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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프로 Jan 18. 2024

원하는 집을 끌어당겼다

비록 전세지만요 하하

드디어 이사 갈 집을 계약하고 왔다.


집주인과 만나 최종 계약을 하기 전에 집을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처음 봤을 때 놓쳤던 부분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나와 남편, 엄마, 아빠까지 총 4명이나 집을 보러 가서 혹시 그곳에 사는 임차인분께 실례가 아닐까 했는데, 임차인은 집에 없는 상태였다. 중개사는 문제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문을 따고 집으로 들어갔다.


이럴 때 참 신기하다. 나는 집에 아무도 없으면 못 들어오게 할 것 같은데 말이지. 어쨌든 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다시 본 집은, 처음 봤을 때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집에 들어선 순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남향집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창이 크고 채광이 좋고, 뷰도 좋은 편. 지금 집보다 거실도 훨씬 넓다. 여자분 혼자 살고 있고 짐이 별로 없어서, 구석구석 보기 편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아주 선호하는 인테리어는 아니다. 나는 보통 신축건물의 세련된 인테리어를 좋아하는데 이 오피스텔은 지은 지 꽤 되었고, 전체적인 색감이나 자재가 모던한 느낌은 아니다. 내부만 보면 지금 사는 작은 집이 훨씬 예쁘다. 심지어 조명은 심하게 주황빛.


하. 지. 만,

이 집에 오고 싶었다.


내가 살고 싶은 동네에 있는,

내가 살고 싶은 정확히 그 오피스텔인,

내가 살고 싶은 정확히 그 구조와 방향을 가진 이 집에 살고 싶었다.


몇 개월 전 이사를 결심하고 살고 싶은 동네와 집을 물색하던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이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있었던 아주 많-디 많은 우여곡절을 다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다음 달부터 이 집에 산다!


아, 물론 전세입니다. 매매 아니고요. 전세면 어떠랴? 어쨌든 내가 당분간 살게 될 집인데. 남편도 만족스러워해서 기쁘다.




집을 보고 부동산으로 가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임대인은 40대 중반의 인상 좋으신 남자분으로, 유쾌하고 친절하셨다. 웃으며 말씀하시길, 아내분이 임차인이 신혼부부라는 걸 알고 좋아하셨다고 한다. 아무래도 집을 깨끗하게 쓸 테니까.


"그럼요. 깨끗하게 쓸 거예요. 짐도 별로 없어요. 미니멀 라이프거든요!"

"오~~ 그렇군요. 하하하."


아, 너무 주책맞았나. 미니멀 라이프가 어떤 건지 아시겠지? 너무 TMI였나 싶기도. 하지만 이분은 분명 집에 가서 아내 분에게 이렇게 말하며 호탕하게 웃으실 것 같다.


'우리 집 들어오는 그 신혼부부, 미니멀 라이프래! 짐이 별로 없나 봐. 더 좋은데! 하하하'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런 게 물 흐르듯이 일이 풀린다는 건가 싶었다. 몇 달간의 연락으로 나와 친해진 부동산 중개사분은 마치 본인의 일처럼 기뻐하셨다.


"아~~ 역시 원하면 이루어진다니까요! 이렇게 되는 게 쉽지 않은데. 정말 어려운 건데. 너~무 잘됐다."


활짝 웃으시며 얼마나 좋아해 주시던지. 사투리 억양이 참 정겹게 들렸다.


'중개사분이 그렇게 기뻐해주시는 모습, 상상 많이 했어요. 저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이 집을 계약하기까지, 중개사분 말처럼 정말 쉽지 않았다. 보증금을 제때 받지 못한 것 외에도, 전세가가 우리 예산보다 높았고, 나온 매물도 별로 없었고, 날짜도 안 맞았고 등등의 갖가지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지. 위기의 순간들마다 절묘하게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더니 결국 내가 노트에 매일 쓰던 대로 이루어졌다.


'나는 OOOO(오피스텔 이름), 뷰 좋은 남향, 깨끗하고 넓은 풀옵션 투룸에 산다.'




그날 저녁, 그 동네 스타벅스에 앉아 시그니처 핫 초코를 마시고 노을 지는 창 밖을 바라보면서, 나는 행복감에 젖었다.


지금 집 임대인이 보증금 못 준다고 배 째 심보로 나오는 사람이면 좀 어떤가. 앞으로 만날 임대인이 이렇게 좋은 분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달 동안 동분서주하며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 좀 했으면 어떤가. 결국 이렇게 원하는 곳으로 가게 되었는데.


역시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은 진리다. 며칠 전엔 바닥에서 나뒹굴던 기분이 이제는 몸속에서 설렘의 통통배를 타고 떠다닌다.


한 달 후,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이다!


#이번 주 명장면: 중개사무소에서 새로 만난 임대인분과 즐겁게 대화하며 계약하던 장면,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시던 중개사분의 사랑스러운 미소!



*관련 글은 아래 목록을 참고해 주세요 :)

1. 전세 보증금 주세요. 네?

2. 기분 전환하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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