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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 Jul 07. 2020

내가 조지아에 있었을 때 -22.


나는 산인지 바다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언제나, 망설임 없이 바다를 선택해왔다.


그러나 카즈벡의 앞에서 내가 그동안 바다를 골랐던 것은 땅보다 물이 더 좋다거나 하는 식으로 바다만의 특성을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 - 그저 지금까지 바다 외에 충분히 거대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카즈벡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내 안에서 솟아나고 벅차오르고 숨이 막히고 밀려오고 손끝이 짜릿짜릿한 감각이 끝없이 펼쳐진 검푸른 바다를 볼 때 느끼는 치명적인 황홀감과 거의 같았기 때문이다.



"여름에 바다로 가자"고 노래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는 것, 하얗게 빛나는 햇살과 터키색으로 반짝이는 수면, 건강한 웃음소리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갈색 몸통들, 바비큐 냄새, 맥주 거품이 스러지는 소리, 단지 다들 옷을 덜 입고 돌아다닌다는 이유만으로 평소보다 대범하고 관능적인 분위기, 사방에 넘치는 낙천적인 활기 - 그 모든 것들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굳이 말하자면 바다라고 할 수 없다. 해변이지. 바다의 옆, 바다의 가장자리. 바다의 가장 얕은 부분. 가장 밝고, 안전하고... 바다가 아닌 부분.


바다는 넓이도 깊이도 가늠할 수 없는 검푸름이다. 그쪽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덜컥 겁이 날 때, 내가 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 끝없는 광활함 속으로 던져지는 것이 아닌지, 아니. 오히려 내가 매혹되어 갑자기 저 영원 속으로 몸을 던지는 미친 짓을 하지는 않을는지 불안해지는 것 - 수평적인 고소공포증과 같은 것, 즉 자연과 나 자신에 대한 공포와 불신, 그것이 바다의 본질이다.

필연적으로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크기.



그리고 그것이 육지에도 있음을, 나는 이번에야 알게 된 것이다.


큰 물과 큰 산은 기본적으로 죽음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같다. 나는 산을 보며 바다를 생각했고 바다를 떠올리며 죽음을 연상했다. (그렇다. 내 취향은 반자동적으로 언제나 자기 파멸을 향한다.)


나는 며칠 동안 시간을 들여 카즈벡을 마주 보고 그 거대한 죽음의 압박을 들이마셨다. 그것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바다가 퍼먹이는 물을 그렇게 곧이곧대로 마셨다간 죽겠지만, 다행히 나는 육지 생물이라 아무리 위협적이라고 한들 공기로는 죽지 않았다. 그저 내 안의 내장이, 약간의 경련을 일으키며 가볍게 전율하는 정도였다.


큰 물은 검고 큰 산은 희다. 바다를 볼 때 느끼는 공포가 중력과 무게에 기인한다면 산이 주는 두려움은 희박함이다. 거기에는 공기가, 생명이, 많은 것이 없고 위로 갈수록 점차 사라져 가는 가운데 나 자신도 그렇게 증발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가라앉는 것과 떠오르는 것.



그러나 거대한 규모가 주는 인상이 언제나 두렵고 압도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거기에는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하는 은밀한 쾌감 같은 것이 있다.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나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기피하는 생명체로써의 본능을 이겨내면, 그 뒤에는 뭐라고 할까. 중력을 뚫고 올라간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듯, 가장 험준한 산 너머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듯이 육체적 물리적, 공간적, 현실적 제약에서 벗어나 모든 관념과 사고와 감상이 편평하고 숨김없이 드러난다.


나는 내 눈 앞에 있는 것이 조지아에서 세 번째로 큰 산이라든가 스테판츠민다로 오려면 트빌리시에서 3시간이 걸린다든가 내 운동화 밑창이 젖었고 이제 호텔 아래층으로 내려가 치킨 수프를 먹어가야겠다는 사실에서 벗어나, 아니 '풀려나' 비현실적으로 푸르고 멀리 있는 평면과 갈색, 회색, 흰색으로 뒤섞인 거대한 덩어리를 시선으로 훑으며 아주 크고, 아주 넓은 개념들에 대해, 저 밑에서는 살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생존을 방해하지만 사실은 삶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배 갑판 위에서 퍼덕퍼덕 몸통을 힘없이 젖혀대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은 영원에 풀어놓아야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번 물을 만나 떠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라도.


내가 지금껏 집이요 세계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배 갑판이고 내가 원래 왔었던 것이 그 너머의, 시작도 끝도 현재도 알 수 없는 저 미지의 바다라면?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려는 생존 본능이 내가 떠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지만 사실 모든 것의 본질은 위험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내 생각의 파편들이 하얗게 흩어져 산 위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산은 거꾸로 뒤집힌 해구처럼 보였다.

나는 뒤를 돌아 길 없는 언덕을 내려오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는 기어코 물을 만나

물고기처럼 떠나야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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