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글 #18
어떻게 직장을 벗어나 자유를 찾을까?
우리는 퇴사가 트렌드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직장을 벗어나 어떻게 자유를 찾을까를 고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질문입니다. 통제와 관리의 대상에서 벗어나 신체적 자유를 누리고 동시에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는 상상은 그것만으로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애를 통틀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큰 선물은 '자유'입니다. 그 자유를 찾기 위해서 퇴사를 고민하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실행한다는 것은 실로 큰 모험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온몸으로 겪어낼 각오를 하고 내딛는 첫 발이 어찌 가벼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신체적, 경제적 자유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고민하는 퇴사라면 그만큼 회사에서 인정받고 최선을 다해 성과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직장을 가볍게 보지 않아야 합니다. x 같은 회사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엉덩이를 들썩들썩거려봐야 별 의미 없다는 것입니다. 당장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찾아보건 창업을 하건 그 무엇을 도전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지금 여기서 내가 맡은 일을 최소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성공 기준을 갖고 그것을 달성하거나 달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유'를 향한 첫 발걸음입니다.
과거에 참을 수 없이 답답했던 한 목사님의 설교는 이른바 이런 것이었습니다.
"힘드십니까? 어려우십니까? 절망적인 상황에서 출구가 없으십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오직 주님만이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더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저는 속으로 '오 마이갓!'을 수십 번씩 외쳤습니다. 당장 내일 먹을 빵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만이 길이라고 목소리 높여 설교해봐야 그 메시지가 전달될 리 만무합니다. 뇌는 신체적 위해를 제외한 외부 자극보다 내부의 오장육부가 보내는 배고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설교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혼자 생각합니다.
"지금 예배드리는 동안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하시고 삶의 현장에서 더 치열하게 살아내십시오. 9시 출근이면 8시까지 출근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시고 생활비가 부족하다면 잠을 줄여서라도 투잡을 뛰어보십시오. 혹은 꾸준히 투자 공부를 해서 돈이 돈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만들어보십시오. 다만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지 마시고 조금 손해 보는 느낌이 들더라고 정직하게 살아내십시오. 얻은 재물이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외에도 남는 것이 있다면 주변을 돌아보고 나눠보십시오. 그렇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답게 살아보는 겁니다. 혼자 잘 먹고 잘 사려고 하지 말고."
'퇴사를 통해 자유를 찾으세요.', '자유를 향한 여정을 떠나세요.'와 같은 문구는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대안이 뒤따르지 않는 문장을 마주하면 범인으로 사는 저는 갈 길을 찾지 못합니다. 달콤한 퇴사 뒤에 뒤따르는 냉엄한 현실은 누가 감당합니까? 오로지 저의 몫이겠지요.
퇴사를 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퇴사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단 1%도 회사를 떠나지 않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만들어야 합니다. 온전히 자신이 이룩한 성공의 경험을 쌓아야 하고 부족함은 채워가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자기 강점을 내세우며 당당하게 일해야 합니다.
후임 직원 1명만 생겨도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일하는 키보드 소리와 딴짓하는 키보드 소리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눈빛만 봐도 일하는지 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원래 그런 겁니다. 나만 빼고 다 알고 있습니다. 어른이 되며 얻은 하나의 규칙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기'입니다. 그것이 서로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니깐.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모든 것을 확인하고 사는 것은 그것 자체가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어쨌든 직장 생활은 끊임없이 서로 지켜보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어느 시점에는 인간적 신뢰, 혹은 유대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직장 역시 사람 사는 곳이니깐.
직장을 가볍게 여기고 퇴사하는 분들 중에 성공적인 스토리를 써가시는 사람을 본 적이 드뭅니다.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 퇴사를 하고도 성공 확률이 높습니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 자신을 지키는 '루틴'을 가지고 있고 자기 강점을 활용할 줄 알면 실패는 하더라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자기 약점은 스스로 인지하고 채워가려고 부단히 노력하면 어딜 가든 밥벌이하고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까짓 회사 그만두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출근하는데 무슨 성과를 창출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습니까? 시작이 반이라는데 50%를 까먹고 99%로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나중에 잘 부탁해요."
전 직장 동료 P과장은 입만 열면 했던 말이 있습니다. "나야 뭐, 여기 그만두고 00으로 가면 되니깐. 나중에라도 잘 부탁해요."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P과장은 진짜 그렇게 회사를 떠났습니다. 00으로 가서 잘 살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혹시 00으로 가서도 "나야 뭐, 여기 그만두고 XX으로 가면 되니깐. 나중에 잘 부탁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길 바랍니다. 그렇게 나중만 부탁하고 챙기면 하면 지금은 누구에게 무엇을 부탁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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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국어사전을 살펴보니 직장(職場)이라는 명사는 (1) 사람들이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곳, (2)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는 수단으로써의 직업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직장은 나의 직업이자 동시에 생계를 꾸려가는 공간입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업계의 한 부분이자 나를 이루는 '일'의 전부가 되는 곳입니다. 나와 내가 몸담고 있는 업계를 존중하지 않고 '자유'를 얻는 것이 행복으로 이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직장을 가볍게 여기지 않아야 진정 직장을 떠나 살 수 있을 겁니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직장이 나를 책임진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직장은 개인을 책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크게 관심도 없습니다. 직장에 충성을 하는 것과 내 일을 오롯이 해내는 것은 전혀 다른 층위의 문제입니다. 내 일을 해내는 공간적 요소인 직장, 그곳을 가볍게 여기지 않되 동시에 직장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님을 매번 깨달아야 합니다.
드라마 '미생'에서 나오는 한 대사가 글을 쓰는 동안 머리에서 맴돌았습니다. 주저리주저리 쓴 글이 한 문장을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바둑으로 빛을 보지 못한 장그래 사원의 대사입니다.
지금 하는 일이 세상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은 온전한 나의 세상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세상을 가볍게 여기고 더 큰 세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물론 그래봤자 직장이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속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애는 써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직장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