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평소 잠이 많은 편이 아닙니다. 결혼하고 저보다 먼저 잠든 아내를 본 것은 몇 번 되지 않습니다. 대체로 12시 전후로 잠이 드는 저와 달리 새벽까지 깨어있다가도 저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곤 했습니다.
두둥.
그러던 아내가 8개월째 모유 수유를 하고 수면에 어려움을 겪는 딸을 키우며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모유 수유는 엄마가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그 번거로움과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수면 리듬이 깨진 딸은 새벽 1시부터 매시간별로 모유를 먹고자 울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에 이사를 하며 환경이 바뀐 것도 한몫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말했습니다.
수면 패턴을 다시 잡아야겠어. 당신이 도와줘야 하는데 아무리 울어도 말리면 안 되니깐 조금만 참아.
아내는 이전에 딸의 수면 패턴을 한 번 잡아놨습니다. 그런데 감기와 이사를 지나는 동안 와르르 무너졌고 딸은 1시간에 한 번 꼴로 깨어나 모유를 달라고 우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저는 당연히 '응, 알겠어!'라고 답하고 밤이 되었습니다. 밤 11시경 마지막 수유를 마치고 딸은 잠이 들었고 저희 둘 다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 1시, 새벽 2시 딸이 깨어났습니다. 저는 기억이 없는데 깨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벽 3시에 또 깨어났습니다. 그때 저도 같이 깼습니다. 울음의 강도가 남달랐기 때문에. 아니면, 아내가 저를 향해 레이저를 발사하고 있어서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느낀 것은 아닌지. 어찌 되었든 저도 일단 눈은 떴습니다.
사실 눈을 떴다고 해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물 한 잔 마실래? 아니면, 뭐 다른 거라도?
새벽 3시, 울고 있는 딸을 안고 있는 아내에게 정말 근본 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아내는 부드럽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부드럽게 답했다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장장 1시간을 울었는데 정말, 이러다 윗집이나 아랫집에서 관리사무소로 전화를 하지 않을지 걱정될 정도였습니다. 그 와중에 아내는 끝내 모유를 주지 않고 타이르듯 인내심을 가지고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괜찮아, 새벽에 계속 먹으면 속이 불편해서 깨는 거야. 엄마, 아빠가 여기 있으니깐 걱정 말고 푹 자.
새벽 3시 30분이 지나는 즈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 집 두 여자 모두 대단하구나..'
모성애가 철철 넘치는 시기에 우는 딸을 지켜보며 모유를 주지 않고 인내하는 엄마. 완전히 본능에 충실한 상태에서 끝없이 자신의 욕구를 표출하는 딸이 평행성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둘이 새벽에 전쟁을 치르고 있는 동안 저는 어렴풋이 깨었으나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에서 그 상황을 앉아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두 발 뻗고 잘 수는 없고 그렇다고 깨어있어도 딱히 어떤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제가 아내 눈치를 보다 앉은 상태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앉은 상태로 팔을 기대며 다시 잠의 세계로 가고 있었습니다. 전혀 잠들지 않은 척하며. 아내는 편하게 잠을 자라고 말했는데 저는 괜찮다며 그렇게 앉아서 졸고 있었습니다.
새벽 4시, 딸은 울음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아기띠를 내려놓고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한 상태에서 누웠고 뻗었습니다. 물론 저도 두 발 뻗고 푹 잤습니다.
몇 차례 패턴을 잡고자 애를 쓰고 이제는 11시에 잠이 들어 5시에 깹니다. 5시에 일어나는 이유는 배고픔입니다. 배고파서 일어나서 수유를 하고는 다시 잠이 듭니다. 요즘은 새벽에 깨도 크게 울지 않고 안아주면 다시 잠이 듭니다. 어차피 모유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영리한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