 괜찮아 보이는 것은 진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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