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 호 (움베르토 에코)
신문도 거짓말을 하고 역사학자들도 거짓말을 해, 오늘날에는 텔레비전도 거짓말을 해. 1년 전 걸프 전쟁 때, 뉴스에서 가마우지의 영상을 보여 주었는데 기억나나?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퇴각할 때, 미군의 전진을 지연시키기 위해 많은 유정과 원유 저장 시설을 파괴해서 엄청난 양의 원유가 페르시아만에 유출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원유에 젖은 채 죽어 가는 가마우지들의 영상을 내보냈지. 그런데 나중에 확인된 바에 따르면, 전쟁이 벌어지던 그 계절에는 페르시아만에서 가마우지를 찾아볼 수 없었고, 뉴스에서 보여 준 가마우지들은 걸프 전쟁이 아니라 8년 전 이란, 이라크 전쟁 때, 찍힌 영상이란 거야.
1945년 4월 29일. 밀라노의 로레토 광장에 있는 한 정육점 건물에는 몇 구의 시체가 걸렸다. 시체는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돌팔매질 때문에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독일군으로 위장하고 스위스로의 탈출을 시도하던 무솔리니 일당이 파르티잔에게 체포되어 28일 사살되었고, 그 시체가 29일 로레토 광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무솔리니의 시신 옆에는 그와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스물아홉 살 연하의 아름다운 여인 클라라 페타치의 참혹한 시체가 나란히 걸려있었다.
일본 작가 이사카 코타르의 소설 ‘마왕’ 속에는 무솔리니의 마지막 애인 클라라의 ‘뒤집힌 치마’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소설 속에서 클라라의 시체는 거꾸로 매달렸고 치마는 뒤집혀졌다. 그리고 군중들은 이를 관능적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시신에 다가갔고 자신의 허리띠를 풀러 클라라의 치마를 묶어 주었다. 이사카 코타르에 의해서 회자되기 시작한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허구인지는 불분명하다.
애초에 파르티잔들이 그녀의 다리와 치마를 한데 묶어서 달아놓았을 수도 있다. 사진을 본 이사카 코타르가 유난히 붙어있는 클라라의 다리를 보고 상상해 놓은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의 소설 속 내용처럼 정말로 누군가가 자신의 허리띠로 묶어 준 것일 수도 있다. 언론이란 이런 ‘클라라의 뒤집힌 치마’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치마 속을 어떤 방식으로 노출시켜야 대중이 반응할 것인가? 또는 어떤 식으로 가려야 독자가 공감할 것인가?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 ‘제0호’는 무솔리니의 이야기를 끄집어내 각색하고, 왜곡하고, 편집하여 재구성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1992년 4월 6일 월요일이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그보다 2개월 앞선 1992년 2월에 있었던 이탈리아 역사상 전무후무한 정치 추문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바로 그 유명한 ‘마니 풀리테(mani pulite)’ 사건이다.
1992년 2월 17일 디 피에트로(Antonio Di Pietro) 검사가 주도하는 이탈리아 검찰이 사회당 경리국장의 집을 수색해 700만 리라의 현금을 압수했다. 사회당에 정치 자금을 대던 밀라노의 한 청소 대행업체가 사법당국에 사회당을 고소하면서 불거진 이 사건은 1994년에 이르기까지 천명에 달하는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의 전 총리, 베티노 크락시가 튀니지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숨을 거뒀다. 또 다른 전 총리 줄리오 안드레오티도 비리 혐의가 드러났는가 하면, 현 총리 줄리아노 아마토 역시도 비리 혐의로 사임했다.
이탈리아어로 '깨끗한 손'을 뜻하는 ‘마니 풀리테’는 수많은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비리를 밝혀내면서 이탈리아 기독교민주당과 사회당을 몰락시키는 단서를 제공했고, 공산당을 좌파성향의 민주당으로 재편시키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언론 재벌’이자 비리의 배후였던 실비오 베를루스코가 자신이 뒷돈을 댔던 기득권 세력이 와해되는 와중에도 새로운 기회를 잡아 ‘마니 풀리테’를 좌절시켰다.
결국 그는 ‘포르차 이탈리아’라는 우파 정당을 만들어 직접 정계에 진출했고, 10년 동안 세 차례나 총리 자리를 차지하는 등 90년대 이후 이탈리아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언론 권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제0’ 호‘는 ’ 마니 풀리테‘를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대적 배경은 이 소설 속 황색 언론이라는 주제 속에 녹아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콜론나는 실패한 작가다. 그는 어느 날 시메이란 이름의 신문사 주필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끝내 창간되지 않을 신문 ‘제0호’의 제작 과정에서 벌어지는 역사를 기록하여 책으로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신문이 끝내 창간되지 않고 일자리를 잃게 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폭로를 담은 책을 한 권 마련해 두려 한 것이었다.
제안을 받아들인 콜론나는 주필과의 비밀을 간직한 채, ‘도마니(내일)’가 고용한 여섯 명의 기자들과 대면한다. 그는 기사에 쓰일 표현을 검토하는 데스크의 신분으로 위장하고 창간 예비 판인 ‘제0호’ 제작을 위해 일한다. 한편, 현장에 자금을 대는 이는 ‘콤멘다토르 비메르카테’로 알려진 세력가이다. 그는 큰 신문을 이끄는 엘리트의 세계를 장악함으로써 정, 재계의 거물들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입증하려는 목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는 이탈리아의 ‘마니 풀리테’를 무력화시킨 실제 인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연상시킨다.
소설 속, ‘도마니’는 한마디로 말해, 세력 확장을 위한 협박용 언론이다. 비메르카테는 창간 예비 판을 통해 사회의 거물들이 궁지로 몰 만한 정보를 취재하고 이를 흘려 당사자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고자 한 것이다. 연이은 편집 회의에서 6명의 기자, 그리고 콜론나는 진실보다 특종에 갈증을 느끼는 대중들을 위한 자극적인 기사 작성법을 논의한다. 제목만 바꿔 단 재탕의 뉴스거리 등 ‘제0호’가 준비한 기획물들은 엉터리 저널리즘의 표본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었다.
“신문도 거짓말을 하고 역사학자들도 거짓말을 해, 오늘날에는 텔레비전도 거짓말을 해. 1년 전 걸프 전쟁 때, 뉴스에서 가마우지의 영상을 보여 주었는데 기억나나?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퇴각할 때, 미군의 전진을 지연시키기 위해 많은 유정과 원유 저장 시설을 파괴해서 엄청난 양의 원유가 페르시아만에 유출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원유에 젖은 채 죽어 가는 가마우지들의 영상을 내보냈지. 그런데 나중에 확인된 바에 따르면, 전쟁이 벌어지던 그 계절에는 페르시아만에서 가마우지를 찾아볼 수 없었고, 뉴스에서 보여 준 가마우지들은 걸프 전쟁이 아니라 8년 전 이란, 이라크 전쟁 때, 찍힌 영상이란 거야.”
콜론나와 기자 브라가도초는 술집에 앉아 위와 같은 대화를 나눈다. 이 대화 속에서 어차피 세상은 이미 가짜뉴스로 오염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음모는 미디어의 뒤에 숨어있다는 허탈감이 엿보인다. 6명의 기자 중 홍일점인 마이아와 우연히 사랑에 빠진 주인공은 가끔 이런 언론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브라가도초가 등에 칼을 맞고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는 자신이 세운 가설, 즉 무솔리니가 파르티잔에 살해당하지 않았고, 로마 교황청의 도움으로 아르헨티나에 거주하고 있으며,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가설에 따라 취재를 해왔다. 그리고 ‘도마니’에 합류한 후, 무솔리니의 흔적을 추적하며 교황, 정치가, 테러리스트, 은행, 마피아, CIA, 프리메이슨까지 얽힌 폭로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브라가도초는 간간이 취재의 진행 상황을 콜론나와 공유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확인할 것이 있다고 사무실을 나갔고, 거리에서 살해당했다. 며칠 후, 신문에는 브리가도초가 살해당한 기사가 뜬다. 기사에는 브리가도초는 매춘업계를 취재하다 어떤 포주로부터 공격을 받고 살해당했다고 쓰여 있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경험하고 지켜본 콜론니는 진실과 거짓이 구분되지 않는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삶은 견딜 만하다.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면 된다. 스칼렛 오하라가 말한 대로 남의 말을 인용하는 버릇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나도 알지만, 나는 1인칭으로 말하는 것을 포기했고, 이제 남들이 말하도록 그냥 버려두고자 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저널리스트로서 50년 가까운 경험을 쌓았던 움베르토 에코는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그려보고자 이 소설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가짜를 진짜처럼 만드는 많은 기법이 소개되어 있다. 언어의 선정성, 내용의 배치, 퀄리셰의 적절한 이용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소설 속, ‘제0호’ 기자들 사이에 오고 간 다음 대화는 미디어의 본능(?)을 잘 요약해 준다.
“맞아요. 신문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신문들은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평판을 따라가는 건가요, 아니면 세평을 만들어 내는 건가요?”
“두 가지를 다 합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말해 주면 자기들의 생각이 어떤 쪽으로 흐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죠.”
가짜뉴스와 오보는 다른 것인가?
1989년 11월 9일 오후 6시를 넘어 동베를린 정부가 여행 자유화 원칙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회견장에서 당시 동독 여당인 사회주의 통일당의 샤보프스키는 이탈리아 통신사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자유화는 언제부터인가?”. 이에 샤보프스키는 “지금 당장부터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동독 자유화 분위기가 무르익던 상황에서 생중계된 이 기자회견을 본 동베를린 시민 수천 명은 장벽 앞으로 몰려들었고, 결국 장벽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샤보프스키의 명백한 오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오보만으로 독일 장벽이 무너졌을까? 2014년 서울안보대회 참석차 방한한 쉔봄 전 차관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샤보프스키 말이 와전된 부분도 있지만 그런 와전을 불러일으킨 데는 동독 주민의 역할이 컸다. 동독 주민은 예전부터 통일을 원하고 있었다. 서독과 동독은 하나의 민족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그 일이 있기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오보가 사회적 영향력으로 작동할 수 있는 기저에는 그 오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과 경향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오보’는 ‘가짜뉴스’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황용석 건국대 교수는 ‘미디어 오늘’에 기고한 칼럼에서 “가짜뉴스는 ‘실제 뉴스의 형식을 갖춘, 정교하게 공표된 일종의 사기물 또는 선전물, 허위 정보’를 말한다. …(중략)… 가짜뉴스는 오보나 왜곡된 뉴스와 다르다. 그래서 그 문제점을 내용이 거짓이라서가 아니라 언론이 아닌데 언론인 것처럼 포장하고 그래서 진짜 뉴스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일 수 있기 때문에 우려스러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움베르토 에코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확실히 ‘오보’가 아닌 ‘가짜뉴스’였다. 늘 그렇듯이 에코의 책은 결론이 모호하다. 그것은 그가 결론을 본문 곳곳에 꼼꼼하게 숨겨놓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거창한 결론 대신 에코는 세세한 예를 들어 가짜뉴스를 설명해 냈다.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저널리즘을 상상한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이 소설을 발표한 뒤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는 40년 넘게 저널리즘의 한계와 가능성에 관해 계속 생각하고 토론해 왔다", "소설에서 들려주는 것은 저널리즘 정보의 한계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일반적인 저널리스트들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 나는 이 세계의 기괴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가장 나쁜 경우를 묘사했다"라고 설명했다.
또 음모론에 관해 "가짜는 나를 매혹한다. 우리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도 기호 행위의 특징이고, 거짓을 말할 수 있다는 것도 기호 행위의 특징이다"라며 거짓에 이끌리는 인간의 속성을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음모론은 우리를 책임감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음모는 사회의 편집증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또 '비판적인 저널리즘은 음모론을 해체하는 데 기여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그렇다. 저널리즘은 가짜와 조작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이 소설 속 내용이 정말로 최악의 경우를 묘사한 것일까? 오늘날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이야기일까?
우리는 왜 가짜뉴스에 끌리는가?
하버드 대학의 캐스 선스타인 교수는 ‘루머(On Rumours)’,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Going to Extremes)’ 등의 저서에서 이를 ‘사회적 폭포 효과’로 설명했다. 사회적 폭포 현상은 ‘정보의 폭포 현상’과 ‘동조화 폭포 현상’으로 구성되는데, 앞선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이 ‘정보의 폭포 현상’이라면, 자기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이 어떤 루머를 믿으면 자기도 그 루머를 믿는 경향은 ‘동조화 폭포 현상’이라고 말했다.
한편 선스타인 교수는 이러한 폭포 현상을 더욱 강화하는 것은 ‘집단 극단화’라고 이야기했는데, 여기서 ‘집단 극단화’라 함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정보 교류를 통해 더욱 극단적인 견해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선스타인 교수에 따르면 이런 방식으로 집단 동질성을 강화하는 데 가짜뉴스는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심리학적으로 이런 가짜뉴스의 확산에는 인간이 가진 ‘확증 편향’이 큰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는데, 확증 편향은 선택 편향의 한 종류로서 자신의 선입견에 확신을 더해주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탐색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믿는 것과 반대되는 정보들에 대해서는 굳이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받아들이려고 하지도 않는 경향을 말한다. 결국, 사회적으로 가짜뉴스는 ‘믿음의 확증’, ‘그룹 정체성의 강화’, ‘결속력’ 등에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짜뉴스에 대한 선스타인 교수의 주장에도 하나의 모순이 발견된다. 그것은 ‘확증 편향’과 ‘정보 폭포’ 간의 충돌이다. ‘확증 편향’이란 받아들이는 사람의 주체성이 강조된 원인이라면 ‘정보 폭포’는 배포하는 사람의 의도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 어디에 더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는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결국 가짜뉴스의 근저에는 대중들의 숨길 수 없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최근 영국의 BBC 방송은 사람들이 가짜뉴스를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 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뉴스 제공사인가?
• 내가 생각한 그 뉴스 소스인가 아니면 비슷한 곳인가?
• 일어났다고 하는 곳이 지도상에서 정확히 알 수 있는 곳인가?
• 다른 곳에서도 보도된 적이 있는 이야기인가?
• 이러한 주장에 대한 하나 이상의 증거가 있는가?
• 이 이야기가 아니고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가?
한편, 2018년 서울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 미래 포럼에서 `미디어 구하기-지속 가능한 미디어 모델을 찾아'라는 주제로 특강을 한 쥘리아 카제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경제학 교수는 “가짜뉴스가 성행하는 세상에서,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선 언론의 민주화가 선행돼야 한다.”하고 말했다. 더욱 강화된 민주주의만이 가짜뉴스에 대한 확실한 대응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뉴스 구독자 수가 낮은 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많은 표를 얻은 점을 예로 들며 “전통적 뉴스매체가 부재한 디지털 세계에서는 투표율이 하락하고 극단적 성향의 정당이 득세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그는 “뉴스 기사의 4분의 1이 4분 안에 재생산되고, 온라인 콘텐츠의 3분의 2가 오리지널 뉴스를 그대로 복사해 붙인 정보”라는 데이터를 공개하기도 했다.
가짜뉴스 속에는 인간의 욕망이 숨어있다. 특히 가짜뉴스가 매혹적이라는 이야기는 그 욕망이 희망이 되었다는 일종의 암시다. 따라서 BBC 방송국에서 제시한 ‘가짜뉴스 판별법’이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오늘날의 비판적 저널리즘은 말하는 자, 즉 신문사나 방송국에서, 듣는 자, 즉 독자나 시청자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롭게 정의된 비판적 저널리즘은 음모론을 해체하는데 앞서 사회의 바람직한 욕망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스칼렛 오하라의 말처럼 어느 정도는 남의 말을 인용하는 버릇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저널리즘에는 ‘뒤집힌 치마를 가리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들은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며, 미혹하는 가짜를 이겨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허리띠를 풀어 황색 뉴스, 거짓 뉴스를 묶어 버리는 개인적 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