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더 Feb 26. 2020

잠든 개들의 도시

내가 조지아에 있었을 때-7.


트빌리시에는 개들이 아주 많다. 햇살이 나른한 오후에 시내를 걷다 보면 몇백 미터마다 한두 마리씩은 볼 수 있을 정도다. 짧은 털과 튼튼한 다리를 지닌 중형견들.


이 많은 개들이 뭘 하냐면, 대부분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워서 자고 있다.

 


차도나 가로수 옆, 건물의 모퉁이,지하철 역 앞 길 한복판에 그냥 철퍼덕 드러누워서 잔다. 어찌나 곤히들 자는지 처음엔 영락없이 죽은 줄 알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하얀 배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보이고 가끔 냅킨처럼 역삼각형으로 접힌 귀를 팔랑이거나 잠꼬대를 그르렁거리기도 한다.



트빌리시에는 집도 주인도 없는 개가 약 50만 마리라고 한다. 몇 년 전 시에서는 개체 수를 줄이는 안락사 조치를 취하려고 했지만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후 트빌리시 시는 위생과 안전, 그리고 동물 복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방안을 찾았다.


트빌리시의 개들 대부분은 귀에 조그맣고 동그란 플라스틱 태그를 달고 있다. 이는 이 개가 필요한 예방조치를 마쳤으며 동물복지센터가 돌보고 있다는 뜻이다. 동네 주민들과 지역 봉사자들은 건물 모퉁이나 골목 입구에 사료와 물 그릇을 놓아둔다.


대부분의 개는 사람에게 아주 익숙하고, 짖거나 공격하는 일은 드물다.  오히려 너무 관심을 주지 않아서 약간 자존심이 상할 정도다.



하지만 트빌리시 사람들도 개들을 별로 신경쓰지 않고, 도로 한복판에 누워있는 녀석들을 슬쩍 보고 비켜갈 뿐이다. 한번은 개 한 마리가 찻길 가까이에 머리를 대고 자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청년이 다리를 질질 끌어다 안전한 곳에 뉘여주는 것을 보았다. 그 뿐이었다. 개는 잠에서 깨지도 않았고 청년은 손바닥을 툭툭 털더니 그대로 가버렸다.


그 무심한 상냥함.

이것이 내가 트빌리시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트빌리시는 연중 따뜻한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뜨끈한 치즈처럼 늘어지는 열대의 낙천성이 지배하는 곳은 아니다. 오히려 소비에트 연방 출신국다운 무뚝뚝한 아스팔트 도로가 사방팔방으로 뻗어있고, 꾸미지 않은 거칠거칠한 표면의 건물이 늘어서 있다. 아주 무심하고,

그런데 이렇게 상냥하단 말이지.


오늘도 하늘은 파랗고, 트빌리시의 날씨는 온화하고, 길가엔 커다란 개가 곤히 자고 있다. 이 비현실적으로 태평한 광경을 마주할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여기는 그런, 잠든 개들의 도시.



이전 06화 트빌리시의 아파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