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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 Apr 06. 2020

예스터데이

내가 조지아에 있었을 때 -15.



시그나기에 나들이를 온 사이 갑자기 숙소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나는 서둘러 트빌리시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찾았다. 내 얼굴에 황망한 기색이 그리도 환하고 분명했는지, 광장에 느긋하게 앉아있던 한 할머니가 억양이 강한 영어로 나를 불러 세워 무엇을 찾느냐고 물었다.


그 노파의 인상, 흰머리를 검은 스카프로 감싸고 구릿빛 피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져있던 그 얼굴은 그 경황없는 와중에도 내 기억에 깊숙이 들어왔다. 노파는 체구가 작았지만 그 작은 키는 산악 지대의 바람과 가리는 것 없이 내리쬐는 태양을 그대로 맞아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산비탈의 찌그러지고 우그러진 바위 같은 그녀는 흐물흐물하고 물렁물렁한 도시 여행자가 트빌리시로 가능한 한 빨리, 마르쉬루트카가 아니라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고 영어로 말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손짓으로 멀찍이 앉아있던 누군가를 불러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할머니의 중개 덕에 나는 러시아계로 보이는 덩치 큰 운전수의 흰색 도요타 미니밴에 얼른 올라탈 수 있었다. 직수입 차인지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었고, 낡은 초록색 화면에는 '디스크를 넣어주십시오'가 일본어로 깜박였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트빌리시에서 시그나기 사이의 약 100km는 거의 일직선의 도로가 쭉 이어지고 그 양옆에는 별 게 없는 평탄한 길이었다. 서울에서 수원을 가는 것만큼이나 감흥이 없다.


운전수는 거칠고 두툼한 손으로 그에 걸맞은 운전을 했다. 그는 말수가 적었고, 눈에 띄는 이방인인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알렉산드르"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며 반짝이는 구름 외에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침묵의 2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출발한 지 20분도 안되어 알렉산드르는 차를 세우더니 홀연히 길가의 가게 안으로 사라져 버려 나를 당황하게 했다. 잠시 후 그는 돌아와서 내게 초콜릿 바 하나와, 반으로 찢었음에도 사람 머리통 만한 납작한 빵을 건넸다. 빵은 기름기가 없는 호떡처럼 생겼는데 안에는 잘게 다진 고기가 들어 있었다. 나는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이 정도 크기의 호의는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얌전히 받아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빵의 이름은 로비아니다)

내가 빵을 야금야금 뜯어먹는 새에 운전수는 한 손으로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는 대부분 내가 학창 시절 들었던 옛날 팝송들이었다. <타이타닉> 주제가나 웨스트라이프 뭐 그 비슷한 것들. 이 멀리 떨어진 곳에 와서 그 먼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음악을 듣는 것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소처럼 느릿느릿 빵껍질을 씹으면서 세상이 참 넓고도 좁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아주 익숙하고 진한 도입부가 흘러나왔다.

Yesterday.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낯선 도시와 낯선 도시를 잇는 길이 이상하게도 이제 전혀 낯설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의 옆자리에서 그가 건네준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빵을 먹으면서 나는 이 차가, 내 영혼이 어딘가 분명한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트빌리시라는 이름의 도시는 그 방향의 중간에 있을 뿐이고 나는 사실 그 너머 어떤 확실한 방위 감각을 따라가고 있다고 느꼈다. 북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북극성에 닿을 때까지.


그것은 생각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강하고, 느낌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확실한 것이었다. 애매모호하고 전혀 설명할 수 없지만, 고개를 돌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해서 실제적인 존재감마저 느껴지는 그 무언가가 내 앞에 활짝 열린 것을 보았다.


앙드레 지드의 <위폐범들>이었던가. "그는 눈 앞에 인생의 바다가 펼쳐지는 것을 바라보았다."라고 했던 것. 나는 그 드넓은 바다에서 이미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나 많이 잃어버려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멀리 떨어지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여기에까지 표류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바로 여기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내 북극성의 이름이 무엇인지, 내가 왜 그곳에 끌리고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지금 그곳으로 향하고 있으며 그곳이 아주 그립다는 감정을 자각했다.


그 깨달음은 2분 5초 정도, 딱 비틀즈의 노래만큼 길었다. 그후로 이어지는 그 어떤 곡도 그런 환상을 다시 주지 못하면서 미니밴은 평탄한 도로를 무던하게 달렸다.

한 시간 뒤 나는 짙은 오후의 햇살이 사방에 노랗게 쏟아지는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기분 탓인지 트빌리시는 더욱 아늑하게 느껴졌지만, 아까처럼 거대한 지도의 일부 같지는 않았고 내가 확실히 보았던 것-보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또다시 사라졌다.


망가진 티비를 더듬거리다 잠깐 고쳤는데 다시 꺼지고 나서 어떻게 했었는지 그 방법을 찾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예스터데이를 다시 들어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그 날, 그 시간, 그 순간, 오래된 라디오, 길가에 멍하니 서 있던 소 몇 마리, 내 주머니 속의 초코바, 솜사탕을 줄줄이 꿰어놓은 꼬치 같던 구름들, 나른하게 올라오는 호박빛 와인의 뒷맛. 그 모든 것들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결과였던 것이다. 다시는 재현할 수 없는 그 수많은 태엽과 톱니의 정렬.


이 기록만이 그것이 없던 일이 아니라는 유일한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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