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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를 이해해?'

에세이 #16 몰랐다. 정말 몰랐다. 아내를.

by 토파즈
꽤 긴 연애를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한 사람과 어떻게 그렇게 길게 연애를 할 수 있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제 생각은


'긴 시간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는데..'


진심으로 긴 시간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말로 내뱉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그 말을 무심코 내뱉고 들은 피드백에 당황했습니다. 남자들은 대체로 거짓말을 한다거나 재수 없다고 생각했고, 여자들은 현실과 달리 꽤 로맨틱하게 생각했습니다. 그저 시간이 흐른 것뿐인데.


아킬라스건


질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냈습니다. 각자의 '아킬라스건', 예를 들어, 가정사를 통한 아픔이나 뜬금없이 나오는 자격지심과 같은 감정을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하면 그야말로 행복한 신혼을 보내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진짜 나를 이해해?"


저는 곁에 오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내를 알고 있다고 시건방을 떨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 하나도 1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보는 기준,

좋아하는 여행 스타일,

돈을 쓰는 우선순위,

좋아하는 집밥,

선호하는 대화 형태(1:1 혹은 1: 다수),

상황에 따라 좋아하는 음식 순위,

옷 입을 때 고려하는 사항,

인생의 의미와 가치,

가족에 대한 이해,

존중과 사랑에 대한 개념 등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의 결론은


"몰랐다. 정말 몰랐다. 너를."

모르는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 아내를 보고 있었던 것일까? 제가 떠들었던 말이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결혼 4년이 지나서 딸이 태어났습니다. 딸이 태어나고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입니다. '나는 그렇다면 좋은 사람인가?'라고 묻고는 No라고 스스로 답했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사람은 나 혼자 잘났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서 인정해주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관계의 깊이와 넓이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관계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필수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여자 사람, 아내를 다시 봅니다.


진짜 몰랐던 아내를 요즘 새롭게 다시 봅니다. 진짜 어떤 사람인지. 어떤 시간과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나의 어떤 행동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지.


아! 무엇보다 결혼을 하고 나니 말보다 행동이 중요합니다. 좋은 대화, 좋은 여행, 좋은 시간을 보내도 우리에게는 육아와 집안일이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시간을 분배하고 함께하는 것이 좋은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입이 아니라 발로 하는 것을 더욱 절실히 느끼는 크리스마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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