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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로 Feb 01. 2024

멕시칸 식당에서 남편과 논쟁을 벌이다

논쟁의 결말은...

며칠 전, 남편이 카톡으로 멕시칸 식당 링크를 하나 보냈다. 종종 가는 동네인데 처음 보는 식당이었다. 링크를 클릭해서 보니 특색 있는 멕시코 음식을 파는 곳이었고, 내부 인테리어도 예뻤다. 남편은 '내가 또 찾아냈다'며 우쭐거렸다. 인정. 잘 찾았네. 이번 주말엔 여기다!




역에서 내려 골목골목을 10분 정도 걸어가자 도로변에 식당이 보였다. 돌담과 나무로 둘러싸여 고즈넉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마치 제주도에 있는 고급 식당에 온 것 같았다. 안쪽으로 이어진 돌계단을 올라가자 작은 화분을 들고 있는 여자아이 석상이 보인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바로 옆에 있는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더 마음에 들었다. 시원하게 탁 트인 공간에 테이블 간격도 널찍널찍하다. 살짝 어두운 조명, 회색톤의 인테리어에 원목 식탁과 의자가 깔끔하고 세련된 인상을 준다. 곳곳에 있는 화려한 조화들이 포인트. 한쪽 면이 전부 통창이라 개방감도 좋다. 분위기 있게 데이트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예약했다고 하니 4인석 소파자리로 안내해 주셨다. 2인 석도 있었는데 땡큐입니다. 태블릿 화면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고심 끝에 단품 메뉴 3개를 주문하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집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특히 고수 부분. 논쟁의 시발점이거든요.)


주문한 첫 번째 메뉴는 '고구마 과카몰리'.


고구마 과카몰리. 이런 조합은 처음이야!


구운 고구마 위에 요거트 소스, 치즈, 과카몰리 등이 올라간 음식인데, 같이 나오는 토스타다(바삭한 또띠아 같은 것) 위에 올려서 먹는다.


고수를 포함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선택하는 옵션이 있었다. 남편은 고수를 좋아하고 나는 고수를 잘 못 먹어서 고민스러웠다. 마침 옆에 여직원이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길래 물어보았다.


"혹시 이 메뉴, [고수 미포함]으로 선택하고, 고수 따로 주실 수 있나요?"


"아, 그게 다진 고수로 안에 포함되는 거여서요. 따로는 제공이 안 됩니다^^"


남편은 나를 배려해, 고수를 넣지 말자고 했다. 고맙수다. 그래서 '고구마 과카몰리' 메뉴는 [고수 미포함]으로 선택했다.


두 번째 메뉴는 '연어 토스타다'.


연어 토스타다. 연어는 사랑이죠.


토스타다 위에 양념장에 절인 연어와 아보카도가 올라간 메뉴다. 이건 고수를 음식에 포함시키지 않고 따로 받을 수 있었다. [고수 따로(+0원)] 옵션을 선택했다.


세 번째 메뉴는 '우에보렌체로와 콘브레드'. 이름 어려워서 쓰면서 몇 번이나 확인했네. 이건 에그인헬 같은 음식인데, 사실 에그인헬이 정확히 어떤 건지 잘 모른다. 느낌만 알 뿐.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어서 올리지 못했다. 전체적인 비주얼은 닭고기가 깔린 그라탕처럼 생겼고, 옥수수빵이 곁들여 나온다. 주문 끝!


한껏 부푼 기대감을 안고 남편과 쫑알쫑알 수다를 떨고 있으니, 아까 그 여직원이 첫 번째 메뉴인 '고구마 과카몰리'를 서빙해 주셨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고수를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다진 고수가 작은 그릇에 담겨 따로 나온 것이 아닌가!


"아까 말씀 들어보니까 고수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원래 제공 안 하는 건데 그냥 따로 조금 준비해 드렸어요."


아, 이렇게 센스 있을 수가. 감사합니다. 남편이 고수를 획득하였습니다.


바삭한 토스타다를 작게 쪼개서 위에 고구마, 요거트, 치즈, 과카몰리를 얹어 한 입에 넣었다. 맛있다!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맛. 담백해서 계속 손이 간다. 나는 이 메뉴가 제일 좋았다.


절반 이상 먹었을 즈음, '연어 토스타다'가 나왔다. 참고로 나는 연어 덕후다. 기대했던 메뉴였고 역시나 맛있었지만, 연어 위에 올려진 양념장이 간이 강한 편이라 호불호가 있을 것 같았다. 한 가지 단점은, 먹기가 불편하다는 것. 그래도 전체적으로 바삭한 토스타다와 부드러운 연어, 아보카도의 조합이 좋았고, 남편은 이 메뉴를 베스트로 뽑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고수 따로] 옵션을 선택했었는데, 고수가 따로 나오지 않은 것이다. 누락된 게 분명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거 고수 안 나왔네. 달라고 하자."


"아니야, 아까 서비스로 고수 받았잖아."

남편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아까 그 메뉴에 해당하는 거고, 이건 우리가 포함시킨 건데 안 나왔잖아."


"괜찮아. 안 먹어도 돼."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까 서비스로 받은 고수는 거의 다 먹은 상태였다. 연어 토스타다는 이제부터 먹어야 하는데 왜 누락된 고수를 달라고 하지 않는 거지? 고수 좋아하면서.


"그냥 달라고 해. 아까 받은 건 서비스로 주신 거고, 이 메뉴에 먹을 고수가 없잖아. 우리가 주문한 게 안 나온 건데 왜 안 받아?"


"그렇긴 한데, 아까 서비스로 주셨잖아. 그냥 내가 더 안 먹어도 될 것 같아서."


대화가 도돌이표네. 남편과 나는 신기하리만치 비슷한 부분이 많고 잘 통하는데, 가끔 아주 사소한 일에서 의견 충돌이 생길 때가 있다. 바로 이런 경우다. 남편은 상대에게 폐 끼치는 걸 매우 싫어한다. 물론 나도 싫어한다. 남편의 기준이 더 높을 뿐.


남편의 입장은 이거다. 아까 서비스로 고수를 주셨기에, 다른 메뉴에 주문한 고수가 누락됐다 하더라도, '굳이' 또 달라고 할 필요는 없다는 것. 고수 없이 먹어도 괜찮으니까.


내 입장은 이거다. 아까 그 고수는 서비스고, 이 메뉴는 우리가 고수를 포함시켜서 주문했는데 누락됐으니까 다시 달라고 요청하는 게 맞다는 것. 고수가 있으면 남편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굳이' 뭐 하러 그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느냐는 거다.


"이런 건 폐 끼치는 게 아니야. 우리가 주문한 거잖아."


"폐 끼치는 게 아닌 건 아는데, 그냥 내가 안 먹어도 된다는데 왜? 굳이 또 달라고 할 필요 없잖아."


아, 남편 맛있게 먹게 하기 힘드네. 사실 며칠 전에도 스타벅스에서 비슷한 논쟁을 했다. '스타벅스 직원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게 실례다, 아니다'에 대한 것. 남편이 전자, 난 후자. 저 카페 알바 해봤거든요. 물 달라고 하는 거 괜찮거든요.


몇 마디가 더 오간 후, 내가 직원을 부르려는 찰나에 남편이 먼저 지나가는 직원에게 고수가 누락됐다고 말했다.


"아! 바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남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직원은 잽싸게 주방으로 들어가 고수가 한 움큼 담긴 접시를 내왔다. 남편은 천연덕스럽게 연어 토스타다 위에 고수를 잔뜩 올려놓고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것 봐. 달라고 하길 잘했잖아. 그렇게 잘 먹을 거면서. 우씨. 먹지 마. 뺏어버릴까 보다."


"냠냠냠~"


얄미워라! 고수 안 먹어도 된다면서 소처럼 먹고 있네.


남편은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수가 쌓인 토스타다를 조심조심 들고 먹다가, 절반도 못 먹고는 홀라당 엎어버렸다.


푸하하, 그것 보시게. 와이프 말 안 들으니까 바로 벌 받는 거라네.


접시 위에 흩어진 재료들을 주섬주섬 긁어모으며, 남편과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끅끅거렸다. 그렇게 고수 논쟁은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메뉴 3개를 싹싹 긁어먹은 후 집으로 향했다.


앞으로 언젠가 비슷한 논쟁을 또 하게 된다면, 엎어진 토스타다를 꼭 기억해 주길.


#이번 주 명장면: 나와 고수 논쟁을 한 후 토스타다를 발라당 엎은 남편의 애잔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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