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없는 책방 11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문학동네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애초에 이 의문을 가지고 책을 펼치진 않았다. 작가가 이름을 감추고 말하고자 한 이야기라는 비밀스러운 배경도 책을 펼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등 떠밀려 책 앞에 선 내겐 아무런 기대감도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책을 한번 읽었음에도.
그러나 마치 같은 제목의 다른 책처럼 문장과 이야기가 새로운 얼굴을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모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살아가는 데에는 수많은 사랑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가족과 친구, 타인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이 근간이 되어 만들어지는 배려와 이해, 관용 등이 책에서 말하는 유일한 것이다.
헌데 그 사랑은 어디서 생겨났을까.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나는 벨빌, 의식적으로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 사이에서 그 존재를 발견한다. 어딘가에 존재한다고만 알려져 있던 신비한 보물처럼. 왜 나는 그 존재를 책에서 발견하는가. 내가 아직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매일매일 찾아다니는 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책 안에 묘사된 삶은 상상하기 조차 어렵다. 심지어 텍스트로 내 눈 앞에 놓여있음에도. 으레 짐작하는 다른 많은 것들처럼 생각해보려다가도 이내 눈을 돌려버린다. 그 공간에서, 내가 만나기를 꺼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눈물과 감동은 얼마나 가벼운가. 마치 신문기사처럼 보이지 않은 모습, 말하지 않는 말들은 들리지 않고 모두가 감동을 전하고 떠나는 모습만 배달된다. 그리고 그 모습마저 책을 덮는 순간 옅어짐을 느낀다.
그래서 더욱 오래 곱씹는다. 희미해지지 않으려고, 또렷이 내 안에 남기려고. 차별이나 편견이 없이 바라보는 것 안에 작가가 말하는 사랑은 존재한다.
서점에 가면 사랑에 대한 책이 지천이다. 사랑은 작가들이 다루는 주제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그 중요함과 어려움 때문에 자꾸 잊어버리고 마는 우리나 작가 자신을 보며 그렇게 열심히들 알려주려고 하나보다.
책 초반부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그 물음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나의 답은 미루고 미루어져 아마 죽기 직전에야 겨우 입술을 열지도 모른다. 책을 덮었지만 나는 아직 책을 읽고 있다. 모모와 헤어지긴 아직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