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글 # 19
당신 곁에 누가 있습니까?
가족과 친구처럼 개인적인 유대관계를 나누는 사람을 제외하면 대다수는 함께 일하는 동료와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직장 생활이 고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보기 싫은 얼굴을 매일 봐야 하고 보는 것만으로 고역인데 아무렇지 않게 웃기까지 해야 하고 때론 밥도 먹고 술도 마셔야 합니다. 뭐, 그게 쉽다면 쉬울 수 있고 반대로 누군가에는 그 무엇보다 싫은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영역, 어느 층위에서 일하든 폭넓게 보면 동일한 조직에서 일하는 것은 상하를 떠나 동종 업계에 몸담고 있는 동료입니다.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이해하고 보완하는 넉넉한 마음을 나누는 이상적인 관계(?)는 꽤나 현실에서 만들어가기 힘듭니다. 인간은 대체로 단점부터 파악하고 인류가 진화한 방법을 따라 경계를 풀기까지 탐색하는데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합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좋든 싫든 내 옆에 앉아있는 한 인간은 넓은 바다를 출항한 배에 동승한 동료라는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진실에 가깝습니다. 정착지에 안전하게 도착하거나, 중간에 누군가 뛰어내려 헤어지는 시간까지 함께 먹고 일하고 살아갑니다. 때론 뒤에서 욕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 겹겹이 쌓이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을 느끼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복잡한 다차원적인 방정식을 풀어내며 허우적대기도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약 10여 년간 일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헤어졌습니다. 여전히 만남과 헤어짐은 익숙해지지 않고 생경하게 다가옵니다. 신용복 선생님은 "인간관계가 예술이다."라고 말했는데 곱씹어보면 이 말은 참으로 멋진 말입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기쁨을 누리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나 언제든 생각나며 공감이 되니 말입니다.
예전 동료 B는 제가 닮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B는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자기 의견이 명확했고 겪어보니 꽤 고집도 있었는데 물러날 때와 나설 때를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이는 한 살 많은 형이었는데 언제나 저를 존대하며 존중했는데 그것이 참 고마웠습니다.
B는 차분한 사람입니다.
B는 한마디로 차분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퇴사를 결정하고 이사기를 가기 전까지 집 문제로 며칠을 신세 진 적이 있었습니다. B는 공유 하우스에서 지냈는데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몇 번이고 불평에 가득 차서 말했습니다.
나 : 아니, 뭐하러 여기서 지내세요? 원룸에서 편하게 지내시면 되지. 옮기세요~
B : 그럴 생각이에요. (^^)
- 다음 날 -
나 : 아니, 뭐하러 여기서 지내세요? 원룸에서 편하게 지내시면 되지. 옮기세요~
B : 그럴 생각이에요. (^^)
몇 번이고 말했지만 몇 번이고 똑같은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직을 하고 한참을 잊고 지냈는데 문득 B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걸었던 이유는 저는 한 번도 B에게 왜 공유 하우스에서 살기로 결정했는지 물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B가 왜 공유 하우스에 지내기로 결정했는지. 그것에 대해서 묻지는 않고 다짜고짜 얻어 지내는 주제에 옮기라고 난리법석인 저에게 그저 웃으며 나중에 옮기겠다고만 말했던 표정이 기억났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B는 참 좋은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했습니다.
B는 퇴사하고 도서관에서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분야를 공부하며 지낸다고 했습니다.(그것도 꽤 B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꼭 한 번 보자는 이야기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짧은 안부전화였고 별 이야기 안 했지만 B는 전화 줘서 고맙다는 말을 빼먹지 않았습니다.
사회적경제라는 생소한 영역에서 일하며 스스로 지향하는 가치와 나의 업무 역량 사이 그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을 때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함께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배울 수 있는 선배가 있었고 능력이 출중함에도 겸손한 동료가 있는 직장에서 일하면서 그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일하는 업계라면 꽤 괜찮을 것이다.
한 사람이 어떤 영역에서 자리 잡고 스스로 뿌리내리게 하는 원동력은 내 곁에 있는 타인입니다. 나라는 존재도 결국 내 곁에 있는 존재와 상호작용하고 그 결과가 내면과 외면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더라도 내 곁에 비빌 언덕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외롭습니다.
서로에게 좋은 동료가 된다는 것은 결국 나라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과정입니다. 선의를 베푸는 근본적인 이유는 선의가 돌고 돌아 나를 풍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선한 행위가 가져오는 긍정적 나비 효과는 삶의 곳곳에 숨어있는 들꽃과 같습니다. 자세히 살펴봐야 눈에 들어오는 들꽃처럼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짧은 인연도 어쩌면 선물이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지금, 봄이 오고 있습니다.
길가에 들꽃은 어떤지 오늘 살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