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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로 Feb 08. 2024

아울렛에서 꽃 피는 남자들의 우정

부러워할까 말까

남편 친구 중 한 명(Y군)이 최근에 차를 바꿨다. 무려 7,000만 원짜리 BMW. 자주 모이는 친구 부부와 함께 5명이서 차를 타고 여주 아울렛에 놀러 가자고 했다. 반가운 제안이었다. 나는 아직 차에 큰 관심은 없지만 새 외제차를 타보는 건 신나는 경험이 될 것 같았다. 더구나 여주 아울렛은 내가 안 가본 곳이었다. 새 차 타고 새로운 곳으로 놀러 간다니! 며칠 전부터 설렜다.


당일 날, 약속 장소에서 본 BMW는 삐까뻔쩍했다. 유광 검은색의 SUV. 신제품이라 외관 디자인이 특이했는데 마치 콧구멍(?)을 연상시키는 그릴이 앞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좋은 차에 콧구멍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맞나 싶어 네이버에 'bmw 콧구멍'이라고 검색해 보니 모두가 같은 단어로 표현하고 있었다.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다 똑같구나. <BMW콧구멍은 계속 커지는가>라는 포스팅 제목을 보고 웃음이 터져 혼자 아주 곤욕스럽다.)


그릴이 세로로 긴 차가 있고 가로로 긴 차가 있는데, 다행히 Y군이 산 차는 가로로 긴 모양의 그릴이었다. 개인적으로 이게 훨씬 더 보기 좋다. 세로로 긴 그릴은 콧구멍을 넘어 토끼 앞니 같은 느낌...이라고 써도 되려나.


내부는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가죽시트는 진한 갈색이었는데, 새 차여서 아주 깔끔했다. 편안하게 앉아서 가고 싶었으나, 인원이 5명이라 아쉽게도 내 자리는 뒷 좌석의 가운데 자리였다. 몸집이 제일 작았기 때문이다. 뒷좌석 가운데에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 발 놓기가 애매하긴 했지만, 앞 유리를 통해 시원하게 풍경을 볼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다행히 멀미도 하지 않았다.


음악을 같이 듣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게 한 시간을 달려 여주 아울렛에 도착했다. 나랑 남편은 딱히 살 게 없었기에(목적이 쇼핑이 아니고 놀러 오는 것이었음) 친구들이 가는 매장에 같이 들어가서 이것저것 구경했다.


득템의 첫 스타트는 남편 친구 와이프(L양)가 먼저 끊었다. 참고로 L양은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인데, 아주 유쾌하고 재밌다. 그녀는 나이키에 가서 얇은 카키색 패딩점퍼를 입어보더니,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구매했다. 물건을 살 때 엄청 신중한 나로서는 상당히 놀라운 결단력이었다. 근데 또 어울리는 걸로 잘 골랐다. 저런 게 진짜 효율적인 쇼핑인데.


패딩점퍼의 가격은 십만 원대. 역시 아울렛 제품이라 그런지 꽤 괜찮은 가격이다. L양의 남편 C군은 두세 벌 입어보기만 하고 사지는 않았다. C군은 와이프의 쇼핑 욕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사줄 건 다 사주는 츤데레 남편이다.


우리는 다 같이 여기저기 다니다가, Y군을 따라 페라가모 명품 매장에 들어갔다. Y군은 (내 기준) 맥시멀리스트다. 소득이 높은 편이라 쇼핑에 돈을 아끼지 않는 편. 집에 리클라이너만 2개가 있고 신발도 한가득이다. Y군은 구두를 하나 신어보고 요리조리 거울로 확인하더니, 마음에 들었는지 점원에게 바로 달라고 했다.


무려 40만 원짜리 구두였다. 이 사람들 결단력 보소. 구두를 이렇게 쉽게 산다고? 나는 발이 최고 예민보스라 신발 사는 게 진짜 오래 걸리는데 말이다.


이어서, 우리는 또 Y군을 따라 BOSS 매장으로 들어갔다. BOSS는 명품 남성복 브랜드이다. 사실 명품인지 몰랐는데 글을 쓰는 이 시점에 찾아보니 명품이란다. 나는 브랜드를 잘 모르지만, 예전에 다니던 회사 사장님이 여기 옷만 입고 다녀서 이 브랜드는 그나마 이름이 익숙하다.


Y군은 휘휘 둘러보더니 베이지색 숏패딩을 입어보았다. 옷이 꽤 괜찮아 보였다. 우리는 옆에서 잘 어울린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Y군은 만족스러운지 거울 앞에서 연신 몸을 돌려보았다.


이쯤에서 비밀 하나를 말해야겠다. 사실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Y군의 쇼핑을 보며 점점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모든 사람에겐 로망이 있지 않은가.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을 살 때 가격을 보지 않고 사는 로망 말이다. Y군에게는 가격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새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베이지색 패딩의 가격은 거의 40만 원. 명품인 걸 감안하면 괜찮은 가격이지만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면 저렴한 건 아니다. 그러나 빠르게 구입 완료.


Y군이 이번엔 카멜색 코트를 입어보았다. 우리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기 위해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에이, 이건 사이즈 미스 같은데. C군은 말했다.


"야, 이건 아니다. 어좁이 같다."


아무리 대리만족 한다고 해도 아무거나 사게 할 수는 없지. C군의 촌철살인 멘트로 코트는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Y군이 이번에는 네이비색 셔츠재킷에 관심을 보였다. 우리는 다 같이 쪼르르 셔츠재킷을 구경하러 갔다. 예쁘고 재질도 좋았다. 근데 그래야만 했다. 가격이 무려 85만 원이었다. 85만 원이라니. 잘 어울리는 것 같았지만 가격이 가격이니만큼 적극적으로 권할 수는 없었다...라고 하기가 무색하게 C군과 L양은 열심히 칭찬을 했다.


"잘 어울린다! 예쁘다!"


"오, 괜찮은데??"

나도 옆에서 조용히 거들었다.


"이런 건 평생 입지."

한 술 더 뜨는 남편.


이 사람들 보소. 다들 내 지갑에서 돈 나가는 거 아니라 이거지! 다행히 Y군은 거울에 비친 모습이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이때, C군은 특유의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 혼란에 종지부를 찍어주었다.


"야, 이건 사야 돼."


풉. 대리 만족에 한껏 열을 올리는 우리의 모습에 다 같이 빵 터지고 말았다. 결국 셔츠재킷도 구매하기로.


평소 장난기가 넘치는 C군은, 매장 안을 돌아다니며 또 사게 할 만한 것이 없는지 두리번거렸다.


"Y야, 이 니트도 이쁜데?"


"이제 안 살 거거든!?"


Y는 눈을 흘기며 대답했다. 네네. 그만 사세요. 더 사겠다고 하면 말릴 예정입니다.


남편과 C군, Y군은 초등학생 때부터 친했던 동네 친구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스스럼이 없다. 친구 한 명이 돈 많이 벌어서 펑펑 쓰고 다니면 배 아파할 만도 한데, 전혀 그런 게 없다. 오히려 같이 즐긴다. 누구 하나 돈을 덜 내려고 머리 쓰지도, 돈 많은 척 허세 부리지도 않는다. 이래서 오래된 친구가 좋다고 하는 걸까?


나는 결국 아무것도 득템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귀여운 우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고 알찬 하루였다. 아, 그런데 지금 와서야 하는 말인데, 85만 원짜리 셔츠재킷, 예쁘지만 좀 비싸긴 한 듯. 후다다다닥!!!


#이번 주 명장면: BOSS매장에서 눈을 반짝이며 친구의 소비를 응원(?)하는 우리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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