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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인순 Nov 27. 2018

인간의 한계와 생각의 토대

심리학자들이 알려주지 않는 마음의 비밀 (대니얼 리처드슨)

우리의 지각 체계는 세상을 정확하게 인식하게끔 만들어져 있지 않으며, 우리의 기억은 그것을 충실히 기록하지도 못한다. 사건이 벌어질 당시에는 그것을 해석하거나 추측하고, 나중에 다시 윤색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사람들이 기만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이어서도, 자기 권한을 높이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우리는 원래 그렇게 생긴 존재인 것이다.

분리주의자들의 시대와 공간이 있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이 바로 그런 시대, 그런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구스타프 클림트는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고 있었고,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심리학을 뇌과학에서 분리해 내고 있었다. 에릭 켄델은 ‘통찰의 시대’에서 ”이러한 분리를 통해 비록 실험에 토대를 두지 않더라도 한편으로는 신경 체제와 모호한 상관관계에도 기대지 않은 채 정신 과정을 기술할 수 있었다.”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의학에 해부학이 본격적으로 적용되던 시절, 프로이트가 인간 정신을 해석해 내는 데 있어서 의학적 방법보다 심리학적 방법을 채택한 것은 당시 의학적 방법으로는 인간 정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는 통찰의 시대이다. 정신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심리학과 뇌공학, 그리고 생물학이 동업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대니얼 리처드슨의 ‘심리학자들이 알려주지 않는 마음의 비밀’은 어느 정도 이러한 통합적 시도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여행 안내서에 소개된 장소를 모두 방문하는 부지런한 관광객처럼 심리학의 모든 분야를 차례 대로로 돌아다니는 “ 방식으로 쓰이지 않았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Man vs. Mind (인간과 생각)’이다. 여기서 ‘Man’이란 인간의 물질적 토대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Mind’는 단순하게 ‘마음’이라는 한 가지 의미가 아니다. 이 단어는 마음 외에도 정신, 인지, 생각, 태도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표현은 인지과학의 측면에서는 동일한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마음, 정신, 인지, 생각, 태도 등이 동일한 의미로 이야기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저자는 프랜시스 크릭이 제기한 다음과 같은 가설을 인용하여 이를 설명한다.      


”당신이 느끼는 기쁨과 슬픔, 기억과 야망, 그리고 개인적인 정체성과 자유 의지는 사실 거대한 신경세포 집단과 그와 관련된 분자들의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신경세포 집단과 그와 관련된 분자들의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가설을 받아들이면서도 저자는 ”이것들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문제”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많은 뇌공학자들의 연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리처드슨이 자신의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은 우리 인지 능력의 불완전성을 설명하기 위해 실시된 수많은 실험이다. 저자는 시각과 언어, 편견과 정체성에 대한 생물학적, 인지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인간의 불완전성을 확정적으로 선언한 다음, 그것에 기초한 심리적 현장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사람들은 보상받는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인지 부조화’라는 복잡한 논리를 통해 자기가 고통받는 것을 감내한다. 지금은 자기 주변 세상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시각 과학은 사실 우리가 주목하는 대상의 가장 협소한 일부분만 인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기억은 과거의 확실한 기록이 아니라 말할 때마다 새로 각색되고 조작되는 이야기다. 공정성과 평등에 대한 믿음을 아무리 성심성의껏 표현해도, 우리 행동을 통해 가장 추악한 고정관념이 드러날 수 있다. “     


리처드슨은 심리테스트가 무용지물이라고 단언한다. 인간의 모든 성향은 일정한 정규 또는 비정규 분포를 따르고 있어서 각각의 성향은 중복되거나 충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저자는 차라리 선호도에 대한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수집한 후, 아무런 심리학 이론이나 분석 체제 없이 단순한 패턴으로 분석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마치 인공 지능을 활용한 심리 상담이 더 효과적이란 말로 들린다.      


리처드슨은 좀 더 과격한 의견도 내놓는다. 바로 심리 상담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한 것이다. 저자는 '설득'이란 단어 그 자체의 의미를 축소시킨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성공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사실을 설득시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설득으로 그것에 걸맞은 태도를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설득과 태도가 실제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태도는 그가 하는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다. 리처드슨이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 번째. 우리는 결코 세상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인지할 수 없다. 저자는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괴테가 자신의 ‘색채론’에서 주장한 인지의 체제를 유용하고 있다. 생물학적 색채를 통해 물리적 색채를 받아들이듯, 인간은 자신의 기준과 선입관, 그리고 편견을 통해 어눌하고 허점투성이의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며, 그것을 진실이라 믿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인지 체제는 근본적으로 시각적 체제와 동일한 오류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다음의 말로 잘 표현된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우리가 주변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외부 세계에 대한 정확한 내적 표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 뇌는 망막에 있는 사각지대의 블랙홀을 채우는 것처럼, 주변 세상에 대한 믿을 만한 지식을 저장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착시라고 하면 대개 길이가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선이라든가, 구불구불해 보이지만 사실 직선으로 이뤄져 있는 것들을 떠올리지만, 사실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가장 큰 착시는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     


두 번째. 우리는 모두 거짓말쟁이며, 근본적으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리처드슨은 힐러리 클린턴의 인터뷰 내용을 끌어들여 이를 설명한다. 2016년 대선 당시 한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클린턴에게 경찰이 암암리에 흑인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는데, 클린턴은 이에 대해 ”암묵적인 편견은 경찰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문제”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이에 대해 ”모든 미국인을 인종차별주의자로 폄훼했다 “고 분노했다.      


그러나 리처드슨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뿌리 깊은 차별성, 즉 인종 차별적 편견이 자리 잡고 있으며, 단지 우리는 그것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 실험 결과를 토대로 설명한다. 따라서 저자는 대선 당시 ”모든 사람은 암묵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 “는 의 힐러리 클린턴의 대답은 진실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 우리 모두 환경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 트럼프와 같은 삶을 살아왔다면 트럼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유용한 미덕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물론 트럼프에게 연민을 느끼라고 간청하는 것은 아니다. (...) 그의 행동을 만들어 낸 복잡한 사회적 힘을 이해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그에게 투표한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 트럼프의 적들은 ‘트럼프는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성차별주의자이기 때문에 그에게 투표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기질적 분석은 트럼프와 지지자들의 심리적 인과 관계를 간과하고 있다. (...) 평생 트럼프로 살아온 것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해 보라. 이것은 여러분도 돈만 좀 더 있으면 트럼프와 닮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증거다.”      


작가,여배우, 정치인, 그리고 점

수년 전, 모 여배우의 모 정치인에 대한 고소는 결국 불기소로 결론지어졌다. 검찰은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서 따져 묻겠다고 밝혔고, 여 배우는 자신의 진정성에 대한 호소를 멈추지 않았으며, 작가는 공격의 방향을 바꾸어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공격에 집중했다. 그리고 작가와 여배우가 그토록 주장하던 ‘신체의 점’은 논점에서 사라졌다.      


이 세명의 인물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확인할 수 있을까? 인간은 진실이나 사실관계의 정확성보다는 의미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어떠한 정황 근거도 자신이 헌신하는 의미에 부합되는 측면에서만 관찰하고 재구성한다. 리처드슨은 하나의 재미있는 예를 드는데 바로 ‘미끼’와 ‘스위치’이다. 이는 ‘신체의 점’에서 ‘댓글 사건’으로 논점을 옮겨간 작가의 심리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물건을 아주 싸게 판다는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러 상점에 가면 품절됐거나 원하는 모델이 없는 경우가 있다. ‘미끼’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때를 놓칠세라 판매원들은 “비슷한 제품이 있지만, 가격이 조금 더 비싸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스위치’다. 결과는 놀랍게도 우리 예상과 달리 사람들은 원하던 상품도 아니고 하물며 가격도 더 비싼 물건을 선뜻 구입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물건 구입뿐 아니라 일, 관계, 연애,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     


이 현실 속 드라마 속 '점'은 미끼이고, '직권남용이나 공직선거법'은 스위치다. 그러나 이러한 미끼와 스위치가 일부 사람들에게만 작동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합리성’이라는 환상 속에서 불합리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심리학자들이 알려주지 않는 마음의 비밀’의 작가 대니얼 리처드슨은 인간은 그렇게 합리적이고 분별력 있는 존재로 진화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는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다른 압력에 반응하며 진화했고, 우리의 뇌는 다른 목적에 의해 형성되었고 말한다.


”사람들은 항상 보람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눈은 세상에 대한 정확한 시야를 제공하고, 기억은 세상을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공정성, 평등, 관용 등을 믿지만, 우리 마음은 선입견과 추정, 편향에 의해 만들어졌다. “      


”설득이 행동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라는 기술적 언어에 대해서도 대니얼 리처드슨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놓는다.     


”우리는 대개 설득이 행동을 바꾸는 첫 번째 단계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면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은 순서가 그 반대라고 말한다. 믿음과 사고방식은 행동의 근본 원인이 아니다. 인지 부조화 현상은 우리의 믿음이 변할 수 있고, 어떤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나중에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트럼프처럼 살아온 모든 사람이 트럼프 같은 사람이 되고, 바이든과 유사한 삶을 살았다고 바이든과 동일한 인격을 가지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의 문제를 들여다볼 때, 상황의 힘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인간의 인지 능력에는 한계가 존재하며,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행동을 ‘선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 필요하다. 우리는 완전할 수 없고, 오류투성이며, 편견에 싸여 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신념에 대해 늘 반성하고 돌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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