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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인순 Aug 22. 2019

결과로써의 팩트와 원인으로써의 팩트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안나 로슬링)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이 일부 우리 도심보다 더 안전하다.’ 시카고의 살인사건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은 ‘미국인’의 수를 비교한 내용을 그가 잘못 기억했거나 아니면 일부러 잘못 표현한 것이다. 2001년에서 2016년 사이 시카고에서는 기록상 7,916명이 살해되었고, 같은 기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384명의 미국인이 죽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의 ‘총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아프가니스탄에 체류한 미국인이 시카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생각하면 전쟁으로 사망한 미국인의 ‘비율’은 시카고의 살인율보다 훨씬 높다. (헥터 맥도널드)

역설적이게도 ‘팩트풀니스’는 ‘오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물론 '오해'를 다룬다고 함은 이해를 다룬다는 말로 바꾸어 쓸 수 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통계학자이자 의사, 그리고 TED 강사인 한스 로슬링이 그의 아들 올라 로슬링과 며느리 안나 로슬링과 함께 쓴 책이다.      


‘로슬링’들은 이 책에서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본능을 자신들의 경험과 사례를 들어 설명하며, 이런 10가지 본능이 대부분 우리의 생각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세상은 감각으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긍정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사실에 근거하여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결론으로 독자들을 설득한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오해의 근원이 되는 10가지 본능은 간극, 부정, 직선, 공포, 크기, 일반화, 운명, 단일 관점, 비난, 다급함 본능이다. 이 중에 어떤 것 (사실 대부분의 것)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한편으로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물론 이런 판단 역시 개개인의 관점과 처한 환경의 차이일 것이다.      


10가지 본능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이 가는 본능은 책의 마지막에 언급한 ‘다급함 본능’이다. 이것이 가장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현대 사회의 다급함이 결국 가짜 뉴스, 오해와 편견, 그리고 잘못된 판단의 뿌리라는 주장이 현실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잘못된 판단의 뿌리를 ‘극적인 세계관’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언론인, 활동가, 정치인도 인간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이들도 극적인 세계관의 피해자일 뿐이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정기적으로 세계관을 점검하고 업데이트해야 하며, 사실에 근거해 생각하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 덜 왜곡된 세계관을 전달하기 위해 언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더 있다. 사건을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면 그 사건의 비중을 과장하지 않을 수 있다. 부정적 뉴스의 왜곡된 영향력을 알고 있는 일부 언론인은 나쁜 뉴스를 찾는 습관을 버리고, 의미 있는 저널리즘을 추구하겠다는 목표 아래 좀 더 건설적인 뉴스를 지향하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나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기 어렵다.”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저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가짜 뉴스가 제공해 주는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은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정치인이나 활동가, 그리고 언론인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대전제가 현실 속에서 이미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로슬링들은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 때문이며, 이를 벗어나는 도구로 ‘팩트풀니스(Factfulness)’, 즉 ‘사실 충실성’을 제안한다. 여기서 팩트풀니스란  팩트(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태도와 관점을 의미한다.      


저자들은 현재 인류가 데이터를 어떻게 읽고 대응할지는 배워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말하며, 이 책을 쓴 의도를 강조한다. 이에 더하여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스티븐 핑커는 책에 대한 단평을 통해 저자들의 의도를 더욱 강하게 부각하고 있다.     


“풍부한 데이터를 통해 우리의 세계관을 교정하고, 우리의 인지 과정이 어떻게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는지를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스티븐 핑커의 서평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 책의 전체적인 논리 전개 방향은 한마디로 ‘진보’이다. 단지 다른 점은 스티븐 핑커의 ‘진보’가 환원론적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 책의 저자들은 상대적으로 다양하고, 유연한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다.      


지난 7월 한국을 방문한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안나 로슬링은 기자 간담회에서 “정확한 팩트와 데이터에 근거한 뉴스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다”라며 “사실에 근거해 세상을 바라봐야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요한 일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 자리에서 그는 ‘가짜 뉴스’도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다소 애매한 논리를 펴기도 했다.     

“가짜 뉴스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이에 대한 논쟁이 있다는 건 오히려 희망적이다. 가짜 뉴스가 나옴으로써 인간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빨리 배우고 수정할 수 있다. 가짜 뉴스가 변화로 가는 다리가 되어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풍부한 사례로 팩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한스 로슬링의 이 주장은 매우 순진한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마치 마약으로 인해 마약의 위험성을 알 수 있기에, 마약도 유용하다는 주장과 같다. 어쩌면 그의 이런 주장은 가짜 뉴스도 거짓말이 아니라는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으로부터 나온 것일 수 있다. 한 마디로 자기모순적이다.     


저자들은 자신들이 ‘세상이 좋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좋다’라고 말함으로써, 스스로를 ‘가능성 옹호 주의자’라고 소개한다. 이 과학적 환상가들은 ‘사실에 기반한 판단과 결정’이 결국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최선을 이루는 가장 현명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에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사실에 기반한 판단과 결정’이라는 부분이다.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사실의 기반’의 사례들과 사례를 바탕으로 하는 주장 간에 일정 부분 모순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예민하게 반응하자면 저자들의 실증적 태도와 논리는 그  일관성이 의심되며, 통계가 팩트를 말해준다는 신념에 가까운 생각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팩트에 근거한 결정만이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에는 거부감까지 든다.     


저자들의 주장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공포 본능’이다. 저자들은 테러나 자연재해, 방사성 물질과 항공기 사고 등에 대한 지나친 공포가 때로는 유용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러한 공포가 우리가 정말로 집중해야 할 문제를 외면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자연재해(총사망자의 0.1%), 항공기 사고(0.001%), 살인(0.7%), 방사성 물질 유출(0%), 테러(0.05%) 같은 끔찍한 사건을 다루었다. 이 중 연간 총사망자의 1%를 넘는 경우는 없지만, 여전히 언론의 집중적 관심을 받는다. 사망률이 아무리 낮더라도 당연히 더 줄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공포 본능이 우리의 관심을 얼마나 왜곡하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려면 공포 본능을 누르고 실제 사망자 수를 따져봐야 한다.”     


이 주장은 그야말로 인과관계가 뒤집힌 주장이다. 발생 확률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인위적인 노력으로 통제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포의 대상이 되는 사고의 발생 빈도가 낮은 것은 그 공포로 인해 강화된 관리 수준과 비용 때문이다. 저자들이 ‘사망자 수’라고 정의한 통계 자료는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저자들은 ‘팩트를 통한 대응’과 ‘대응의 결과로써의 팩트’를 혼돈하고 있다. 팩트는 미래를 결정하기 위한 독립변수가 아니라, 과거의 결과로 나타난 종속 변수라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더 황당한 것은 테러로 인한 사망자 수에 대한 저자들의 주장이다. 테러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난 반면 4단계 국가, 즉 선진국에서는 줄고 있다고 하며, 그 근거로 관련된 통계치, 즉 테러 때문에 사망한 자의 숫자 데이터를 제시한다.     


“지난 20년간 미국 땅에서 테러로 사망한 사람은 3,172명으로, 한 해 평균 159명이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 음주로 사망한 사람은 140만 명으로, 한 해 평균 6만 9,000명에 이른다. 이는  공정한 비교는 아닐 수 있다. (...) 이런 식으로 수치를 아주 낮게 잡아도 미국에서 음주 사망자는 한 해 평균 7,500명이다. 미국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술을 마신 사람 손에 사망할 위험은 테러리스트 손에 사망할 위험보다 거의 50배나 높다.”    

 

이것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인가? 만약 미국이 대테러 정책에 돈을 투자하지 않는다면 7,500명이 아니라, 한순간에 수천, 수만 명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방사능 유출 사고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 일어나면 대응과 회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고, 그래서 더욱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공포 본능에 의한 오해가 아니다. 


이 책의 대표 저자 한스 로슬링은 저명한 통계학자이다. 그리고 공동 저자인 그의 아들과 며느리는 한스 로슬링이 창립한 ‘갭 마인드’ 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을 지배하고 있는 지배 논리는 ‘수량과 통계’이다.

      

여기서 통계와 진실의 문제에 있어서 살펴보아야 할 인물이 있다. 바로 헥터 맥도널드이다. 그는 ‘만들어진 진실’이란 책을 통해서 “진실은 하나가 아니며 어떤 진실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회와 조직에 긍정적 이바지할 수도, 막대한 피해를 줄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 말은 한편으론 한스 로슬링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헥터 맥도널드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가짜 뉴스의 폐해가 주목받고 있지만, 입맛에 맞게 진실을 편집하고 유통해온 역사와 전략은 인류의 나이만큼 오래됐다”라고 말하며, 팩트가 가지고 있는 원천적 위험성을 강조했다. 그는 통계 자체를 전적으로  의심한다.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이 일부 우리 도심보다 더 안전하다.’ 시카고의 살인사건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은 ‘미국인’의 수를 비교한 내용을 그가 잘못 기억했거나 아니면 일부러 잘못 표현한 것이다. 2001년에서 2016년 사이 시카고에서는 기록상 7,916명이 살해되었고, 같은 기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384명의 미국인이 죽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의 ‘총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아프가니스탄에 체류한 미국인이 시카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생각하면 전쟁으로 사망한 미국인의 ‘비율’은 시카고의 살인율보다 훨씬 높다. 트럼프의 발언은 아프가니스탄보다 (훨씬 많은 미국인이 살고 있는) 시카고에서 더 많은 미국인이 죽었다는 데까지만 사실이다. 그런 논리라면 태양 위에 사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헥터 맥도널드의 말을 한스 로슬링이 ‘미국에서 테러와 음주에 의한 사망자 통계“에 대한 이야기와 비교해 본다면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관점의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있다. 통계는 팩트만큼이나 불완전하고 위험하다. 이에 대해 헥터 맥도널드는 1차 대전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비행기나 스테인리스, 생리대 등 운송 수단, 도구, 개인위생과 관련된 중요한 여러 기술이 개발되었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투표권을 얻는 등 민주주의가 꽃피었다. 사회적 평등이 향상되었다. 수많은 영세민은 식단이 개선되면서 더 건강하고 튼튼해졌다. 유아 사망률이 감소하고 기대 수명이 늘어났다. 술 취한 사람이 줄었다. 특히 여성의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양성평등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1차 세계 대전 중 영국에서는 남성에게 보통 선거권이 도입되었고, 여성의 40% 정도가 처음으로 투표권을 얻었다.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터키에서는 제국이 무너지고 보다 민주적인 형태의 정부가 들어설 길이 닦였다. 병사들은 기존에 먹던 것보다 영양가 있는 식단을 받았고, 수백만 명의 남성이 전방에 배치됨에 따라 군수품과 농산물 생산을 여성들이 맡게 됐다. 완전 고용이 이뤄져 수많은 가구의 생활수준이 높아졌다. 새로운 법률 시행으로 알코올 소비가 줄었고 가정 폭력이 감소했다. 영국 노동당 출신의 정치가이자 나중에 총리가 된 램지 맥도널드는 당초 전쟁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반세기 동안 그 많은 노동조합과 인권 주의자들이 해온 일보다 더 많은 사회 개혁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물론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을 묘사하면서 긍정적인 진실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소름 끼치는 일이다. 그러나 위에 소개한 1차 세계 대전의 두 얼굴은 모두 진실이다. “      


모든 팩트는 그 자체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팩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과 방법이다. 물론 한스 로슬링 자신도 이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의 논리 전개 속에 다분한 사실주의자의 면모를 지울 수 없다.      


사실을 어떻게 인지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통계학 이전에 이미 철학, 특히 해석학 분야에서 깊이 있게 진행됐다. “자신 읽기’라는 측면에서의 철학, ‘타자 기’라는 측면에서의 해석학은 텍스트, 역사, 예술, 인간, 그리고 팩트를 어떻게 읽고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해 수많은 조언을 해 왔다. 저자들은 이런 철학과 해석학의 조언들을 신중하게 듣지 않은 듯하다.     


물론 한스 로슬링이 스티븐 핑커보다는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통계와 지식은 언제든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통계를 근거로 하는 팩트가 가장 효율적인 의사 결정 방식이라는 믿음은 여전히 굳건하다. 이로 인해 한스 로슬링과 그의 공저자들은 이 책에서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유연성을 붙잡았으나 한편, 일관성과 논리성을 놓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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