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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 Mar 01. 2020

조지아인들

내가 조지아에 있었을 때-8.


여행을 떠날 결심을 하고 나서도 조지아라는 나라는 여전히 낯설었고, 얼마 없는 자료들을 열심히 뒤져봤지만 그들의 종교도 언어도 인종도 도통 와 닿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까지 나는 여기서 내가 어떤 사람들을 보게 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러시아 아래, 터키 위, 그리스 건너편이면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실제로 본 조지아인들은 머리카락과 눈썹이 짙었으며 대체로 뼈대가 크고 몸이 두툼했다. 눈은 부리부리하고 뚜렷한 눈꺼풀이 반쯤 내려와 있어 고집이 세면서도 어딘가 노곤한 인상을 준다. 창백하고 날카로운 러시아의 이미지와 이목구비가 짙고 뚜렷한 터키의 인상을 뒤섞으면 현실적인 조지아의 얼굴이 나온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코다. 대부분의 코가 아주 좁고 길고 높았는데,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그 깎아지른 듯한 비탈의 경사가 어찌나 격한지 모두가 코카서스 산맥을 한 조각씩 이고 다니는 것 같았다. 강렬한 눈빛과 날카로운 콧날의 조화는 이들의 전반적인 인상을 조금 무섭게 만들었다. 모두들 입을 꾹 다문 채로 약간 피곤하고 불만 어린 표정을 짓고 있어 더욱 그랬다. 말을 걸기도 쉽지 않고 걸어도 매몰차게 무시당할 것 같아 혼자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다가가면 이들은 예상 밖의 활기를 드러낸다. 방금 전까지 쏘아보는 듯하던 눈빛이 순식간에 다정하게 반짝이고, 무뚝뚝한 입가도 사르르 휘어져 유쾌한 곡선을 그린다. 내가 약간 어색한 발음으로, 하지만 용기를 내어 "까마르죠바(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 여자들은 활짝 웃으며, 남자들은 특유의 그르렁거리는 듯한 억양으로 "까마르죠바!"라고 마주 인사해주었다.


나는 언제나 인물보다는 풍경 사진을 주로 찍지만, 돌아와 보니 정작 내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찍혀 있는 것은 조지아 사람들에 대한 단편적인 조각들이었다.


이를테면 기념품점에서 피로스마니 그림이 인쇄된 엽서를 고르다 카운터에서 영수증을 정리하던 직원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가 너무나도 수줍고 예쁘게 웃었던 것.

혹은 어느 멋진 식당에서, 오늘의 디저트 메뉴를 묻자 나를 다짜고짜 일으켜 세워 주방으로 데려가더니 거기 있는 모든 종류의 디저트를 일일이 설명해주던 웨이터. 그는 노래라도 부르는 듯한 어조로 한 조각씩밖에 남지 않은 애플파이와 레몬 타르트를 열성적으로 찬양하더니, 티라미수와 냉장고 가장 아래칸에 있던 생크림 케이크에 대해선 아주 대충 넘어갔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 레몬 타르트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국립 박물관에서 나에게 "까마르죠바"의 정확한 발음을 음절별로 가르쳐준, 레게 머리에 과격하게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던 청년, 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자 커피잔을 내밀며 "여기 있어요, 뉴욕!"이라고 부르던 바리스타, 금발머리에 흰 레이스 천을 두르고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교회 안의 촛불을 밝히고 가만히 서있던 여자의 그 옆모습, 내 낡은 필름 카메라를 보고 수줍게 웃던 과일 가게 할아버지...


큰 의미도 없고, 한번 스쳐 지나갔을 뿐인 그 사소한 장면들이 작은 타일 조각처럼 모여 하나의 인상을 완성한다. 그 모자이크화가 코카서스 산맥의 비범한 윤곽보다도 더 크고, 성 삼위일체 교회의 황금빛 지붕에 노을이 지는 순간보다 더 반짝인다.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꺼리고 되도록 조용히 건물과 건물 사이를 통과하려는 유령 같은 여행자에게는 매우 드문 일이다. 사람이 인상을 남긴다는 것은.


그러나 나는 여전히 조지아를 떠올릴 때, 조지아인들을 먼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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